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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플 Sep 25. 2022

4. 여행할 때 꼭 필요한 것을 보기에서 고르시오

추신. 복수 정답 가능

 여권이라든가 세면도구와 같이 뻔한 물품이 아닌 이번 여행에서 오직 나의 행복만을 위한 나만의 필수품을 소개해보겠다.


1. 책

 여행할 때마다 새로운 향수를 구매한다는 어느 연예인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 향수를 뿌리면 그 도시로 회귀한다는 그의 말은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고등학교 친구인 D는 여행하면 주제곡을 정해 그 노래를 계속 듣는다고 했다. 일상으로 복귀해 그 노래를 들으면 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난다는 D의 말 또한 감성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는 여행할 때 책을 한 권 챙긴다. 목표는 여행하는 동안 그 책을 다 읽기. 그러면 나는 훗날 책의 제목만 봐도 그날의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마치 여우를 길들인 어린 왕자처럼 책이 나를 길들이는 것이다. 상당히 무겁고 비효율적인 낭만이다. 그렇지만 원래 낭만은 효율을 따지지 않는 법 아니겠는가. 효율이라던가 가성비 같은 단어는 현실에 적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하여 이번 여행에 꼭 챙겨야 할 물품 중에 하나로 ‘파친코’가 채택되었다. 비록 미국 본토는 아니지만, 미국령에서 미국 책을 읽는 거, 꽤 느낌 있지 않아?

 일요일에 떠나 일요일에 돌아오는 7 8 일정  B 합류하는 날은 목요일. 그러니까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4일은 혼자 일정을 채워야 했다. 가족여행의 성지에서 혼자 무얼 하고 보내야 하나, 처음엔 막막했으나 탁자에 올려진 파친코를 보니 절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해가 지는 해변에서,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카페에서, 깨끗하고 하얀 시트가 깔려있을 숙소의 푹신한 침대 위에서 나는  책을 완독  예정이었다.

2. 콘택트렌즈와 선글라스

 소품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를 꼽자면 모자, 향수, 그리고 선글라스가 있다. 아쉽게도 선글라스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쉽게 사용하지 않게 되는데 안경을 쓰지 않으면 세상이 포토샵으로 블러(blur) 처리를 한 것처럼 뿌옇게 보이는 내 형편없는 시력이 첫 번째 이유요, 평소 일주일 중 닷새 동안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실내에서 일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들의 스케줄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래서 여행 물품을 챙길 때 평소 쓰지 못하는 선글라스를 원 없이 쓰고자 하는 굳은 결심으로 여행용 가방에 가장 먼저 던져 넣곤 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할 때도 어김없이 얕은 먼지가 쌓인 채 서랍 구석에 처박혀있던 선글라스를 꺼내 가방에 우선으로 집어넣었다.

 선글라스 렌즈에 시력 보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콘택트렌즈는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준비물이다. 왜 귀찮게 렌즈를 끼냐며 애초에 선글라스 렌즈에 시력 보정을 하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시력이 좋은 사람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다. 만약 선글라스를 벗어야 하는 상황에서 렌즈를 끼고 있지 않으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축복받은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3. 양산

 세 번째 품목에서 다들 의아한 탄성을 내지를지도 모른다. 양산이라고? 우산이 아니라 양산? 두 번, 세 번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대답하겠지. ‘네, 양산이요.’

 특히나 이번 여행지에서 양산은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태양 빛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는 게 무서워서라는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 다이빙을 하는 사람이 피부가 타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너무 강한 햇볕은 현기증을 유발했다. 뜨거운 여름에 에어컨을 쉬지 않고 틀어놓는 서늘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생활하다 이따금 밖으로 나오면 아찔함에 걸음을 멈추기 일쑤였다. 정오의 낮볕은 간간이 멀미를 일으켰다. 열이 많아서 그래요. 직장 상사는 항상 내가 열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온도가 낮아져 시린 손끝을 매만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괌은 사시사철 여름인 곳이었다. 일 년이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지는 태양의 땅. 쏟아지는 양기에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내 한 몸 숨길 수 있는 작은 그늘이 필요했다. 볕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오히려 그를 향한 진실함이 더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데도 나는 햇살을 사랑하고 있었다. 해는 지구의 온갖 것에 빛을 뿌리고 있었고, 나는 그중 하나일 뿐인데도 말이다. 모두를 사랑하는 것은 실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나는 일평생 지독한 짝사랑 중이다. 양산은 가혹한 짝사랑에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4. 마스크와 스노클

 예약한 프리다이빙 업체에서는 마스크와 스노클을 대여해준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종식되지 않은 COVID-19가 나를 찝찝하게 했다. 망설임은 배송을 늦출 뿐이다. 나는 당장 핸드폰 잠금을 풀고 마스크와 스노클을 주문했다.


