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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girl Sep 28. 2016

D5. 아마블레, 메히꼬!

Part1.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라틴 아메리카_멕시코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새벽, 공항 밖을 나서자 예상치 못한 차가운 공기가 코 끝을 스친다. 그러고 보니 뜨거운 태양 아래 선인장이 챙 넓은 멕시코의 솜브레로(sombrero) 모자를 쓰고 기타를 치고 있는 그림 말고는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미리 날씨를 확인했는데도 지워지지 않았던 그 이미지 덕분에 공기는 더 낯설기만 하다. 앞으로 맨 작은 배낭의 지퍼를 다시 한번 단단히 확인하고 양팔로 꽈악 안았다. 하아, 정말 멕시코다.


“나쁜 일이 생겨도 너의 잘못은 아니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 이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스무 살, 아프리카로 떠나던 나의 첫 여행길 앞에서 엄마가 해준 말을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했을 그 여행과 엄마의 말. 


이후 참 자주 가볍게 여행가방을 싸들고 집 밖을 나서곤 했지만 돌아오는 날이 정해지지 않은 여행을 떠나는 길은 조금 어색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떠나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스무 살의 나와 달리 이제는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걱정이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엄마가 나 없이도 잘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말을 꺼내진 못했다. 서로 눈물이 가득 차오른 눈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 뿐이었다.






하필이면 제일 바쁜 출근 시간에 딱 걸렸다. 한국의 만원 지하철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인파. 몇 대의 지하철을 눈앞에서 보내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밀려 겨우 열차에 올라탔다. 뚱뚱한 배낭이 피해를 줄까 발등 위에 올려놓고 잔뜩 몸을 웅크려 서 있는데 걱정은 잠시, 의외로 열차 안은 넉넉한 기분이었다. 가만 보니 사람이 가득 찬 열차 안에서 주변 아저씨들이 나와 몸이 닿을까 봐 벽과 기둥을 잡고 팔에 핏대를 세워가며 온 힘을 다해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한테서 냄새라도 나나?”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배려에 내심 놀랐다. 길을 찾느라 조금 배워 온 스페인어로 더듬더듬 단어만 던졌을 뿐인데, 뭐라도 말해보려 애쓰는 동양인이 기특한지 하나라도 더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상냥한 얼굴들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두 팔 벌려 우리를 반겨주는 멕시코! 와락 안기고 싶다!



진지할 것만 같은 박물관의 유적들조차 표정 하나하나가 어찌나 생생하고 재치가 넘치는지, “! 너무 귀여워!” 소리가 절로 나오는 나라. 길에서 만난 누군가가 멕시코가 어땠냐고 물을 때면 짧은 스페인어로 한결 같이 답했다.


"muy amable!"

(무척 다정해!)





잘 알지 못해서, 낯설다는 이유로 두려워하던 나의 마음이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순간들. 편견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자만이었다. 직접 만나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 도시와 사람들을 나는 내가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만큼, 딱 그만큼 기억하게 되겠지만, 말이 통한다 한들 내가 살던 세상과 사람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말을 알아듣지 못해 눈 한 번 더 마주치고 상대방이 내뿜는 공기에 나의 감각을 집중시키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나았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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