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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플 Oct 05. 2022

7.  DAY 1) 모든 여행은 첫날이 중요하다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커피-2

 별빛투어가 뭐냐.  그대로  내고 별구경을 하는 거다. 별이야 호텔 발코니에서도   있는  아니냐고, 그걸 돈을 주고 봐야 하냐고 한다면  말이 없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별빛투어를 신청했냐면 첫째는 내가 렌트를 하지 않아 기동성이 없었, 둘째는 다이빙하지 않는 날은   없어서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으며, 셋째는 여행을 가면 하루에  번은 해지는 노을과 밤하늘의 별을 보는  나의 오랜 여행의 법칙이었기 때문이다.  중에 가장  이유는  번째 이유였다. 이번 휴가는 오로지 프리다이빙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일정들은 다이빙을 위한 곁가지에 불과했다.

 C와 저녁 식사를 끝내고 투어 차량 픽업 시간 전에 호텔 로비에 도착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신청한 투어 가이드로 추측되는 이가 사람들 이름을 부르며 인원 체크를 시작했다. 예상대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나는 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나이를 먹고 이런 투어를 신청하면 혼자 멋쩍었다. 서른이 넘었는데 꼭 유치원생이 선생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행색 같아서 괜히 민망한 것이다. 여하튼 가이드를 따라 투어 차량에 탑승하니 이미 좌석은 꽉 찼기에 내가 탈 곳 하나 겨우 남아있었다. 요즘 해외여행이 슬슬 풀리기 시작하면서 괌에 한국인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나는 남은 자리에 슬그머니 앉았다. 마침 그 자리는 창가였고 덕분에 나는 괌의 밤거리를 즐기며 이동할 수 있었다.

 어느 언덕(인지 산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리는 영 꽝이었고 지금도 유명한 길치다)에 이르자 가이드는 차를 세우고 내리라고 했다. 놀랍게도 투어 차량은 한 대가 아니었는데, 내가 탄 것과 같은 큰 차량이 하나 더 있었고 작은 승용차 한 대가 더 있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자 나는 빠르게 피곤해졌다. 사람이 많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딱 질색이었다. 가이드는 한 명이 아니었는데 사진기사들, 투어 차량 운전기사들 그리고 투어 진행자까지 팀 구성이 꽤 알찼다. 가이드는 영업 비밀이라며 핸드폰으로 밤하늘의 별이 잘 담기는 촬영법을 전수해줬고 나는 그를 따라 목적지로 걸어가면서 쉴 새 없이 핸드폰에 별을 담았다.

핸드폰(아이폰12프로)로 직접 찍은 별. 갤럭시로는 찍히지 않아 결국 아이폰을 새로 샀다고 사진기사님이 말했다


 투어 장소에 도착하자 그는 계절과 지리적 위치 등을 따져 지금 괌에서 잘 보이는 별자리를 설명해주었고 나는 꽤 경청했다. 들을 때는 분명 재밌었는데 지금 와서 되새겨보니 기억나는 게 없다. 투어 때 나누어준 맥주 때문인지 내 기억력 때문인지 굳이 판별하진 않겠다.

 가이드는 별자리 얘기를 끝내고 한 팀씩 호명하면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다들 사진을 찍기 위해 온 듯했다. 대부분 자녀를 데리고 가족여행을 왔거나 신혼여행을 온 게 분명했다. 가이드는 앞에 맥주와 음료, 과자가 있으니 마음껏 먹으라고 했고 나는 사양치 않고 맥주를 가져왔다. 괌의 밤하늘은 새카맣고 별은 쏟아질 것 같았다. 가이드는 별이 잘 보인다고 운이 좋다고 했다. 돗자리가 있었으면 맥주를 마시고 바닥에 누워서 별을 봤을 텐데. 그러면 별을 자수로 박은 검푸른 천을 덮은 황홀한 기분이었을게 분명했다. 아마 그 천은 명주실로 만들어 손에 미끄러질 정도로 부드러울 거야.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어느새 옆으로 온 가이드가 슬쩍 말을 걸었다.

 -혼자 왔어요?

 -네.

 -가서 사진 좀 더 찍어달라고 해요.

 -아까 찍었는걸요.

 -저 친구들은 벌써 네 번째 찍고 있는데? 가서 더 찍어 달라해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남자 친구는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우리 사진작가님도 솔론데.

