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본질을 보는 법 - 시간축을 바꿔서 보라
열 살 무렵, 나는 스무 살의 나를 상상했다. 스무 살엔 서른 살을, 서른 살엔 마흔 살을 그렸다. 그때의 미래는 언제나 충분히 멀었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이십 대엔 삼십 대의 내가 이룰 것들을 즐겁게 그렸는데, 삼십 대 중반인 지금은 사십 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무겁다. "나도 슬슬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어"라는 선배들의 농담 섞인 진담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미래가 더 이상 꿈과 꽃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꿈꾸는 미래는 노력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그 노력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생각만 해도 피로하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가까운 미래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좋은 계획은 목표로부터 거꾸로 걸어오는 길에서 탄생한다. 십 년 후를 목표로 삼은 사람은 십 년의 시간을 사유하게 되고, 삼 년 후를 계획한 사람은 삼 년짜리 생각에 갇힌다. 목표를 멀리 둔다는 건 실패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더 많은 변수를 생각하고, 더 넓은 길을 준비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무조건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걸 꿈꿨다. 긴박한 심장박동 소리, 생명을 살리는 순간의 긴장감, 그 안에서 느끼는 존재의 의미. 그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질문을 던졌다. 이 일을 삼십 년, 사십 년 한다면?
극도의 긴장 속에서 소진되는 에너지, 오십 대의 몸으로 감당해야 할 신체적 부담. 그 장면들이 하나씩 선명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보였다. 의료 서비스에도 밀려오고 있는 AI의 물결.
나는 주저 없이 방향을 틀었다. AI와 밀접하게 일할 수 있는 IT 쪽으로.
물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IT 직종이야말로 가장 빨리 AI에 교체될 텐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 교체의 흐름을 가장 빨리 감지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앱 사용자가 업데이트를 거부할 수 없듯이, 언젠가 갑작스럽게 대체될 임상 인력에 비해, 나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변화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파도를 등지고 서 있는 것보다, 파도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이십 대의 내가 멀리 본 덕분에 내린 선택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이십 대에 나는 어떤 것들은 전혀 멀리 보지 못했다.
요즘 부쩍 나를 괴롭히는 것은 무릎이다. 이십 대 초반, 나는 꾸준한 트레이닝 없이 하프 마라톤을 뛰었고,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때는 몸에 큰 타격을 느끼지 못했다.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고 믿었다.
하지만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 그때의 스트레스들이 슬슬 무릎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뛰어도 무릎이 붓고, 염증이 생긴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둔한 통증이 찾아온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릎을 함부로 쓴 대가다.
건강이야말로 시간축을 멀리 봤을 때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영역이며, 동시에 지나간 대미지를 되돌리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직업은 바꿀 수 있고, 기술은 다시 배울 수 있고, 심지어 살던 도시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이십 대의 무릎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체스 그랜드마스터는 평균 천오백 수 앞을 내다본다고 한다. 초보자는 기껏해야 스무 수를 본다. 같은 판을 보지만, 보이는 것이 다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삼 년 앞을 보는 사람과 삼십 년 앞을 보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내려야 하는 결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 밤 술자리 한 번이 삼십 년 후의 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늘 아침 거르는 습관이 십 년 후의 대사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지금 배우는 이 기술이 이십 년 후에도 유효할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피로를 느낀다. 나는 그것이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십 년 후를 계획한다는 건, 십 년치의 변수를 모두 예측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건 시간축을 짧게 볼 때의 사고방식이다.
팔십 세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면 뭐라고 할까?
"왜 그렇게 삼 년, 오 년에 집착했어? 인생은 훨씬 길었고, 실패할 시간도 충분했는데. 그리고 말이야, 삼십 대 중반에 아팠던 그 무릎? 오십 대엔 거의 잊혔어. 그때 제대로 된 재활을 시작했고, 꾸준히 근력 운동을 했으니까. 아, 그때 포기하지 않길 정말 잘했어."
"IT로 방향을 튼 것? 최고의 선택이었어. 물론 AI가 많은 걸 바꿨지만, 너는 그 변화의 파도를 타는 법을 배웠잖아. 파도에 휩쓸린 게 아니라 서핑을 한 거야. 멀리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더 일찍 몸을 돌보지 않은 거. 건강은 복리로 쌓이는 자산이란 걸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괜찮아, 삼십 대 중반부터라도 시작했으니까."
긴 시간축의 진짜 선물은 회복탄력성이다.
십 년의 계획은 일 년의 실패를 견딜 수 있다. 삼십 년의 비전은 십 년의 우회로를 품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멀리 보면 볼수록 지금 이 순간이 덜 무겁다. 먼 미래를 바라본다는 건 더 많은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여유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멀리 보는 연습을 하려 한다. 커리어만이 아니라 건강도, 관계도, 마음도. 무겁지 않게, 조금은 가볍게. 삼십 년 후의 내가 고마워할 선택들을, 오늘부터 하나씩 해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