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을 시작하고 달라진 것이 있다.
예전 주말 아르바이트를 할 땐 평일 정규직에 대한 소속감이 오히려 더 강했다. 주말 일은 그저 '용돈벌이'였고, 내 정체성은 여전히 평일 회사에 있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회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직 두 개를 동시에 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회사에 속하지 않았다. 내가 곧 회사였다.
연예인이 오전 행사, 오후 행사를 소화하듯 나도 오전 근무, 오후 근무를 돌았다. 가끔 추가 요금을 받고 주말 오전에도 '행사'를 뛰었다.
나는 매니저이자 실무자였다. 내 시간을 판매하고, 내 노동력을 배분하고, 내 가치를 협상하는 1인 기업.
그리고 1인 기업에게 '소속감'은 사치다.
투잡을 시작하고 일처리가 빨라졌다. 정확히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오전 회사 일이 4시를 넘기면 오후 회사에 지각이다. 불필요한 회의는 거절했고, 우선순위 낮은 일은 과감하게 미뤘다.
"죄송하지만 이 건은 다음 주에 검토하겠습니다."
예전의 나였다면 미안해하며 야근으로 때웠을 것이다.
해고 걱정에 의견 내기를 주저했다면, 이젠 솔직하게 말했다.
"이 방식은 비효율적입니다.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감정 소모도 줄었다. 너무 바빠서 회의 중에 누가 반대해도 예전처럼 밤새 곱씹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필요한 일만 집중하니 근무시간은 줄었는데 인사평가는 최고점을 받았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나는 왜 그동안 저렇게 감정을 쏟으며 일했을까?'
역설적이게도, 투잡을 하며 일을 더 잘하게 되면서 일이 그냥 '일'로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엔 달랐다. 프로젝트 성공하면 진심으로 기뻤고, 실패하면 진심으로 속상했다. 팀원들과 회식하며 웃고, 야근하며 투덜대고, 누군가의 승진 소식에 함께 축하했다. 회사는 단순히 돈 버는 곳이 아니었다. 내 정체성의 일부였고, 내 성취의 무대였고, 때론 내 감정이 투영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돈을 위해 일한다는 게 너무 선명해지니까 점점 의미가 옅어졌다.
돈 말곤 의미 부여가 안 됐다. 프로젝트가 성공해도 '이번 보너스는 얼마나 나올까?' 생각했고 팀 회식도 꼭 가야 할 것 같은 자리만 골라 갔다.
어느새 정신적 노동이 키보드 두드리는 육체적 노동으로 바뀌어 일이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직장은 첫 번째보다 일이 힘들었다. 디테일을 요구하는 업무였고, 배울 것도 많았다. 그런데 임금은 더 낮았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더 힘든 일인데 왜 돈을 덜 받지?'
하지만 곧 깨달았다.
모든 건 수요와 공급이다. 첫 번째 직장은 전문성이 필요한 반면, 두 번째 직장은 전문성을 갖추려는 사람 위주로 뽑았다. 지원자가 많으니 임금이 낮았다.
임금시장에 공정한 가격 같은 건 없다. 업무 난이도와 보상은 비례하지 않는다. 산업이 다르고, 회사 규모가 다르고, 협상 타이밍이 다르면 같은 사람도 다른 값을 받는다.
그때 알았다. 잦은 이직이 나쁜 게 아니다. 계속된 지원과 면접으로 실시간 변하는 시장 가치를 파악하고,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 가격을 알아볼 기회다.
투잡으로 3년간 네 회사를 거친 결과, 이직이 내 가치를 높이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한 회사에 충성하며 '언젠간 알아주겠지'를 기다리는 건 어쩌면 가장 비효율적인 커리어 전략일지도 모른다.
두 회사를 오가며 더 많이 보게 됐다. A사의 장점과 B사의 단점. B사의 문화와 A사의 시스템. 그리고 양쪽 모두의 한계.
시야가 넓어졌다. 동시에, 애착은 옅어졌다.
감정이 분리된 상태로 동료들을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뭘 위해 저렇게까지 감정적으로 일할까?'
동료가 회의 중에 목소리를 높였다. 자기 아이디어가 채택 안 됐다고. 퇴근 후에도 그 얘기를 하며 화를 냈다.
예전의 나였다면 함께 공감하며 "진짜 너무하지 않아?"라고 맞장구쳤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냥 지켜봤다. '저건 저 사람 감정이고, 나는 내 일만 하면 돼.' 또 다른 동료는 승진이 안 된다며 며칠을 우울해했다. 점심시간마다 회사 불만을 쏟아냈다.
들어주긴 했지만 공감은 안 됐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차라리 이력서 업데이트하고 더 나은 조건 찾아보는 게 낫지 않나?'
그들을 보며 과거의 나를 봤다. 회사에 감정을 쏟고, 인정받길 갈망하고, 작은 성공에 기뻐하고 작은 실패에 좌절하던 나.
그때의 나는 열정적이었을까, 아니면 비효율적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효율적이 된 걸까, 아니면 그냥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기계가 된 걸까?
투잡은 나를 고효율로 만들었다. 동시에, 어딘가 비어있게 만들었다.
예전의 나는 회사의 일원이었다. 때론 지나치게 헌신했고, 때론 불필요하게 감정을 소모했다. 하지만 적어도 거기엔 의미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이유가 돈 이상의 무언가였다.
지금의 나는 1인 기업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감정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가끔 공허하다.
아직 그 균형점을 찾진 못했다. 완전한 헌신도, 완전한 분리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소모되지 않는 방법.
하지만 본능적으로 안다. 회사는 날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건 냉정함이 아니라, 가장이 품고 있어야 할 은장도 같은 거라는 걸.
투잡을 하며 잃은 것도 많다. 소속감, 열정, 동료애.
하지만 얻은 것도 분명하다. 내 가치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힘, 늘어난 자산과 함께 높아진 자존감.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회사원이기 전에 가장이며 나 자신이라는 깨달음.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최소한 예전보다 솔직해졌다는 것.
척하지 않는다. 그냥 일하고 돈을 번다.
그게 내가 찾은 투잡러이자 1인 기업으로 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