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가 아니라 똑똑하게

by 에드유

미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Don't work hard, work smart."


나는 이 말의 의미를 몸으로 배웠다.


투잡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오후 직장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최근 1년 내 입사자 대부분이 곧 잘릴 거라는 얘기였다. 처음엔 그냥 소문이려니 했다. 하지만 점점 구체적으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심상치 않았다.


알고 보니 이 회사는 매년 같은 수법을 쓰고 있었다. 가장 바쁜 연말에 사람을 대량으로 뽑는다. 6개월간 혹사시킨다. 그리고 필요한 서너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조리 내보낸다. 면접 때도, 교육 때도, 이 청천벽력 같은 소문이 돌기 전까지도 회사는 한결같았다. "열심히만 하면 6개월 후 정규직 전환이고, 그 이후로도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30명을 뽑아놓고 정작 준비된 자리는 3개뿐이었다.


미국에선 이런 걸 "Corporate America"라고 부른다.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 자르는 게 당연한 문화.

내 오후 직장은 매년 이런 식으로 적은 비용에 많은 일을 처리해 왔다.


소문이 돈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사도 없이. 하나둘 사라지는 이메일 계정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 차례는 언제일까.'


솔직히 나는 해고 1순위라고 생각했다. 오전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오후엔 항상 지친 상태로 출근했다. 그래서 일부러 쉽고 빠르게 끝낼 수 있는 프로젝트만 골라서 했다. 그게 좋았다. 진짜 열정은 오전 직장에 쏟고 오후는 그냥 스트레스 없이 시간이나 채우고 싶었다.


30명 중 절반이 잘렸을 무렵, 드디어 상사와의 1:1 미팅 시간이 왔다. '이번엔 내 차례구나 이미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신 퍼포먼스가 30명 중 톱 3입니다. 정규직 제안과 함께 연봉 인상 드리겠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잘하려고 애쓰던 동기들이 있었다. 당연히 그들이 살아남을 줄 알았다. 항상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를 믿으며 살아온 나에게, 이건 충격이었다.


열심히가 아니라, 똑똑하게.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팅이 끝나고 나서 상사가 보여준 데이터를 곱씹어봤다. 회사가 측정한 건 단순했다.


케이스 처리 건수, 에러율, 처리 시간. 딱 세 가지였다.


복잡한 프로젝트를 얼마나 많이 맡았는지, 몇 시간을 일했는지, 얼마나 열정적으로 보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 동기들을 떠올려봤다. 그중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한 친구는 항상 가장 어려운 케이스를 자청했다.


복잡한 보험 문제, 까다로운 의사들과의 소통, "이런 걸 해봐야 성장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복잡한 케이스들은 시간이 오래 걸렸고, 스트레스 때문에 실수도 잦았다.


또 한 명은 완벽주의자였다. 자신이 처리한 일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하루에 60건 정도를 처리했지만 그중 상당수는 실은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나는 그저 루틴 한 케이스만 골라서 했다. 복잡한 건 피했고 완벽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냥 필요한 만큼만 정확하게 하루에 120건을 처리했고 에러율은 평균 이하였다. 회사가 원했던 건 간단했다. 많이, 빠르게, 정확하게.

성장 마인드도 완벽주의도 회사 입장에선 불필요한 비용이었다.


보이지 않는 차이

더 생각해 보니 내가 의도치 않게 한 선택들이 보였다.


앞서 말한 두 동료는 상사에게 자주 질문했다. "이 케이스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 "이 부분 확인해 봐도 될까요?" 적극적이고 배우려는 자세처럼 보였지만 상사 입장에선 손이 많이 가는 직원이었다.


나는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확실히 할 수 있는 것만 했다. 모르는 건 시스템에 있는 매뉴얼을 찾아보거나 아예 그 케이스를 피했다.


동료들은 "팀워크"를 중시했다.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면 도와주고 회의 때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하지만 난 이 직장에서 팀워크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주어진 일만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게 이 회사가 날 고용한 이유였다.


동료들은 회사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인정받아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기회를 잡아야 한다." 6개월 내내 전력질주했다.


나는 이 회사를 그저 부수입원 정도로만 생각했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율을 목표로 했다.

6개월을 마라톤처럼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그들이 떠난 후

해고된 동료들과 나중에 연락이 닿았다. 어려운 케이스만 맡아서 했던 동료는 쓴웃음을 지었다. "난 진짜 열심히 했는데. 성장하려고 어려운 것만 골라서 했는데. 그게 독이 될 줄은 몰랐어."


그녀의 말을 들으며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살아남은 건 더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회사가 원하는 방식을 우연히 맞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이게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레지던트 때 난 "열정페이" 일꾼이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주말에도 프레젠테이션 준비나 업무를 했고 회식은 당연히 참석했다. "이렇게 해야 인정받는다"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인정은커녕 가끔은 더 많은 일이 쏟아졌고 사람들의 기대치는 점점 올라갔다. "쟤는 시키면 하니까" 하는 식이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건 칭찬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이었다.


첫 직장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런데 연봉 인상 때 내 상사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신은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수치로는 잘 안 나타나서 연봉을 많이 올려주긴 어렵네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열심히 하는 게 가치 아닌가?'


이제는 안다. 회사는 노력이 아니라 결과를 산다는 것을.


열심히와 똑똑하게 사이

이 경험 이후 내 인생관이 바뀌었다. 예전의 나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를 맹신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노력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건 방향이다.


같은 시간, 같은 에너지를 쓰더라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동료는 어려운 케이스로 성장하려 했지만 회사는 성장이 아니라 효율을 원했다. 다른 동료는 완벽을 추구했지만 회사는 완벽이 아니라 속도를 원했다.


그들은 열심히 했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게 과연 옳은 건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내가 찾은 균형점은 이렇다.


회사 시간에는 똑똑하게 일한다. 회사가 원하는 결과를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낸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는 하지 않는다.


내 시간에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회사는 내 성장에 관심 없다. 그건 내가 알아서 챙긴다.

그리고 절대 둘을 섞지 않는다. 회사 일에 내 성장 욕구를 투영하지 않는다. 내 성장에 회사의 기준을 들이대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 당신이 쏟아붓는 그 시간과 에너지가 정말 회사가 원하는 방향인가? 아니면 그저 당신이 생각하는 "열심히"의 형태일 뿐인가?


회사는 노력이 아니라 결과를 산다.


그렇다면 같은 결과를 더 적은 에너지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게 더 똑똑한 거 아닐까?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진짜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면? 그게 더 현명한 삶 아닐까?


물론 모든 일이 효율로만 재단될 수는 없다. 때로는 비효율적이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고 의미 있는 일이 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회사는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본다.


Don't work hard, work smart.


이 말의 의미를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열심히만 살다가 지쳐 쓰러지기 전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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