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의 시작

by 에드유

처음 투잡을 시작한 건 코로나 때다.


미국에서는 약국이 동네 병원 역할을 한다. 독감 예방접종부터 각종 백신까지, 사람들은 병원 대신 약국을 찾는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백신이 보급되면서 미국 전역의 약국들이 전쟁터가 됐다. 백신을 놓을 약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CVS, Walgreens, Walmart... 대형 약국 체인들이 약사들을 모셔가기 바빴다.


비교적 높은 시급. 주말만 나오면 된다는 조건.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 백신을 놓기로 했다.


첫 번째 맛

처음엔 한 달에 한두 번, 주말에 4시간 정도만 일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계획대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욕심이라는 게 참 묘하다. 한 번 맛을 보면 자꾸 더 원하게 된다. 어느새 2주에 한 번이 되고, 토요일과 일요일 각각 6시간씩 일하게 됐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코로나가 점차 수그러들면서 백신 일이 줄어들었다. 계획대로라면 이제 투잡을 그만두고 평범한 주말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욕심은 이미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통장을 열어보면 허전했다. 추가로 들어오던 돈이 사라지니까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았다.


'어떤 것 있을 땐 몰랐다가 잃으면 소중한 걸 알게 된다'라고 하지 않던가.


"백신 일은 끝났지만... 다른 주말 일을 찾아볼까?"


아내와의 약속을 어기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합리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모으면.'


욕심은 항상 이런 식이다. '조금만 더'라는 거짓말로 시작한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주말에 일할 수 있는 약사 자리를 찾았다. 대학병원 클리니컬 약사였다. 평일에는 IT 약사로, 주말에는 대학병원 약사로.


병원 입장에서 주말 일은 완벽한 거래였다. 인력이 부족한데 새로운 정직원을 뽑자니 부담스럽다. 그러니 높은 시급을 주더라도 퇴직금도 복리후생도 없는 '땜빵 약사'를 쓰는 거다.


내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투잡이라 은퇴 혜택은 필요 없고, 높은 소득이 중요했으니까.


도파민과 그래프


처음엔 한 달에 한 주말 정도만 일했다.

그때 아내는 임신 막달이었다.


토요일 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켰다. 계산기 앱을 열고 이번 달 추가 수입을 계산했다. 주말 병원 일로 번 돈, 여기에 평일 본업 급여를 더하면... 숫자가 화면에 떴다.


엑셀 파일을 열었다. 이번 달 저축액을 입력하면 목표까지 앞당겨진 기간이 자동으로 계산됐다.

"3개월 단축."


그래프가 우상향 하는 걸 보는 순간, 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 업할 때처럼. 도파민이 확 퍼지는 느낌.


'이 속도라면...'


핸드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봤다. 옆에서 아내가 잠든 숨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좋아해야 할 숫자였는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또 공허했다.

그럼 또 계산기를 켰다. '다음 달엔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브레이크 없는 기차


아이가 나오기 직전, 뭔가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 더 벌어두지 않으면...'


주말 일이 하나둘 늘어났다. 어느새 4주 연속으로 일하고 있었다. 평일엔 본업, 주말엔 오후 12시부터 밤 9시까지. 한 달 내내 쉬는 날이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욕심의 무서움을.


욕심을 버리는 건 생각보다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걸 잊게 할 정도로 무섭다. 특히 목표지향적인 사람들에게 욕심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의 연료 같다.


멈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주말 16시간, 평일 40시간.

병원 약사로 거의 2년을 일할 즈음, 아이는 한 살이 막 넘었다.


병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보통 밤 9시 30분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은 어둡고 조용했다.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아내는 TV를 보거나, 아이와 같이 잠들어 있었다.


"다녀왔어."


"응. 수고했어. 얼른 와서 밥 먹어."


아내는 내가 일하는 걸 지지해 줬다. 우리의 목표를 이해했고, 함께 만든 계획이었다. 불평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미안했다.