 -하하하

 왜 어른들은(이렇게 말하는 나도 남들이 보면 어른이다. 나는 가끔 어른의 정의를 새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혼자 지내는 성인들을 보면 어떻게든 짝지어 주려고 할까. 그와 나는 사진가와 피사체, 판매자와 고객으로 만나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저 만나는 이가 없는 남녀이기만 하면 그들의 눈에는 조건이 충족되는 듯하다. 그의 의도가 순수한 호의임을 알기에 나는 익숙하게 웃어넘기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괌에 온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여기서 만난 아내와 세 번 만났을 때 프러포즈를 했고, 사랑하는 그가 배곯지 않고 편한 삶을 살길 바라,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다 했더니 오늘에 와서는 가이드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 결과 지금은 벌이가 아주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랑이란 그런 걸까. 오랜 만남이 진정한 사랑의 조건이 아닌 것처럼 짧은 만남에서 여생을 함께해야겠다는 확신이 들 수 있는 걸까. 사랑하면 그의 평안을 위해 나의 고됨은 감수하게 되는 걸까. 나는 그와 아내의 사랑이 지금과 같길 진심으로 응원하고 바랐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귀가하기 위해 투어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 누가 불쑥 옆으로 다가왔다. 키가 크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첫마디는 혼자 왔어요? 였다. 그렇다는 내 대답에 이어지는 말은 ‘저도 혼자 왔어요!’ 우리는 짧은 시간에 꽤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그녀는 내 나이를 듣고 더 어린 줄 알았다며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김해, 부산 쪽에 살고 있으며 퇴사 기념으로 여행 중이었다. 그리고 내일이 마지막 일정이라고 했다. 가이드가 혼자 여행하러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얘기해 나에게 말을 걸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우리 내일 같이 밥 먹을까요?”

 이런 게 여행의 맛 아니겠는가. 여행지에서는 나이,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다 친구가 될 수 있으니. 그녀(앞으로 M이라 칭하겠다)는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 혼자 다니다 보니 맛있게 먹은 게 없어요, M은 웃으며 말했다. M과 나 둘 다 내일 오전에 일정이 있었다. 그녀는 돌고래 크루즈 투어가, 나는 프리다이빙 트레이닝이 있었다. 우리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주고받으며 내일 일정이 끝나면 서로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별빛 투어도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각자 타고 온 차량으로 되돌아갔다. 차량 앞에 도착하자 그새 나와 친해진 가이드는 조수석에 앉아도 된다고 은근한 호의를 베풀었다. 비좁은 뒷좌석에서 그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조수석으로 좌석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사양치 않고 냉큼 조수석에 올라타자 가이드는 그동안 괌에서 살아온 그의 일생을 얘기했다. 연장자의 삶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살아볼 수 없는 삶을 간접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마치 책을 읽는 것과 유사하다.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것과 대화를 좋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일맥상통한 일일지도 모른다.

 차량은 호텔 앞에 무사히 정차했다. 괌에서의 첫 일정이 모두 끝난 것이다. 샤워하고 침대에 걸터앉으니 얇고 하얀 시트의 퍼석한 감촉이 몸에 감겨왔다. 자동으로 작동된 에어컨에 방 안은 건조하고 추웠다. 아직 남아있는 감기 후유증과 싸늘한 방 온도가 내일 있을 다이빙에 악영향일까 걱정이 되었다. 코가 막히면 이퀄라이징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에어컨을 끄고 간접등만 남긴 채 모든 조명을 껐다. 이대로 잠들기 아쉬워 파친코를 펼쳤지만 몇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고개가 꾸벅 떨구어졌다.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이 기다려지는 법이다. 책을 덮고 누워 내일 M과 만날 식당을 찾아보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커피로 가득한 첫날이었다.




P.S.1) 통신사가 SKT면 별빛투어를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 T멤버십 어플을 깔고 '글로벌/국내여행'을 누르면 '괌'에서 액티비티 할인을 포함한 기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P.S.2) 별빛투어의 목적이 사진 촬영이라면 무조건 화이트 컬러의 옷을 입어야 한다. 까만 배경에 하얀 옷과 쏟아질 것 같은 별이 인생샷을 남기게 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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