  마스크를 살 때 고려한 것은 두 가지였다. 초보가 사용하기에 너무 고스펙이 아닐 것, 사진을 찍었을 때 예쁘게 나올 것.


 본디 장비에 크게 욕심이 없는 편이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 로그(다이빙 횟수를 로그라고 한다) 수가 늘어나 실력이 일취월장하면 그때는 남들이 말려도 좋은 장비를 사고 싶어질 터였다. 인터넷과 프리다이빙 커뮤니티에 검색해 입문자들에게 추천하는 적당한 마스크를 찾아냈다. 그다음에 고를 것은 마스크의 색이었다. 스노클은 마스크 색과 맞추어 사면 될 일이었으니, 과연 어떤 색의 마스크가 가장 예쁠 것인가가 최대의 난제였다. 성능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을 아시나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일 거다. 옛 선조가 한 말 중에 틀린 것은 거의 없어요.

 그렇게 하얀색의 마스크와 스노클을 주문했다. 현대인은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손가락을 옆으로 쓱 밀기만 하면 간편하게 주문이 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손가락 슬라이딩 한 번에 손쉽게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마법이 부가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5. 그 외에 잡다한 것들


110v 돼지코 : 한국과 다르게 괌은 110v 전압을 사용한다. 다행히 대만 여행 때 사두었던 돼지코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잘 보관되어있었기에 전혀 문제없었다.

모자 : 아침에 엉망이 된 머리를 꾹 눌러 정리하기에 모자만큼 편리한 것이 없다. 게다가 뙤약볕에 뜨거워질 정수리를 보호하는 기능까지 있으니 두고 갈려야 갈 수가 없는 필수품이다.

수영복 : 사실 수영복이 잡다한 것에 들어가는 것이 맞는가, 에 대한 고찰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번 여행에서 하루에 대부분을 일상복이 아닌 수영복을 입고 지냈기 때문이다(덕분에 피부가 수영복으로 가려진 곳을 제외하고 새카맣게 타버려 우스워졌다는 것은 강조하지 않겠다). 일주일의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옷을 최소한으로 가져갔는데도 입지도 않는 옷이 절반이었다. 그런데도 수영복을 잡다한 물품 카테고리에 수납한 이유는 수영복 구매를 여행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었기 때문이다. 피부나 다름없이 수영복을 입고 살았으나 구매를 미룬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무언갈 준비하고 구매하는 데 취미가 전혀 없는 게으른 인간이어서, 그게 다였다.

 수영복을 늦게 산 건 귀찮아서라는 별 볼 일 없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여름이 끝난 추석에 휴가를 가다 보니 쇼핑몰을 뒤져봐도 마음에 드는 수영복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연유였다. 수영복을 고를 때 가장 큰 고려사항은 색깔이었다. 무조건 초록색이나 흰색일 것! 웬만하면 원피스일 것,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면 투피스도 허용할 것.

 그렇게 몇 날 며칠을(그래 봤자 3일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쇼핑에 취미가 극히 없다) 쇼핑몰을 뒤져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을 주문했다. 과연 이게 나한테 어울릴까?라는 의문이 들고 머리에 빨간 경고등이 울렸으나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것을 찾아내기에 너무 많은 수영복의 향연에 지친 지 오래였으며, 어울리지 않을까 봐 입고 싶은 것을 시도하지 않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짧아 아까웠다. 친구 H는 ‘안 입어봐도 잘 어울릴 게 뻔해’라며 우정 필터를 끼운 눈으로 애정을 듬뿍 담아 응원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구매는 성공적이었다. 2022 S/S new 수영복이 준 교훈은 나와 맞지 않을까 고민하는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사고, 시도하고, 먹어보자는 것.


 p.s. 1) 2022년 9월 기준, 괌으로 출국할 때 필요한 서류는 3가지이다.

 1. 백신 접종 증명서

 2. CDC 서약서

 3. 괌 세관신고서

 1을 제외하고 2, 3은 국내 항공사의 경우 괌에 도착하기 전 기내에서 서류를 나누어 주기 때문에 그때 작성해도 무방하다.

 

 p.s. 2) 참고로 45일 이하의 여행 시 괌, 사이판은 ESTA 비자를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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