하지만 욕심은 미안함조차 덮어버렸다.


무너지는 일상


어느 평일 저녁, 일을 마치고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공허해졌다.

이유를 몰랐다.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섰는데 자괴감이 몰려왔다.


과로의 정서적 신호였다. 근데 그때는 몰랐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냥 붉어진 눈시울을 매만지고 다시 운전했다.


평일 아침, 아내 친구의 초대였다. 아내가 옆에서 물었다.


"혹시 이번 주말에 일 해?"


순간 짜증이 났다.


"일 안 하면 뭐 하게?"


말이 나온 순간 후회했다. 아내는 잠시 나를 보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피로가 계속 쌓이니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말에 일을 안 할 때도, 뭔가 하기가 싫어졌다. \

아니, 정확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점점 싫어졌다.


욕심은 이렇게 사람을 고립시킨다. 돈만 남기고,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어느 토요일 아침, 아내가 말했다.


"오늘 아이 데리고 식물원 갈 건데, 같이 갈래?"

"나 오늘 일 있잖아."

"아, 맞다."

"사진 많이 찍어."

"응."


일요일엔 아내 친구 가족들과 놀러 가는 날이었다.


"나도 가고 싶은데 일이 있어서."

"괜찮아. 우리끼리 갈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패턴이 생겼다.

아내와 아이만 어디 놀러 가고, 아내와 아이만 누군가를 만났다. 나는 일했다.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공동으로 하기보다는 번갈아가면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 명이라도 쉴 수 있게 하기 위해.


"오늘은 내가 아이 볼 테니까 좀 쉬어."

"고마워. 그럼 나 좀 자야겠다."


주말인데 쉬는 게 아니라 '자는' 거였다. 몸이 그걸 요구했다.


가족 사진첩을 보면 이상했다. 최근 사진들엔 나만 없었다. 아내와 아이, 둘이서 찍은 사진들만 늘어갔다.


마치 나는 이 가족의 관찰자 같았다. 참여자가 아니라.

욕심은 내게 돈을 주었지만, 가족으로부터 나를 떼어냈다.


하루 16시간, 일주일 100시간


가족과 주말을 보낼 수 있다는 핑계로 평일 오후에 할 수 있는 정직원 컨설팅 일을 찾았다.

하루 16시간씩, 매주 80시간을 일하게 됐다.


처음 생각은 이랬다.


'주중에 오래 일하면 최소한 주말은 가족에게 쏟을 수 있겠지. 그럼 일과 생활의 밸런스가 맞을 거야.'


운이 좋게도 재택근무 일을 찾아 오전과 오후 모두 재택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리석게도, 돈에 미친 나는 주말 병원 일을 몇 달 동안 그만두지 않았다.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하는 주도 있었다.

통장에는 미친 듯한 속도로 돈이 모였다. 숫자는 정직했다. 일한 만큼 쌓였다. 그래프는 가파르게 올라갔다. 목표에 다가가는 속도가 눈에 보였다.


욕심은 만족했다. 하지만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화장실 거울을 보면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 그리고 텅 빈 눈빛,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빠진 근육, 살찐 뱃살.


선배의 말


어느 일요일 밤, 병원에서 은퇴를 앞둔 선배 약사가 말했다.


"자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애들 생각보다 금방 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아요. 계획이 있어서요."


선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저었다.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점점 안 좋아져 가는 건강.

커갈수록 더 나와의 시간을 갈구하는 아이.

혼자 육아에 지쳐가는 아내.


하지만 욕심이란 놈은 그 모든 것보다 강했다.

돈이란 녀석과 손잡고, 그리고 내 머리 깊숙이 박힌 '맞벌이로 인한 부모의 부재'라는 트라우마와 함께, 날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욕심은 내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는 건 말해주지 않았다.


욕심은 항상 그런 식이다.

더 많이 움켜쥐라 부추기면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은 보지 못하게 만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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