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인 이하 조직이 더 빨리 무너지는 진짜 이유
"우리 아직 5명인데, 벌써 시스템이 필요해?"
스타트업에서 가장 위험한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생존'의 문제라고 답하고 싶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체계 잡을 시간에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한다'는 말은 늘 맞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문장에는 위험한 전제가 숨어 있었다. 체계 = 느림이라는 전제다.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체계가 없는 조직이 가장 느리다. 왜냐하면 사람이 늘기 전에, 문제가 먼저 늘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이론'이 아니라 '업무가 굴러가는 방식'에서 먼저 체감했다.
3인 규모의 스타트업에 합류했을 때 업무 체계는 아주 단순했다. 회사 이메일은 하이웍스였고, 급한 소통은 카카오톡으로 처리했다. 그게 전부였다. 처음에는 크게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다. 사람도 적었고 우리 셋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척하면 척하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업무보다 먼저 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업무가 많아서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 업무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먼저 지쳤다. 그래서 가장 먼저 노션을 열었다.
업무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메일로 온 요청이 카톡으로 이어졌고, 구두로 이야기한 내용은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이거 내가 하기로 했던 건가?', '이건 언제까지였지?'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업무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업무가 정리되지 않아서 피로가 쌓이는 상태였다. 그래서 노션으로 업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메일은 메일대로, 카톡은 카톡대로 두되, 적어도 업무의 맥락과 진행 상황만큼은 노션에 모아두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업무 구조는 이메일+카톡+노션이었다. 세 개의 툴을 병행하는 방식이었지만, 적어도 '이 일이 뭔지'를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숨통이 트였다. 그 시점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늘자 일이 늘어난 게 아니었다. 설명해야 할 '맥락'이 폭발했다. "이건 어디서 확인하면 되나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게 이거 맞나요?" 같은 질문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 3명을 추가로 채용했고 팀은 6명이 됐다. 그때부터 업무의 시작점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 어떤 일은 메일로 시작됐고, 어떤 일은 카톡으로 흘렀으며, 어떤 일은 노션에만 남아 있었다. 노션은 여전히 정리 도구로 유용했지만, 실시간 협업과 업무 흐름을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느껴졌다. 업무를 '정리'하는 것과 업무가 '흐르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그때 처음 체감했다. 노션이 훌륭한 '도서관'이라면, 우리에겐 매일의 전투를 치러낼 '관제탑'이 필요했다.
"지금은 속도가 중요하다"는 말은 늘 맞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 말이 반복될수록, 조직은 더 느려졌다.
실제로 팀 안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던 말도 그 문장이었다. 우리는 아직 작다, 지금은 속도가 중요하다, 체계 잡을 시간에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이 말에는 위험한 전제가 숨어 있었다. 체계는 곧 느림이라는 전제다.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체계가 없는 조직이 훨씬 느리다. 사람이 늘기 전에 문제가 먼저 늘어났기 때문이다. 5명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대표가 대부분을 기억하고 대부분을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원이 조금만 늘어나도 상황은 달라졌다. 의사결정은 늦어졌고 확인 요청은 폭증했으며 같은 설명을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하게 됐다. "요즘 왜 이렇게 바쁘지?", "사람은 늘었는데 왜 나는 더 힘들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체계 부재의 비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먼저 시간을 갉아먹었다.
노션은 정리에는 강했지만, 흐름을 만들기에는 약했다. 그래서 업무가 '모이는 곳'이 아니라 '흐르는 곳'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협업툴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변 스타트업에도 물어보고 검색도 정말 많이 했다. 슬랙이나 지라 같은 툴도 검토했지만 우리 조직은 개발 중심이 아니었고 오히려 관리 부담이 더 커질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선택한 툴이 플로우였다. 이메일, 메신저, 업무 관리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연결된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업무 요청부터 진행 상황, 기록까지 한 곳에서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했다. 근태관리 앱인 타임인아웃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운영 관점에서는 꽤 실용적으로 느껴졌다.
10명도 안 되는 조직에서 체계는 관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빠져도 일이 남아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회사 합류 후 2개월 차부터 하나씩 시스템을 세팅해 나갔다. 처음부터 완성된 구조를 만든 건 아니었다. 일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를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업무는 한 곳에서 시작되게 했고, 결정은 기록으로 남기게 했으며, 누가 담당자인지만큼은 항상 명확히 했다. 그 정도였는데도 업무가 사람의 머릿속이 아니라 구조 안에 남기 시작했다.
사람 적을 때는 유연해야 한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유연함과 무질서는 달랐다. 대기업은 사람 하나가 빠져도 시스템이 버텨주지만, 스타트업은 한 명이 빠지면 업무가 함께 증발했다. 업무가 사람에게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인 이하 조직에서의 체계는 관리라기보다는 생존 장치에 가깝다고 느꼈다. 체계를 만들자고 하면 "괜히 감시하는 것 같지 않을까?", "신뢰가 깨지지 않을까?" 같은 걱정을 듣곤 했다. 하지만 경험상 체계가 없는 조직에서 신뢰가 더 빨리 깨졌다. 왜 저 사람만 바쁜지, 왜 기준이 매번 다른지, 왜 책임이 애매한지 같은 의문이 쌓였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조 문제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 돌아보면 이 문장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체계는 성장을 위해 만드는 게 아니라, 성장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하는 것이었다. 10명이 되어서 만들면 늦었고, 20명이 되면 고치기 어렵다. 5명일 때, 조금 불편할 때, "아직은 괜찮지 않나?" 싶을 때가 가장 적기이지 않을까.
거창하지 않아도 됐다. 오늘 하나만 해봐도 달라졌다. 모든 업무의 시작점을 하나로 정하는 것, 결정 사항을 반드시 문서로 남기는 것, 그리고 '이 일의 담당자'를 명확히 하는 것. 이 세 가지만으로도 대표의 머릿속에서 일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팀은 몇 명인가. 혹시 이미 체계가 없어서 생긴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은가. 다음 글에서는 "스타트업 체계, 언제부터 어디까지 만들어야 할까?"를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 중심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스타트업에는 체계가 필요하다. 최대한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