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통제와 비통제 6.
타인이 네 뜻대로 살지 않는 것에 분노하지 말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며칠 전 추석 연휴, 충재 씨네 식탁에서 벌어진 일이다.
오랜만에 사남매가 모였다. 늦게 도착한 누나 식구 덕에 저녁은 밤 10시가 다 돼서야 시작됐다.
갈비찜 향, 송편, 술잔.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조카가 TV를 켰다. 대통령 부부가 예능에 나와 있었다.
순식간에 식탁은 전쟁터가 됐다.
“나라가 개판인데 예능 나와서 웃고 있냐?” 형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덕분에 시장도 안정되고 있잖아.” 누나가 맞받았다.
“그건 쇼지, 민생부터 챙겨야지!”
“전 정권처럼 불통은 아니잖아. 난 이게 낫다.”
대화는 불붙었고, 얼굴은 굳어졌다.
결국 어머니가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외쳤다.
“정치 얘기는 그만해라!”
조카들은 눈치 보며 자리를 피했다. 송편은 따뜻했지만, 대화는 이미 식어 있었다.
밤을 함께 보내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화가 왔다. 형이었다.
“야, 정은이 언제부터 좌파 된 거냐?”
잠시 후, 누나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오빠는 어떻게 전 정권 편을 들어?”
둘 다 화가 가시지 않았다.
옛말 틀린 거 없다.
가족끼리 금지해야 할 화제, 종교와 정치.
성향이 같으면 아름답다. 하지만 다르면? 전쟁이다.
내 친구 얘기를 하자. 대구 출신이다.
그 집안은 모두 한 정당만 지지한다. 그런데 친구만 달랐다.
명절마다 벙어리가 되어 앉아 있어야 했다. 곤욕이었다.
당신 가족도 누군가는 그렇게 침묵 속에 앉아 있을지 모른다.
정치적 신념은 쉽게 안 바뀐다. 설득도 논리도 소용없다.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목소리를 높여도, 논리를 펼쳐도 결국 상대는 내 뜻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타인이 네 뜻대로 살지 않는 것에 분노하지 말라.
좋은 소식은 있다.
상대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나는 내 분노를 다스릴 수 있다.
명절에 얼굴 붉히지 않고,
어머니의 밥상을 편히 즐길 수는 있다.
명절 밥상 위에서 중요한 건 누가 옳은가가 아니다.
함께 앉아 밥을 나누는 그 순간 자체다.
정치 얘기?
그건 내 욕망일 뿐이다. 상대를 설득하려는 욕망.
하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정치적 동지 하나 더 얻는 것?
아니면, 어머니의 정성스런 갈비찜을 온전히 맛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