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통제와 비통제: 타인의 시선은 왜 그렇게 무거운가
“남들의 생각에 신경 쓰느라, 너는 너 자신의 삶을 잃고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자살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기조차 두렵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의 수는 27.3명.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청소년 자살 시도율이 3%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백 명 중 세 명의 청소년이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해 본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꽃처럼 피어나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왜 그토록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만큼 힘겨웠을까.
통계를 들여다보면 청소년 자살률은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현실도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원인을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소셜미디어의 확산이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끊임없는 비교가 낳는 자괴감, 끝없이 이어지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
이는 숨 쉴 공간조차 앗아가며 사람들을 압박한다.
이런 문제는 현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타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무너진 인물들이 수도 없이 많다.
서양에서 대표적인 예는 로마의 네로 황제다.
그는 열일곱에 황제가 되었지만,
그 자리는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정치적 야망의 산물이었다.
네로는 출발부터 남의 기대와 시선을 짊어진 채 살아야 했고,
집권 초기엔 대중의 사랑을 얻었으나 귀족의 멸시와 비웃음을 동시에 받아야 했다.
이 양가적 시선은 그의 정체성을 흔들었다.
결국 원로원으로부터 ‘공적의 적’으로 선포되자,
그는 제국 전체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고 느꼈다.
마지막 순간에도 “세상이 나를 잊을 수 있겠는가?”라는 절망을 토해내며,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힌 채 생을 마감했다.
우리 역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관계는 타인의 시선이 어떻게 한 인간을 파괴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조는 늘 아들을 불신했고,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었다.
사도세자는 끝내 아버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광기에 휩싸였고, 뒤주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조 역시 태생적 콤플렉스로 인해 완벽한 군주의 이미지를 고수하려 했고,
그 강박이 아들에게까지 투사되어 결국 부자의 운명을 함께 무너뜨린 셈이다.
연산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머니 폐비 윤씨 사건 이후, 권위와 시선을 통제하려는 강박 속에서 폭군의 길을 걸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복과 향락에 빠졌지만, 결국 백성과 신하들의 불신과 조롱 속에 폐위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임금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굴욕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유배지에서 단명했다.
근현대사로 눈을 돌려도 비슷한 패턴은 반복된다.
패전을 인정하지 못한 히틀러는 베를린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무솔리니는 시신마저 광장에 매달려 조롱을 당했다.
절대 권력을 쥔 이들조차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끝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인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은 분명히 말한다.
남의 시선과 평가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붙잡으려 하고,
그러다 번번이 무너진다.
타인의 시선은 내가 바꿀 수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생각과 행동뿐이다.
만약 네로가 “타인의 인정은 내 통제 밖이다.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 내 행위에 집중하겠다”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폭군이 아닌 예술가로서 삶을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영조가 자신의 출신에 집착하지 않고 덕 있는 군주의 통치에 집중했다면,
사도세자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연산군이 백성의 사랑을 강요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면,
권위를 잃더라도 인간적인 존엄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는 “만약”을 허락하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이 질문이 남는다.
나는 누구의 시선 속에 갇혀 있는가?
그 시선은 정말로 내 삶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인가?
4-7-8 호흡법
4초간 들이쉬고, 7초간 멈추고, 8초간 내쉰다. 5세트 반복하면 긴장이 완화되고 심장이 차분해진다. 시간이 없다면 그냥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 세 번만 해도 충분하다.
자기 질문
마음속으로 이렇게 물어본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결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려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짧은 선언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되뇐다.
“나는 남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생각과 행동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