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퇴근하는 차 안. 나는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오늘 8시간 일했고, 주말 저녁 수당까지 포함하면..."
계좌를 열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현재 속도라면 목표까지 얼마나 걸릴까? 손가락이 숫자 위를 미끄러진다.
"조금만 더..."
깜깜한 병원 주차장을 나가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우리 가족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왔다.
이민 결정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났다. 그 후 9/11 테러와 끝없는 서류 지옥 속에서 "내년에 간다", "이번엔 확실하다"는 말만 반복됐다. 기다림은 6년이나 이어졌다.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아버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셨다.
"이제 시작이다. 네가 여기서 뭘 만들어낼지는 너한테 달렸어."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어른들이 하는 말인 줄만 알았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밤. 낯선 집, 낯선 방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부모님이 지난 6년간 뭘 하셨는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걸.
부모님은 우리에게 출발선을 만들어주셨다. 합법적 신분, 안전한 환경, 제대로 된 교육. 그게 부모님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믿으셨다.
나는 그 출발선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그 대가도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까지, 부모님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두 분 다 투잡을 뛰시며 조금이라도 더 모으려 애쓰셨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았지만,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20대 중반, 약사 면허를 따고 나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내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운 좋게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20대 내내 바쁘게만 살았던 내가,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거다.
부모님은 '업적'을 남기셨다. 이민이 바로 그 업적이었다. 우리가 이 낯선 나라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 그게 부모님의 이민이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나는? 내 업적은 뭐지?
예전부터 돈으로 얻는 시간의 자유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특히 코로나 때 FIRE라는 단어가 핫해지면서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유, 조기 은퇴.
수많은 책을 읽었다. 블로그를 뒤지고, 유튜브를 봤다.
우린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약사, 아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둘 다 검소했고, 아직 일하시는 부모님도 계셨다. 숫자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은퇴 계산기를 돌렸다.
'얼마가 있으면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1년 동안 쓸 돈을 이자로 받으려면 원금이 얼마나 필요한가.
20대에 처음 계산했을 때는 30억이었다. 30억 원금이 있으면 대략 연 1억 정도 안전하게 쓸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많은 게 달라질 것 같았다. 좋은 학교, 과외활동, 가족여행, 예상치 못한 의료비.
결국 목표를 다시 잡았다.
50억 원금. 연 1억 5천만 원 이자.
솔직히 나는 1년에 1억 5천만 원을 써본 적이 없다. 우리 부부 모두 알뜰해서 집 융자 빼면 한 달에 많아야 200만 원 쓴다.
하지만 간당간당한 Lean FIRE가 아니라, 진짜 여유 있는 Fat FIRE를 원했다. 경제적 자유란 말 그대로, 하고 싶은 걸 하고 쓰고 싶을 때 쓰는 삶이니까.
아이와 매일 아침을 먹고, 주말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삶.
돈이 돈을 만든다. 내 후대가 어리석은 선택만 하지 않는다면, 한 번 만들어진 부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부모님이 이민으로 우리에게 출발선을 만들어주셨듯이, 나는 경제적 자유로 다음 세대에게 완전히 다른 삶을 만들어주겠다.
하지만 목표를 정할 때는 몰랐다. 50억이라는 목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포기할 것들이 뭔지.
갓 약사가 됐을 때 우리의 순자산은 1억 남짓이었다.
나는 공부를 오래 했다. 학부 4년, 약대 4년. 졸업할 때 나이는 20대 중반이었고, 그동안 번 돈은 거의 없었다. 1억은 대부분 아내가 모은 돈이었다. 아내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서 이미 10년 가까이 일한 상태였다.
노동으로 시드를 만드는 건 고통스럽다. 하지만 조상에게 물려받은 자산이 없다면, 결국 근로소득으로 투자 자금을 만드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1년에 5천만 원씩 저축해도 50억을 모으려면 연 5% 수익률로 잡아도 37년이 걸린다.
너무 길었다. 60세에 경제적 자유를 얻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때면 내가 시간이 있더라도 아이가 나와 시간을 보내줄지 의문이다.
저축률을 올려봤다. 숫자를 올릴수록 연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본업 수입에는 천장이 있었다.
규모 있는 시드를 모으고 투자하는 것.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내와 상의했다.
"투잡을 뛰어야 할 것 같아."
"무슨 부업?"
"요즘 코로나 백신 주사 놓는 부업이 많다고 하더라. 주말에 할 수 있대."
"평일은 안 되니까 주말에 시간을 써야 하는 거네."
"응. 근데 아마 코로나 끝나면 없어질 테니까 그때까지만 우선 할 거야."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합리적이라고 믿었다. 명확한 계획이 있었고, 끝이 정해져 있었다.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의 표면은 다르다.
자본소득은 깨끗하다. 통장에 찍힌 이자, 배당금, 주식 수익. 거기엔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다. 가끔 조정장이 왔을 때 흔들리는 마음과 고민, 그리고 대부분은 무감각한 숫자의 증가일 뿐이다.
하지만 근로소득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있다.
내 근로소득에는 돈과 바꾼 내 시간이 들어있다. 토요일 오전, 일요일 오후, 평일 저녁부터 밤 11시까지.
아이의 울음이 들어있다. "아빠 같이 놀아요"라고 말하다가 포기한 목소리.
아내의 고됨이 들어있다. 주말 내내 아이를 혼자 보고,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
그리고 나의 미안함이 묻어있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50억을 향한 여정. 경제적 자유를 향한 전력질주.
그리고 동시에, 놓쳐가고 포기하는 과정.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도, 나는 투잡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