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자였다면...

가임기 여성, 그것도 결혼한 사람

직장에서 잘렸다. 아니 나보다 잘난 사람이 등장했다.


결혼한지 3년차인 나는 임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몇 달 동안 생리를 하지 않아 임신인가 싶어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진실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임신일지도 몰라 못마실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몸이 안좋다고 이야기했어야 했나? 거짓없는 성격에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게 문제였을까?


나는 오랫동안 기간제교사로 일했다. 나름 일처리 깔끔하고, 학생들 잘 가르치고 담임으로서의 역할도 꽤 잘했다.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10년 동안 교사로서 일할 수 있었다. 계약을 성사시켜가며.

이번엔 달랐다.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자 결혼한 여자인 나에게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재계약이 어렵다고 했다. 둘러둘러 이야기하는 말이 그랬다. 그리고는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다면서 새로운 기간제교사를 뽑았다. 남자로. 사실 나는 누구나 힘들어한다는 과학고등학교 업무를 다 해냈다. 수업, 시험 출제(1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 조입시험, 조졸시험, 창의력문제해결력대회, 2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 연구지도, 대입 수리논술지도, 연구학교 업무를 모두 해냈다는 것. 거기에 학생들이 잘 해주어 전국대회에서 상까지 받았다. 너무 잘하지 않았나? 정.교사 중에서도 시험 문제 오류를 내고 학생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거나 수행평가 공정성 논란에서 말이 많은 곳이었다.


다른 학교의 기간제교사 모집 공고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정이 떨어졌다고 하면 맞을까?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잘렸다는 것도 화가 났지만, 일을 하고 안하고를 선택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내 존재가 너무 초라했다. 엉엉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매년 선택받아야 하는 이 현실이 너무 미웠다. 꾸준히 열심히 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세상은 경력 많은 기간제교사보다 초임 정교사를 더 우월하게 보니까.


어디에선가 그런 걸 본 적이 있다. 배우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기에 너무 힘들다는 고충을 털어놓은 연예인. 그 연예인은 잘생겨서 내가 좋아했었다. 그 사람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다. 그가 아프지 않길 바랬다. 나도 마찬가지고.


남편이 이야기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괜찮다고. 자신있게 살라고. 이번 기회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거 다 해보라고. 그까짓 1년 가지고 힘들어하지 말라고. 우리가 1년에 쓰는 돈만큼 이번엔 나에게 투자하라고. 자기는 그거면 된다고. 나한테 투자할테니 미뤄뒀던 것들 다 하라고. 또 엉엉 울었다. 이런 사람이 내 옆에 있어서. 이렇게 말해주고 나를 다독여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개미만큼 힘도 났다. 완전히 털어지지는 않았지만 무거웠던 짐이 반 정도는 덜어졌다.


1년 정도 돈 벌지 않아도 될 만큼은 있었고, 시간은 많아졌다. 1년 동안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고, 재개할 수 있는 뭔가를 찾기로 결심했다. 다시는 기간제교사를 소모품처럼 갈아끼우는 그 곳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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