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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딩하는 수학쌤 Apr 22. 2022

껍데기를 깨는 두려움에 맞서기 (feat. MBTI)

20대 때.. 나와는 달랐던 엇박자 MBTI


 포항에서 대학에 다닐 때였다. 날이 따뜻한 5월의 어느 날, 선교 동아리에서 경주에 야외 나들이를 갔는데 그때 강사님 한 분을 모시고 처음으로 MBTI를 접했다. 한 껏 에너지가 철철 넘쳤던 당시로는 ESFJ가 나왔는데 옆에 있던 형과 누나들이 


 "딱 네 스타일 맞네!"


라고 하는 게 아닌가. ESFJ의 장점을 보니 꽤 괜찮은 성격인 것 같아 보였다. 사교적이고,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고.. 오! 좋아. 난 ESFJ야. 나쁘지 않은데?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

 이후 약 150명이 참석했던 청년부 수련회에서 MBTI를 다시 했는데 또 ESFJ가 나왔다. MBTI 유형에 따라 조를 나눠 활동을 했는데 ESFJ 모임은 교회에서 호응 좋고 리엑션이 넘치는 사람들을 죄다 모아놓은 듯했다. 자기소개 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미 우리 쪽 조에서는 왁자지껄 난리였다. 진행자도 없고 처음 본 사람도 많은데 이미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야! 지나가면서 봤는데 나랑 비슷한 거 같더라. 역시 ESFJ였구나?" 

"어쩐지! 누나랑 잘 통할 것 같더라니까요." 

"아 , 그런데 너 이름이 뭐였더라? 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ㅋㅋㅋㅋ 저 OO이에요." 


이러면서 알아서 소개하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도 뒤질세라 잽싸게 빈틈을 노려 대화에 합류했고, 그들과 옆에서 웃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열심히 수다를 떨고 리액션을 주고받으면서도 뭔가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마치 이 소란한 곳에서 내가 소외되지 않으려고, 소위 인싸 모임에 떨어지지 않고 싶어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타이밍에 맞춰 적절하게 리엑션을 폭발시키며 깔깔댔다. 그 당시에는 막 대학에 들어왔던 새내기 정도였으니 형과 누나들의 귀여움도 받을 수 있었겠지. 그런데 그 모임이 끝나고 하루가 정리될 때 내 멘털 체력은 너덜너덜해있었다.




모든 게 사실 모범생 콤플렉스


 누구나 사실 콤플렉스가 다 있다. 나에게 20대의 ESFJ는 40대인 지금의 내가 솔직히 평가하자면 내 콤플렉스를 감추고 싶었던 필사적 노력이었다.(20대의 나는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할 거다.) 사실.. 키도 작고, 별로 매력적인 구석이 없던 나는 성격이라도 좋아야 할 것 같았다. (하필 공부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수학을 하는 바람에.. 어디 가서 전공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꺼내는 순간 갑분싸..) 그래서 전공도 감추고 찬양, 음악이라는 포장을 씌워 사람들과의 모임에 늘 합류하고자 노력했다. 그 모임에 잘 합류해


 '대인 관계가 좋다.' 

 '사회생활 잘한다.' 

 '걔는 정말 성격이 좋아. 서글서글해.'

 '그 친구 진짜 사람 좋지 않냐?'


이런 평을 듣고 싶었던 바람이 있었지.. ㅎ 아마 지금 내가 20대의 내 모습을 본다면.. 지쳐있는 너덜너덜한 마음이지만 억지로 마음을 짜내 활짝 웃는 표정을 지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사실 30대 초반까지 ESFJ, 간혹 나오는 ENFJ를 지향하고 행동도 그렇게 맞춰가려 했지만 정작 마음은 늘 엇박자였다. 선교중창단(이하 선중) 지도교사를 할 때 학생들과의 만남이 기대되기보다는 누구보다 바들바들 떨었고..  샘물호스피스 봉사활동을 갔을 때 병실에 방문하는 것도 너무 두려웠다. 분명 ESFJ, ENFJ라면 잘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반가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해야 하는데.. 


 진짜 내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마음이 편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쌤, 괜찮아요~ 진심으로.


 학교에서 찬양인도를 할 때 무대 뒤에서 느낀 두려움을 던져버리고 최선을 다해 날뛰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애처로울 수도 있지만 그땐 초인적인 힘이 생겨났다.. 성령의 힘인가?) 지금의 이화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유관순 기념관에 기타를 매고 무대를 뛰어다녔던 때가 있었다. 거의 공연장 수준으로 날뛰었는데 (물론 그렇게 열심히 찬양 인도를 한 날은 거의 멘털의 피곤함이 지수함수 수준으로 발산했다.) 그것도 어쩌면 모범생 콤플렉스였는지 모르지. 정말 열심히 잘해야만 한다는..


