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

by 깔깔마녀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_김서령이 남긴 ' '조선 엄마의 레시피'

저 자: 김서령

출 판: 푸른 역사

읽은 날짜:2020.3.31


배추적(나는 배추전이라고 불렀다.)은 좋아하는 엄마의 음식 중 하나다.

배추는 김치의 주재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해주신 배추전을 먹은 후, 배추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얇게 부쳐낸 배추전에 간장이 더해지니 달큰한 맛이 살아난다. 어린 내게도 그 맛은 반할 정도였다. 야들야들한 배추전도 좋지만 아삭아삭한 봄동이 주는 식감과 자극 없는 다디단 맛이야말로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 후 들깨를 넣은 배춧국, 배추 겉절이 까지도 좋아하게 되었다. (아래부터는 배추적- 책 내용대로)


그런데 책에는 "배추적의 맛을 아는 것은 외로움과 아픔에 사무쳐본 후에나 가능하다. 생속일때는 그 맛을 알기 어렵다."라고 하는 데. 생속이 뭘까. 생각해보니 언젠가 엄마도 "아직 생속이라 그렇다. 나이 들고 결혼하면 또 다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슨 뜻인지 모른 체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생속의 반대말이 '썩은 속'이라는 것을. "속이 썩어야 세상에 관대해질 수 있고, 산다는 건 결국 속이 썩는 것이고 얼마간 세상을 살고 난 후엔 절로 속이 썩어 내성이 생기면서 의젓해지는 법"이라고. (책 17page ) 생속의 내가 느끼는 맛과 썩은 속을 가진 이들이 말하는 맛에는 간극이 존재할지라도, 배추적에 담긴 '깊은 맛'에 대한 짐작은 가능했다.

한쪽에선 물을 끓여 날배추를 데치고 한쪽에선 밀가루를 후리고(개고) 또 한쪽에선 솥뚜껑에 들기름 칠할 무를 깎는다. (중간 생략) 배추적은 깊은 맛을 가진 음식이었다. 깊은 맛을 설명하려면 할 수 없이 얕은 맛을 들고 나와야 한다.(중간 생략) '얕은 맛'이 혀가 느끼는 맛이라면 '깊은 맛'은 위가 느끼는 맛이다. 어쩌면 '깊은'과 '얕은'이란 수식은 그것을 느끼는 신체 부의의 심천(深淺)때문에 붙여진 것일 수도 있겠다....

배추적을 만드는 과정부터 맛에 대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탁월한 묘사가 눈에 띄는 데, 남다른 맛에 대한 표현은 이것만이 아니다. 지역 사투리와 순우리말이 어우러진 문장은, 처음 접하는 단어가 많아 생소했음에도, 혀끝에서 그 맛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명태 보푸름의 개결한 맛이여, 순하되 슬쩍 서러운 갱미죽, 들큰 알싸 먹을수록 당기는 집장, 새끈한 증편, 달콤함을 옹호하다, 히수무리하고 부드럽고 슴슴한..."

김서령 작가만의 풍부한 어휘력과 문체가 군더더기 없이 흘러나와, 잘 알지 못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리듬을 타듯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책에는 화려한 음식 사진 한 장 없다. 그렇다고 미사여구로 치장하여 어떤 맛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수수하고 담백한 분위기가 정성 들인 엄마의 음식을 더욱 정결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저자의 고향 안동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 가득한 글은 오랜 숙성을 거친 장맛처럼 깊고 인상적이었으며, 그 이미지가 너무나 정답고 포근했기 때문인지,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조차도 그곳에 대한 추억을 곱씹는 기분이 들었다.




김서령

칼럼니스트, 안동 태생

<참외는 참 외롭다.> <김서령의 가> 등





엄마가 만든 명태 보푸름(사실은 블렌더를 사용했다. 과거에는 손으로 일일이 다 찢고 빻았는데 이제는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떠오르는 영화*


임순례 감독,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리플 포레스트: 겨울과 봄>

(리틀 포레스트 일본 원작 만화도 있습니다.)

키키 키린 주연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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