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멋진 날

BIFF(부산국제영화제)를 떠올리며

by 깔깔마녀

부산의 가장 큰 매력은 산과 바다를 갖춘 자연경관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부산의 특장점은 영화제다. 해운대 바다도 아름답지만- 특히 조선호텔이 세워진 동백섬 입구와 그 일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10월만큼은 *영화의 바다에 더 관심이 간다.

(*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책 제목에서 )

쓸데없이 의미부여를 잘하는 나에게, 10월의 멋진 날을 고르라면 바로 BIFF (부산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시간을 꼽을 것이다. 하늘도 푸르고 햇살도 찬란한 10월, 그럼에도 자연채광이라고는 하나 없는 극장에 처박혀 있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었으니.


사실 영화제의 영화는 너무 많아 취향에 맞는 걸 고르기란 어렵다. 요약된 줄거리 몇 줄에 의존할 뿐이다. 간혹 고른 영화가 재미와 감동, 작품성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알고 보면 그 정도는 다 예측하는 데... 수백 편의 영화 중 몇몇을 추려내는 일은 모험과도 같다. 그래서 전문가 추천- 주로 자막팀의 평에 귀 기울인다.-도 살펴본다. 그러나 이것도 욕심만 부추기니, 결국 운을 시험해 보는 수밖에.



#영화 고르기 1단계: 소개 책자 정독

책을 펼친다. 시험공부하듯 꼼꼼히 '밑줄 쳐' 가며 읽는다. 제목과 코드에 형광펜으로 표시해 둔다. 끌리는 영화는 페이지를 꼬불쳐 놓는다. 또다시 시간표를 대조해보며 겹치는 시간이 있는 지를 확인한다. 하지만 이걸로 끝낼 순 없다. 표가 매진되면 다른 날짜를 찾아야 하니, 보고 싶은 영화의 리스트를 작성한 후 온라인 예매를 시도.


#영화 고르기 2단계: 온라인 예매 접속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원하는 영화를 다 볼 순 없다. 왜? IT 파워하우스에 살고 있지만, 동시 접속으로 인해 원하는 영화를 구하는 건 정말 힘들다. (해가 갈수록 더~ 더~ 더~~ 경쟁이 치열하다. ) 표를 구하는 루트도 너무 다양해졌다. 유명 영화인이 나온다고 하면 금세 매진이다. 개막작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인기 있는 감독의 영화도 포기할 때도 많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영화 고르기 3단계: 은행 창구, 현매, 홈페이지의 교환 혹은 판매 게시판 이용

현장에 가서 남은 표를 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다만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 영화나 봐도 된다는 마음으로 간다. 정말 보고싶은 영화라면 맨 앞줄에 앉아야 하는 것도 참아야하느니라.


#포기해도 괜찮아.

내가 만났던 영화제의 영화 중 기억나는 것들, 그리고 재미있었던 것들을 나열해보니 대부분 재개봉된 것들이 많다. 놓쳐도 상영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아쉬움도 사라진다.



10월이 되니 영화제의 추억이 떠올랐다. 최근에 뭔가 아쉬움이 자꾸 드는 데 아무래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못 본 탓도 있는 것 같다. 영화는 잔잔하고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때로는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니까.

올해는 영화제를 온라인으로 해 주면 좋겠는데. 비대면 시대에 걸맞게.

영화 못보는 답답함은 잠깐이다. 그저 올해도 무사히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the end-




글을 쓴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를 많이 봤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삶의 돌파구이자 인생의 지침서가 되어준 영화, 그리고'영화관'이 그리워서다.

또 다른 이유는 기억력 재생을 위해서다. 배우 얼굴과 이름이 매칭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기억력이 감퇴됨을 느꼈다. '그 잘 생긴 배우말이야...' (당시에는 조지 클루니) 벌써 이런다.


