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헤엄치는 바다를 찾아서

2 본질을 보는 법 - 레드오션을 피하자

by 에드유

클릭당 2천 원.


광고비 알림이 뜰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6개월간 쏟아부은 광고비만 천만 원. 창고에 쌓인 장갑200장을 보며 사업 접을 생각까지 했다.


'더 좋은 제품인데 왜 안 팔리지?'


2020년, 코로나로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나도 기회를 잡고자 아마존 온라인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집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이 뭘 살까 고민하다가, 바비큐 용품 전문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변호사를 고용해 상표권까지 등록했다.


첫 제품은 고온에도 손이 뜨거워지지 않는 바비큐 그릴용 장갑이었다.

기존 제품보다 실리콘 코팅을 두껍게 해서 보호력을 높였고, 디자인도 중세시대 건틀렛을 떠올리게 하는 멋진 스타일로 차별화했다.


자신감이 넘쳤다. '이 정도 퀄리티면 당연히 팔리겠지?'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낮은 단가로 대량 판매하는 셀러들의 광고 파워를 당해낼 수 없었다.

광고비 과다 지출로 수익은 계속 줄어들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클릭당 2천 원이 넘는 광고비를 감당하며 대형 셀러들과 경쟁하는 건 불가능했다.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셀러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그제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릴용 장갑의 광고비는 다른 제품에 비해 2-3배 비쌌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릴용 장갑은 미국에서 매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는 제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량 생산 공장을 파트너로 삼은 중국 셀러들이 대거 진입해 있었다.


그들은 낮은 단가를 무기로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부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차별화로 경쟁력을 갖추려 했지만, 시장 자체가 이미 레드오션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내가 "광고비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광고 전략을 바꾸고, 키워드를 최적화하고, 입찰가를 조정했다.


하지만 그건 증상일 뿐이었다.


표면적 문제: 광고비가 너무 비싸다

진짜 문제: 내가 잘못된 시장에 있다


나는 이길 수 없는 전장에서 전술만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남아있는 재고는 200장. 아마존은 판매되지 않고 창고에 남아있는 제품에 보관료를 청구했다. 매달 돈만 까먹고 있었다.


그러다 Etsy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마지막 희망으로 제품을 등록했다.


며칠 후, 메시지 하나가 왔다.


"혹시 50장 한꺼번에 주문 가능한가요?"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다. 5장이 아니라 50장?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하세요?"


돌아온 답변이 내 비즈니스를 바꿨다.


"중세 건틀렛 디자인이 좋아서, 코스프레 만드는데 쓰려고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차별화 포인트'라고 생각했던 중세 건틀렛 디자인.

바비큐 시장에서는 그저 여러 디자인 중 하나였지만, 코스프레 시장에서는 완벽한 솔루션이었던 것이다.


같은 제품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달랐다.


아마존에서는 클릭당 2천 원의 광고비를 쏟아부으며 수백 개의 중국 대형셀러들과 경쟁해야 했다.

고객들은 더 저렴한 제품을 찾아 떠났다. 끊임없는 할인 압박 속에서 6개월간 적자를 냈다.


Etsy에서는 달랐다. 광고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 코스프레용 장갑을 파는 판매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딱 찾던 제품이에요!"라며 정가에 기꺼이 구매했다.


바비큐 시장에서 내 장갑은 100개 제품 중 하나였지만, 코스프레 시장에서는 유일한 솔루션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자란 우리의 뇌는 경쟁 쪽으로 와이어링되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석차, 중고등학교 내신 등수, 대학 입시 경쟁률, 취업 경쟁률. 우리는 평생 "남들이 가는 길에서 1등 하기"를 배워왔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도 본능적으로 생각한다:


"다들 이 시장에 있으니 기회가 있겠지?"

"남들보다 더 잘하면 되겠지?"

"더 좋은 제품을 만들면 이기겠지?"


하지만 이건 학교와 회사에서 통하던 논리다.


학교에서는 시험 과목이 정해져 있다. 모두가 같은 시험지를 받고, 더 높은 점수를 받으면 이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KPI, 정해진 평가 기준, 그 안에서 더 잘하면 승진한다.


그런데 비즈니스와 투자는 다르다.

시험지를 선택할 수 있다. 아니, 아예 새로운 시험지를 만들 수도 있다.


레드오션에서 허우적대면서도 "더 열심히, 더 잘해야지"만 생각했다.

경쟁에서 벗어나는 선택지가 있다는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흔히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면 판매가 잘될 거라 착각한다. 나도 그랬다. 더 두꺼운 실리콘, 더 멋진 디자인. 제품은 분명 차별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안 팔렸을까?


차별화의 본질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경쟁 자체에 대한 사고방식이 잘못되어 있었다.


차별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상대적 차별화: "우리 제품이 더 좋습니다"

경쟁사 대비 20% 더 두꺼운 코팅

10% 더 멋진 디자인

5% 더 나은 품질

절대적 차별화: "당신이 원하는 걸 우리만 줄 수 있습니다"

대체재가 없는 유일한 솔루션

특정 니즈를 정확히 충족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음


바비큐 장갑 시장에서 내 제품은 상대적으로 차별화된 제품이었다. 코스프레 시장에서 내 제품은 절대적으로 차별화된 제품이었다.


그 차이는 엄청났다.


레드오션에서 대형 셀러와 싸우려면 끊임없이 "더 나아야" 한다. 더 좋은 품질, 더 낮은 가격, 더 많은 광고비. 끝없는 개선 경쟁과 광고비 전쟁의 연속이다.


하지만 블루오션에서는 "유일하기만" 하면 된다. 경쟁할 필요가 없다.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마케팅 비용도 낮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6개월간 레드오션에서 "더 나은 제품"으로 싸우려 했다.

하지만 진짜 승리는 싸울 필요가 없는 시장을 찾는 것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스스로에게 묻게 된 질문들:


1. 내 제품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

바비큐 시장: "고온으로부터 손을 보호하는 도구"

코스프레 시장: "판타지 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소품"

2. 누가 이 제품을 가장 간절히 원하는가?

바비큐 하는 사람: 수백 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다

코스프레하는 사람: 마침내 찾았다며 기뻐한다

3. 나는 지금 어떤 전쟁을 치르고 있는가?

레드오션: 이길 수 없는 가격 전쟁

블루오션: 싸울 필요 없는 가치 제공


본질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방향이 틀렸다. 본질을 찾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


다행히 나는 남아있던 재고 200장을 몇 달 만에 코스프레어들에게 판매했다.

그리고 그렇게 첫 비즈니스를 2년간 운영했다.


레드오션에서 허우적대던 6개월보다, 블루오션에서 보낸 2년이 훨씬 더 수익성 있고 즐거웠다.


같은 제품이었다. 하지만 시장을 바꾸자 모든 게 바뀌었다.


제품의 본질, 차별화의 본질, 그리고 내가 싸우고 있는 전쟁의 본질을 다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 "남들이 가는 길에서 1등 하기"를 배워왔다.


하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서 유일해지기"가, 투자에서는 "탄탄한 보호 장벽(모트)을 가진 회사를 선택하기"가 훨씬 쉽고 효율적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그 제품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찾는 게 먼저다.


당신의 제품은 혹은 당신은 레드오션에서 10등 일지 모른다.
하지만 블루오션에서는 1등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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