 그러던 하루.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았던 하루가 있었는데... 소위 무대 삑사리를 확 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아이들은 킥킥킥..


 소위 망했네.. 이러면서 무대를 내려왔고 예배 마치고 돌아가는데 학생들 몇 명이 다가왔다.


 "쌤, 오늘 완전 좋았어요."


 응? 뭐지? 나중에 선중 아이들에게 용기를 내서 물어봤다..


 "아, 오늘 실수도 하고. 쪽팔려 죽는 줄 알았어."

 "왜요. 쌤, 인간적이고 좋드만."

 "애들 쌤 찬양인도하는 거 좋아해요."

 "걱정 마세요. 실수하면 어때요. 뭐 우리가 앨범 내는 것도 아닌데."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꼭 잘할 필요가 없다니.. 내가 살아온 삶과 다른 이야기인데?




"그냥 사랑하면 돼."


 그러던 중 결정타가 한 방 더 날아왔다. 

 지금은 졸업생이 된, 2019년 1학년 지반 담임을 할 때 반장을 했던 H학생이 있다. H학생은 이화여고 학생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스타 제리 김연정 졸업생처럼 공부를 잘했거나 성격이 아주 싹싹하고 예쁘장한 슈퍼스타 스타일도 아니었다. (연정아, 잘 지내니? 너목보에서 반가웠다. ㅋㅋ) 여튼.. H학생이 반장을 어찌나 잘했던지 학부모 면담을 하는데 부모님들이 반장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인지라 너무 궁금하던 중 어느 학부모님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선생님, 사실 저희 애가 1학기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잖아요. 그런데 한 학기 지나면서 보니까, 지금 반장인 친구가 자기가 봐도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애가 물어봤대요. OO야, 넌 어떻게 그렇게 반장을 잘하니? 그렇게 물었는데 반장인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요?"


 "이렇게 말했대요. '난 잘 모르겠는데? 그냥.. 우리 반을 사랑하면 돼. 난 우리 반을 진심으로 사랑하거든.' 그 말에 우리 아이가 충격을 받았대요. 그러면서 진심으로 그 친구를 더 좋아하고 믿게 되었대요."


 그 말은 나도 충격이었다. 세상에,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하게 되는 방법이 사랑이라니..


그 순간 새로운 눈이 떠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대 뒤에서 그렇게 바들바들 떨던 두려움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졌던 두려움도.. 모든 걸 노력으로, 잘하려는 모습으로 덮으려고 했는데 답은 그게 아니라 '사랑하면 된다.'였다니. 그 이후 1학년 지반과의 1년은 늘 감동과 눈물이었던 것 같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난 2021년 2학년 선반과의 1년은 내 인생 가장 달콤하고 따뜻했던 교직생활 1년이 되었다. :)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보석 같은 친구들!




넌 네가 되어라. 난 내가 될 테니.


 이 이야기는 이영복 목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신데.. 이화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타인도 타인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나 자신을 돌아봤다. 늘 남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아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소속감이 내 정체성을 결정지었던 것은 아닐까. 나 스스로를 먼저 존중한 적은 얼마나 있었나.. 껍데기를 한 번 벗겨보고 싶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도 좀 해보자. (컴퓨터 교육을 공부한 것도 이때 정도였던 거 같다.)


 뭐 굳이 삶을 바꾸자는 게 아니다. 모범생의 모습을 던지는 게 아니라, 삐딱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모범생이 나에겐 더 편하니 굳이 스타일을 바꿀 필요는 없지만.. 억지로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못하면 어때. 최선만 다하면 되지. 실패하면 다시 또 하면 되고, 늘 최고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교사로서도 마찬가지.. 


 

 진짜 100% 솔직하게 삶의 모습이 아닌, 마음이 편한 대로 MBTI를 다시 해봤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는데, 그 이 후로는 10번을 하면 10번 모두 이 MBTI가 나온다. 간혹 P와 J가 왔다 갔다 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확고한 나의 스타일.


처음으로 I가 나왔을 때 너무 편하고 좋았다. 이게 나한테 맞는 옷이었구나.. 더 이상 E처럼 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수고했어. 이제 E를 졸업하렴..




두려움에 맞서는 법


 내가 맞섰던 두려움들은 껍데기가 깨어져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난 생각보다 부끄러움이 많은데. 난 겁도 많고 콤플렉스도 많고.. 실수투성이에 부족한 것도 많은데.. 그런데 그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나 자신을 만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때, 껍데기를 벗는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게 사실 행운이고 복이기도 하다.


우리 멋진 이화의 학생들과 선생님들.

정말 최고.. :)




蛇足.

 학생 때는 시험 기간에 뉴스도 재미있더니

 교사가 되니.. 시험 출제 기간에 문제 내기 싫어지면서 괜히 글이 길어지는구나. ㅋㅋ ㅠ

 써놓고 보니 딱 INFJ 스타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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