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통제와 비통제: 3.“내 것이 아닌 것”을 내려놓는 연습
진정한 자유는 무엇을 더 움켜쥐느냐가 아니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네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 하지 말라. 그것은 자유를 앗아간다.”
- Epictetus
“터키 아이스크림~”
장사꾼이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외치며 긴 쇠주걱을 휘두른다. 아이스크림은 눈앞에 있지만 손에 닿을 듯 말 듯 잡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웃고,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손을 뻗는다. 잡힐 듯 말 듯 번번이 빼앗기는 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연이다.
터키 아이스크림은 어쩌면 “내 것이 될 줄 알았던 무언가를 탐하는 순간”을 가장 유쾌하게 패러디한 놀이일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겁게 속고, 장사꾼은 우스꽝스럽게 사람들을 놀린다. 웃음만 남는 harmless game인 셈이다.
하지만 모든 손님이 즐겁게 속아주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장사꾼이 아이스크림을 자꾸 빼앗아가자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낸다. 아직 자신의 손에 쥔 적 없는 아이스크림을 이미 “내 것”이라 착각했기 때문이다. 집착이 강할수록 장난은 모욕처럼 느껴지고, 결국 웃음이 분노로 바뀐다.
이 단순한 장면은 문학과 영화 속 수많은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영혼을 담보로 내 것이 아닌 지식과 쾌락을 탐하다가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반지의 제왕 속 골룸은 ‘절대반지’라는 힘에 집착하다가 결국 탐욕과 불안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의 떨리는 손, “마이 프레셔스”라는 중얼거림에는 내 것이 아닌 것을 움켜쥐려는 집착이 만들어내는 공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처럼 남의 것을 탐하는 욕망은 소설이나 영화 속 허구일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비극이다.
1920년 여름, 미국 보스턴.
신문 가판대에는 굵은 활자가 나붙었다.
“전후 경제 불안, 물가는 치솟고 임금은 제자리.”
도시는 불안과 빈곤으로 술렁였다.
그때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한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군중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내게 돈을 맡기시오. 단 아흔 날이면 두 배가 되어 돌아올 겁니다.”
사람들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속삭였다.
“남들이 다 벌고 있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으면 바보지.”
욕심은 눈을 가렸지만, 불안은 이미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찰스 폰지. 그는 사실 새로운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돌려막기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지금은 “폰지 사기(Ponzi scheme)”라 불리는 이 금융사기 수법의 창시자였다.
그리고 어느 날, 신문에 굵은 활자가 찍혔다.
“그 많은 돈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이미 존재하던 불안은 이 기사로 도화선이 붙었다. 불안은 삽시간에 공포로 변했고, 은행 앞에 몰려든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제 울부짖음이 되었다.
결국 찰스 폰지는 추락했고, 그에게 돈을 맡겼던 수많은 군중 역시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실 이런 장면은 멀리 있지 않다.
경마장에서 마권을 쥔 사람들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닌 돈을 탐하는 눈에는 기대감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주식·부동산·코인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하지 못한 방식의 투기나 도박에 빠진 사람들의 눈빛에는 설렘보다 불안이 더 크다. 시세에 매달려 일상조차 무너지고, 마음은 늘 흔들린다. 반대로 건강하게 투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안이 훨씬 적다.
그들은 내 것이 아닌 단기 이익을 좇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원칙과 긴 안목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원칙은 불안을 잠재우지만, 집착은 불안을 키운다.
워렌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When you’re right about what, you don’t have to worry about when.”
즉, 무엇을 고르느냐가 옳다면, 그것이 언제 결실을 맺을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가치 있는 기업을 신중하게 고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을 지켜가는 투자자는 불확실성에 덜 흔들린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언제”에 대한 초조한 집착 대신 “무엇”에 대한 확신이 자리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투자는 내 것이 아닌 것을 당장 탐하는 투기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그리고 기다림 속에서 불안은 점점 사라진다.
터키 아이스크림은 결국 웃음으로 끝나지만, 파우스트와 골룸, 폰지 사기에 휘말린 군중은 모두 자유를 잃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붙잡으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불안과 공포의 사슬에 매이게 된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 하지 말라. 그것은 자유를 앗아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내가 붙잡으려는 것은 정말 내 것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무가치해지는가?
자유를 앗아가는 집착을 내려놓는다면, 오히려 더 큰 평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진정한 자유는 무엇을 더 움켜쥐느냐가 아니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