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다양한 진로 Part 1
실제 학교에서 진로 지도를 하다 보면 교사와 학생 모두 전공에 대한 지식이 막연할 때가 많습니다. 교사도 해당 교과와 관련이 없는 전공에 대해서는 전공 안내 책자 혹은 지인 및 졸업생의 이야기 등 간접 경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들도 그런데 학생들은 더욱 전공에 대한 지식이 좁은 편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학과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내용을 배우며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각 전공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례와 일부 전공에서는 어떤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을지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 이후 인공지능이 과연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알파고 등장 이듬해였던 2017년 2월, 5년 이상의 경력을 소유한 전문 번역사 4명과 인공지능과의 번역 대결이 세종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수백 단어 분량의 비문학(기사·수필)과 문학(소설) 구절을 영어와 한국어 2개 언어로 옮기는 대결이었고 평가는 각 분야별 30점 만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회 결과 인간 번역사는 한·영 번역에서 24점, 영·한 번역에서 25점 등 총 49점을 받았지만 인공지능에서는 한·영 13점, 영·한 15점 등 총 28점에 그치면서 인간의 완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어쩌면 당시에는 번역을 위한 학습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지금은 번역 알고리즘이 훨씬 더 개선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컴퓨터를 이용한 번역은 최초 규칙 기반으로 작동했지만 이후 통계 기반으로 발전했습니다. 통계 기반 번역은 문장을 단어나 구 단위로 쪼갠 다음 각각을 번역하여 다시 퍼즐을 맞추듯 번역을 하다 보니 문맥에 맞지 않은 번역이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번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을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신경망 기계 번역이 도입되면서 번역의 수준은 획기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문맥을 고려하고 전체적인 내용을 통해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추론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마치 사람이 한 것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데이터가 쌓이고 학습이 진행될수록 번역은 점점 더 개선이 되어갔습니다. 네이버 파파고의 경우 신경망 기계 번역을 도입한 후로 정확도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번역 서비스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보급이 된 지금은 인공지능의 번역이 완벽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내용의 번역은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만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실시간 통역이나 쌍방향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실제 마이크로 소프트에서는 파워 포인트 프리젠테이션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발표자의 목소리를 자막으로 제작해주는 기능을 2019년 1월 말부터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2018년 이미 전화 주문이 가능한 인공지능을 출시했고, 2019년 네이버에서도 예약 전화에 자동 응답하는 서비스를 내어놓았습니다. 곧 무선 이어폰 형태로 상대방의 말을 번역해서 귀에 들려주는 시대가 다가올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번역 속도와 정확도는 학습을 위한 데이터가 풍부해질수록 향상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언어를 통계적으로 파악하여 번역할 수는 있지만 소위 ‘맛깔나는 번역’까지 이르기는 어렵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언어는 사회적인 특징을 반영합니다. 문맥 속에서 뜻이 달라지고, 문맥과 톤에 따라서 의미가 전혀 바뀌기도 합니다. 특히 전문적인 분야에서의 통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수준으로는 정확한 뜻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는 훌륭한 통역으로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언어의 뉘앙스도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어휘를 문맥에 맞게 선택했고, 표현 능력도 뛰어났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과연 인공지능이라면 샤론 최만큼 통역을 할 수 있었을까요?
샤론 최는 미국에서 영화를 전공하면서 미국 관객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관객들은 영화의 정보가 아니라 감독과 배우들이 무슨 말을 하고 표정을 어떻게 짓는지를 궁금해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통역도 그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고 단어도 그 목적에 맞춰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통역을 하기 전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감독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통역을 하는 대상에 대해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 말 안에 담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즉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기 때문에 훌륭한 번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외교, 비즈니스, 국제적 행사, 학술 행사 등과 같은 경우 말 안에 담긴 지식과 화자의 의도에 담긴 뜻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경우 학습을 위한 데이터도 충분히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학습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전문성을 갖춘 통역, 번역자의 역할은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인공지능과 협업도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쉽거나 일상적인 통번역은 인공지능이 맡고 사람은 인공지능의 번역을 검토하고, 전문적인 분야로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것입니다. 또한 인공지능 번역 모델에 대한 연구도 계속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음성 인식을 비롯한 언어를 바로 인식하는 기능이 확대될 것이고 이 기능의 연구에서 말의 구조와 어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들과의 협업은 더 많아질 예정입니다. 실제로 한국외국어대학교는 영어학과를 영어와 언어 공학 전문가의 역량을 갖춘 인재로 양성하는 ELLT 학과로 바꾸었습니다. 이 학과에서는 언어 데이터가 담긴 빅데이터를 다루고 자연어 처리, 음성 인식 등의 과목들도 배울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즉 언어와 인공지능과의 공존 및 협업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어학 계열이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임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