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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딩하는 수학쌤 Apr 26. 2022

위로는 상황이 아닌 시각을 바꾼다


위로..


 모든 사람은 행복을 원하고 살아가지만 애석하게도 자신의 삶에 100%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어릴 때 부모님들은 늘 "밥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라."고 하셨지만 밥이 행복을 다 채워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송하게도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던 우리는 외식이 고팠고, 지금의 어린이들은 외식이 아닌 맛집이 고프다.


 불만이나 불만족이 폭발하거나 슬픔에서 몸부림칠 때 누군가 다가와서 위로를 해줄 때가 '간혹' 있다. 간혹이라 함은 대부분은 혼자 끙끙 앓다 넘어가는 경우기 많다는 것과 누군가의 위로가 전혀 위로가 안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어쩔 수 없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늘 원하지만 대부분 내 마음이 아플 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감내해야 한다..인생을 살아보니 '인생은 셀프다.'라는 불멸의 진리는 늘 유효하다. 어릴 때 수능 전 아무리 노력해도 불안함은 피할 수 없고, 실연의 아픔이나 군대가기 전날 밤의 답답함, 취업 합격 대신 낙방의 소식을 접할 때처럼.. 결국에는 시간을 보내며 아파야 나을 때가 많다. 대부분의 아픔은 어쩔 수 없이 혼자 감당해야할 때가 많다.


 후자의 경우 같은 말로 같이 위로를 해도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험에 망해서 기분이 꿀꿀한데 전교 1등이 와서


"나도 이번에 망했어. 아는 거 세개나 틀렸지 뭐야. 아, 전과목 통틀어서."


라고 말하면 살짝 내 주먹의 힘을 테스트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기 마련. 그런데 진짜 고생하며 공부한 걸 잘 아는 친구, 그것도 내가 응원하는 친구가 와서


"말도 마, 난 더 망했어. 에이...떡볶이나 일단 때리자."


라고 하면 그냥 그게 위로가 되듯. 그 때 먹는 떡볶이는 진짜 0cal라고 믿어도 된다.




부모..


 어느새 부모가 되어 살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자녀다. 밉든 곱든 하루 종일 지지고 볶든.. 진짜 네가 내 자식이 맞는지 어쩜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한국어를 아직 모르는 외계인인가 싶다가도, 어느새 쌔근쌔근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오늘 하루 더 잘해줄 껄.. 그 때 야단치지 말고 넘어갈 껄..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했는데 오늘 못 사줬네. 다음주엔 사줘야지.. 이런 마음이 절로 든다. 늘 모자란 부모로 옆에 서 있는게 미안할 뿐이다. 조금 전의 분노와 속상함은 가라앉고 어느새 이런 소중한 아이가 왜 하필 나처럼 모자란 부모에게서 태어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면 자책의 무한 루프에 허우적거린다. 매일 아침마다 좋은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늘 자기 전 아쉬움만 남는 날이 많다.




부모가 부모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주는 위로


 4/11-15 고난 주간 기도회에 매일 한 분의 선생님씩 소중한 나눔을 주셨다. 선생님들의 젊은 시절의 고뇌를 들으며 옛날 생각도 났다. 과거의 나는 어땠을까.


 그러던 중 목요일에는 보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여름 휴가를 강가로 갔고 돌아오던 날 둘째를 데리고 화장실을 갔다. 남편은 짐 정리를 부지런히 하다보니 첫째가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고 경찰과 119에 신고를 했는데.. 119 대원이 물속에서 아이를 찾았다. 다급히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지만 끝내 첫째는 하늘나라로 떠나고야 말았다.

 몇년이 지나 둘째가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렸다. 하루는 꿈을 꿨는데 천국에서 오빠랑 예수님이랑 재미있게 놀아서 너무 좋았다며, 그 그림을 위의 사진과 같이 그렸더란다.


 얼마나 아팠을까..가슴과 마음속에 묻어야하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자책감, 미안함의 눈물을 닦아가며 첫째에게 다 못 주었던 사랑을 지금의 자녀에게, 이화의 학생에게 나누는 모습.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들. 듣는 내내 눈물이 났다. 첫째를 휴가에서 잃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 첫째를 그리워하며 가족들과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며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


 같은 부모이기에..이화에서 얼마없는 친구이기에..그 이야기가 나에겐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부모가 부모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주는 메시지였다..분명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현미경으로 보고 계신 듯하다. 내가 거부할 수 없는 메시지를 강렬하고 분명하게 마음에 주사로 쑥 놓으셨다.




위로는 상황이 아닌 시각을 바꾼다


 위로는 상황을 바꾸는게 아니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다. 22살 겨울에 짧게 만났던 필드메달리스트였던 수학자 Zelmanov 교수는 나에게 대수학 강의를 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수학을 힘들어하던 걸 공감해주었다. 그 만남을 계기로 수학을 성적이 아닌 학문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난 이 후 진심 수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당장 공부가 잘 안되거나 이해가 안되더라도 수학을 호기심으로 볼 수 있었고, 그 호기심은 돌고 돌아 다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주었다. 뒤늦게 안 당연한 사실이지만 내가 힘들면 남도 힘들어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걸 인정하고 천천히 가는 여유가 상황에 대한 변화였다.


 우리가 위로를 받는다고 상황이 달라지거나 마음이 순식간에 마법처럼 치유받는 건 아니다. 지난 주말동안 여전히 아이들과 때론 으르렁대기도 했고, 아이들은 여전히 말을 안 듣는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때론 알콩달콩.. 신체검사를 앞둔 초3 첫째딸은 예민했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없는 둘째는 라면만 외친다. 여전히 창의적으로 집을 어질러놨고 부모의 마음도 집처럼 흔들어놓는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자 마음에 여유가 생겨났다. 예전과 같은 모습의 주말이었지만 마음은 풍요로웠고 행복했다. 몸은 피곤한 주말이었지만, 피곤은 건강한 가족이 보낼 수 있는 특권이자 즐거움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이 많지만, 인공지능을 가능한 많은 학생들과 나누는 기회를 받은 것에 감사했다. 누군가에겐 인공지능이 고등학교 때 배우는게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미향쌤의 나눔으로 내가 처한 상황의 소중함을 다시 볼 수 되었다.


어느 것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완벽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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