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통제와 비통제: 관계 앞에서 느끼는 불안의 뿌리
내가 당신에게 슈퍼파워 하나를 줄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투명인간, 괴력, 비행 능력?
나는 조금 다른 힘을 주고 싶다.
인간관계 앞에서 불안해하지 않을 능력.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학교, 친구, 직장이라는 관계에 묶여 산다. 이 속에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슈퍼히어로의 힘에 못지않은 슈퍼파워일 것이다. 사실 이 능력은 이미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다만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당신의 이 능력을 각성시켜 주려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 에픽테토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다. 몇 달 전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각혈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본 그는 “암이 확실하다”며 다 죽어가는 표정을 지었다. 검진을 앞두고 그는 그동안 수없이 해온 술과 담배를 후회하며 자책했고, 우리 모두 불안 속에서 그를 위로했다.
몇 주 뒤,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얘들아, 나 멀쩡하단다.”
그리고 곧이어,
“한잔 해야지.”
검진 전후로 그의 몸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건강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이 바뀌자 불안은 눈녹듯 사라졌다. 실제로 그의 현재 몸 상태가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건강검진을 앞두고 일주일간 금주·금연을 하며 초조해하다가, 결과지에 ‘미란성 위염과 중성지방 수치 외에 문제 없음’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술 약속을 잡는 사람들. 몸은 불과 몇 분 전과 비교해 그대로인데, 감정은 불안과 공포에서 안도와 환희로 바뀐다. 바뀐 것은 오직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뿐이다.
관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상사의 표정이 유난히 어두워 보일 때, 우리는 생각한다.
‘혹시 내가 올린 보고서 때문에?’
이 의심은 곧 확신으로 변한다.
인사를 받지 않는 듯 보이고, 한숨 쉬는 모습이 모두 나 때문인 것만 같다.
하지만 상사는 단지 숙취에 시달리거나, 집안 문제로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결국 불안을 키운 것은 상사의 표정이 아니라, 내가 덧씌운 판단이었다.
그리고 상사가 보고서를 결재하자마자 불안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관계에서 “저 사람이 날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고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생각 때문에 내가 더 불편해지고, 상대와의 거리는 멀어진다.
재밌는 건 상대가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사실 내 행동은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의심만으로 상대에 대한 행동이 달라지면 그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불안은 내려놓는 편이 낫지 않을까?
스토아 철학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오직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나는 상대의 생각과 기분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나의 판단과 시선은 바꿀 수 있다.
“내 건강은 분명히 나쁠 거야”라는 생각 대신, “이번 기회에 생활습관을 점검해보자.”
“상사가 날 싫어하는 것 같아” 대신, “오늘은 그가 피곤해 보이네.”
“여자친구가 내 편지를 마음에 안 들어 한 것 같아” 대신, “그녀의 기분은 늘 변하는 것뿐이야.”
생각을 바꾸는 순간,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달라지지 않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판단 하나만 바꾸어도 하루가, 관계가, 그리고 삶 전체가 달라진다.
물론 기분이 자주 바뀌는 여자 친구와의 교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