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는 왜 우리 밥 먹을 때 항상 설거지를 해요?"
맞벌이로 정신없던 엄마 몸에 밴 습관이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엄마 아빠는 우리한테 밥을 차려주고 나면 곧바로 다른 집안일을 하러 가셨다.
우리 부모님도 투잡을 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두 분 다 오전 쉬프트랑 밤 쉬프트로 나눠서 하루 16시간씩 일하셨다. 그러다 보니 저녁에 잠깐 얼굴 보는 거 말고는 가족이 모일 일이 거의 없었다.
가족이 함께 있어도 밀린 집안일 하느라 바쁘셨고, 밤 근무로 부족한 잠은 저녁 출근 전 몇 시간으로 때우셨다.
두 분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고, 나랑 동생은 우두커니 서서 점점 멀어지는 부모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집은 커졌고, 더 좋은 동네로도 이사 갔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랑 부모님 사이의 거리는 계속 벌어졌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부자가 돼서 난 다르게 살 거라고.
엄마한테 그 질문을 한 다음부터는 엄마가 우리 밥 먹을 때 설거지는 안 하셨다. 대신 다른 걸 하셨다. 빨래를 개거나, 청소기를 돌리거나, 냉장고를 정리하거나. 멈춤이 없는 삶이었다.
한 번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우리 집이랑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였는데, 뭔가 달랐다. 친구네 거실엔 큰 식탁이 있었다. 우리 집은 네 명이 함께 밥 먹을 일이 거의 없어서 간이 식탁을 쓰거나, 나랑 동생은 그냥 방에서 책상에 앉아 먹곤 했다.
친구네 식탁 위엔 반찬 몇 개랑 김치찌개가 놓여 있었고 네 식구가 둘러앉았다. 특별할 것 없는 저녁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해했다. 왜 우리 집엔 큰 식탁이 없는지. 우리 가족은 네 명이 동시에 앉을 일이 없었다. 공간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가족의 일상은 이미 '함께'가 아닌 '각자'로 짜여 있었다.
나도 투잡을 한다.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 주말에 가족이랑 밥을 못 먹는다. 휴식 시간에 영상통화를 건다. 화면 속에 식탁이 보인다. 나는 식당 구석에 앉아 배를 채운다. 10분 남은 휴식 시간. "아들, 밥 먹었어?" "응, 맛있어 보이네." 화면 너머로 아직 서툰 아들의 숟가락 소리가 들린다.
"아빠 이따 갈게. 밥 맛있게 먹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다. 내가 어렸을 땐 없던 기술이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구조는 그대로다. 영상통화로는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더 선명하게 보여줄 뿐이다.
밤늦게 퇴근하고 차에 탄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부모님의 삶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걸. 피하고 싶었던 바로 그 삶을.
부모님도 선택하신 거였다. 오늘 우리랑 함께 앉아 밥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내일 우리가 먹을 밥을 벌 것인가. 그분들은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나도 똑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정말 선택해야만 하는 걸까. 가족과 커리어 사이에서. 행복과 돈 사이에서.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부모님은 미래를 선택했고, 그 미래가 지금의 나다. 더 나은 출발선. 부모님 덕분에 나는 그분들보다 나은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나은 출발선에서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한다.
투잡을 하면서 오늘을 포기하고 내일을 위해 달린다. 부모님이 나한테 그랬듯이, 나도 아들에게 더 나은 출발선을 만들어주려고.
이 반복은 언제 끝나는 걸까.
부모님도 최선을 다하셨을 거다. 그땐 그게 옳다고 믿으셨겠지. 부모님을 원망할 수 없다. 그분들도 이 시스템 안에 있었으니까. 나도 지금 똑같은 위치에 있다. 최선을 다하지만 정답은 모르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비슷한 거리를 두고 서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질문은 계속해야 한다. 더 나은 선택은 없는가. 다음 세대에게도 같은 선택을 강요할 것인가.
세 살 아들한테 설명한다. "아빠가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어. 돈을 벌면 맛있는 것도 사고 멋진 자동차 장난감도 살 수 있어."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려는 노력.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아이가 상처받기 전에 돈을 벌어놓고 싶다. 아빠랑 밥도 못 먹고, 시간도 못 보낸다고 느끼기 전에. 아직은 어제 있던 일도, 저번 주에 있던 일도, 저번 달에 있던 일도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미친 듯이 일한다.
부모님도 이렇게 자신을 설득했겠지. 그리고 합리화는 세대를 거치면서 더 정교해진다. 더 나은 이유, 더 그럴듯한 설명. 하지만 본질은 같다. 자리는 비어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다르다. 부모님은 끝을 정하지 않으셨다. 언제까지 달릴지, 얼마를 벌면 멈출지. 그래서 멈추지 못하셨다. 나는 다르다. 구체적인 숫자가 있다. 명확한 기한이 있다. 10년. 특정 금액. 그때는 멈출 거다.
이게 합리화인지 계획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볼 거다. 부모님이 못 하신 방식으로.
그렇게 다짐하고 일어선다. 거실을 지나다 문득 멈춘다. 우리 집 거실에도, 여전히 큰 식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