CIMG0085.JPG 런던




*기억나는 영화* (기억나는 것만, 기억나는 순서대로 나열)


<쉐이프 오브 워터> - 독특한 스토리에 감탄. 판타지 동화처럼 사랑스러운 분위기. 실험실의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이라니, 정말 참신하지 않은가!

<아르고>- 스릴 넘치는 영화. 벤 에플릭이 감독이자 주연. 영화적 재미 한가득. 한마디로 "와!" 했던 기억난다.

<아버지의 자전거>- 조용하고 잔잔한 감동 그 자체.

<맹인 영화관>- 내게 좀 특별한 계기가 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의 영화. 켄 로치 감독은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현실감 있게, 정감 있게 그려낸다. (결이 비슷한 그의 또 다른 작품, <미안해요, 리키>는 너무 암울했다.)

<해피 고 러키>- 무난하고 평범하지만, 배우의 연기력을 믿고 선택.


<다운사이징>- 멧 데이먼이라는 '믿고 보는 배우'를 믿고 선택. 후반부로 가면서 약간 지루했다. 그리고 맷 데이먼의 후덕한 모습과 본 트릴로지의 날렵한 외모가 교차되는 바람에...

<송곳니>- 그리스 감독의 영화, 재미있지만 비위 거슬리는 장면이 있고, 충격적인 결말에 당황 그 자체.

<르 아브르>- 난민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 잔잔하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감동 그 자체.

그 이후 아키 카우리스마키(핀란드) 감독의 영화를 줄곧 보았지만, 르 아브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퍼스널 쇼퍼>-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매력을 발견했던 영화. 영화 포스터에 나온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극 중 이름)이 입은 비즈 달린 멋진 옷이 아직도 기억난다. (포스터도 영화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로 작용)

트와일라잇에서 그녀가 보여 준 연기는 답답하고 부담스러웠다. 주로 인상만 쓰고 있는 수동적인 모습밖에 기억나지 않았는데,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와 <카페 소사이어티> <스틸 앨리스>에서 보여준 역할이 훨씬 비중 있고 멋있었다.


<무협>- 정통 복수극? 중국 무협 영화의 고전을 보는 듯함.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오락성 다분한 영화~.


<물을 데우는 뜨거운 사랑>- 일본 영화. 가족영화. 다행히 티어저커는 아니라 보고 나서 마음이 편했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짙은 블루> - 일본 영화. 이름처럼 블루(우울) 했던 영화. 좀 지루했다. 메시지가 있겠지... 나는 찾기 싫을 뿐...


<뚱보 케빈의 살 빼기>- 모두 관람해도 무방한 영화. 흥행 예감은 들지 않았다.

<팻걸>- 국제영화제의 작품이지만 그 후 다른 소극장에서 본 영화. 충격적인 결말로 당황스러웠다.

<토털 웨스턴>- 이 또한 영화제에서 본 것은 아닌데, 상상보다 너무 잔인했던 기억만 난다. 고문 장면...


<패터슨> - 아담 드라이버가 취미로 시를 쓰는 데(요즘 말로 부캐, 본캐는 운전사) 수묵화 같이 담백함이 느껴졌던 영화. 스타워즈에서 광선검을 휘두르는 아담 드라이버가 떠올랐지만 또 다른 순박한 모습이 신선했다.

< 더 레이디> -당시에는 감동적이었지만, 지금은 그 감동이 반으로 줄어버린 아웅산 수치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이후드> - 긴 시간 동안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 12년 동안 한 소년의 성장을 다룬 영화로 동일인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지금은 주제가만 기억난다.


제시 아이젠버그의 속사포 같은 대사처럼 속도감 있는 전개, 참신한 스토리가 돋보였던 영화 <벌새 프로젝트>와 마일스 텔러가 내한했던 <블리드 포 디스>도 재밌게 봤구나~.


영화제 영화가 아니라도 세상에는 정말 좋은 영화들이 많다. 소위 말하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이런 영화들 찾아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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