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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Mar 07. 2021

그때도 지금도 삶이 팍팍하긴 마찬가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이제야 읽었다. 

적어도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때는 읽는 책이라 생각하니, 너무 늦은 것 같다. 지각자.

하지만  책과의 인연은 2021년이 되어서 성사되었고. 

늦게나마 그의 책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나마 세상을 조금이라도 알고 난 후 읽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일찍 읽었거나 세상의 풍파를 모를 때 만났다면, 어땠을까?' 과거, 영화를 볼 때와는 달랐다. 지금은 과히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주인인 노파와 리자베트를 도끼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 달아난다. 그 후 라스콜리니코프가 자백을 하기까지 수많은 갈등과 고뇌 속에 살아가는 모습은 실로 끔찍하기 짝이 없다. '한낱 이를 죽인 것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에 사로잡힌 체 괴로워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일이 얽혀 하나로 점철되는 걸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속사포 같은 대사는 속도감 있게 극을 끌고 나갔다. (대체로 인물들은 갈등 상황에 처해있고, 같은 경우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종종 책의 맨 앞으로 돌아가 확인해야 할 정도로 긴 이름- 러시아 소설을 회피하는 이유의 한 가지- 때문에 중간중간 지체되긴 했지만, 이는 문제도 아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니 절로 혀에 감긴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갑자기 이름이 바뀌었지? 아, 이렇게도 부르는구나. 예를 들면 두냐, 두네치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라스콜니코바, 이는 모두 동일인물)


  라스콜리니코프가 일을 저지른  후 몇 차례 기절하고, 초조해하며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니, '차라리 자백을 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극도로 날카로워진 그의 행동과 불안에 떠는 모습이 이를 뒷받침해주듯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죄와 벌>의 종교적인 메시지와 무게감을 차치하고, 중간중간 유머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으니 주로 라스콜리니코프의 친구 라주미힌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그는 오지랖이 넓다. 사사건건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실은 애정을 기반으로 한 행동이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찾아왔을 때도 가족처럼 대하는 모습이 분위기를 다소 밝게 만들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믿어도 될, 그리고 뒷일을 부탁해도 좋을  한 사람)

 

  라스콜리니코프포르피리 페트로비치(예심판사)를 찾아가 서로 밀당(사건의 전말을 대부분 알고 있는 포르피리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은근슬쩍 떠 보려는 라스콜리니코프와의 대화에서)하는 부분도 무척 흥미 있게 지켜보았다.  당장 라스콜리니코프를 체포할 것인가, 아니면 자백을 기다릴 것인가.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책을 놓치지 않았던 것은, 번역가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나는 이 두꺼운 책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책에 대해 이렇다고 말할 만큼 문학적 소양이 깊지 않기에,  그저 극 중 인물들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생각해보려 한다.


  사실 어떤 장면은 막장드라마에 가까워 보인다. (막장이란 말을 대체할 용어를 찾고 싶다.)

스비드리가일로프(두냐가 가정교사로 있던 집의 가장)의 과거-입에 담고 싶지 않을 만큼 추잡한 놈-가 그랬다.

또,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소냐 의붓어머니)의 삶도 고달프기만 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남편의 추모식을 위해, 없는 살림에 보여주고자 이것저것 준비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그녀는 이를 일말의 자존심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실성하고 페병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를 볼 때, 한 마디로 너덜너덜해진 영혼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냐루진 페트로비치의 계략에 빠져 도둑으로 몰렸던 대목은 막 나가는 드라마(펜트하우스만큼은 아니겠지만)의 클리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자, 이쯤에서...

나는 잠깐 극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굴까. 하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야말로 소모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내 수준이 그 정도인가 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일까?

장래가 촉망되는 똑똑한 어느 대학생이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소냐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회계하고 삶의 희망을 발견하니, 앞으로의 삶은 달라질 것도 같다.

  그럼, 라스콜리니코프의 가족, 여동생 두냐일까? 돈 때문에 결혼하려고 했던 그녀. 당시의 상황이 대체로 그러했다면...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파렴치하고 예의 없고 쪼잔한 인간(루진 페트로비치)과 결혼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 라주미힌과 연결되니,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아닐까.

  스비드리가일로프 일까? 온갖 더럽고 방탕한 짓을 일삼고 그래도 뻔뻔하게 잘 살아왔지만 끝을 마감하는 방식이 결국 **이었으니.


  아, 실은 이 사람이 가장 비참한 운명일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내세울 것 없던 그녀는 늘 이렇게 외친다. "잘 자랐고 교육받았다"라고. 

그러나 모두 눈치챘겠지만, 이는 그녀를 지켜주는 버팀목일 뿐 현실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앗, 한 사람 더 있구나.

탐욕적인 전당포 여주인. 살해됐으니 이도 불행한 인생 아닐까.


이처럼 책에는 다양한 인간의 유형이 등장한다.

누구 하나 완벽하게 선하고 악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러한 인간상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야말로 인간의 양면성, 아니 다층적 면모를 솔직하게 까발리듯 보여주는 소설 아닐까. 소위 말하는 끝판왕?

그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현실과도 매우 흡사할 것이다. 아니, 현실이 더하면 더할지도.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를 포함한 소외된 인물들을 바라보면,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답답하고 좁은 방, 어두컴컴한 술집, 밤 풍경 등 시종일관 회색빛 배경이 주를 이루지만 소냐두냐, 그리고 라주미힌 같은 인물이 등장할 때는 조명이 켜지는 것 같다. 무채색, 흑백의 영화에 색이 입혀진다고 할까... 라스콜리니코프 곁의 이런 인물들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본 죄와 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마쳐야겠다.

왜냐면, 이 시대의 필독서라면 그에 맞는 멋진 글을 써야 하는 데, 이렇게 말하는 게 전부니 오히려 책을 오해하게 만들 것 같아서다.

책을 운운하려니 (해설에 잘 나옴) 남의 글 인용으로 끝날 것 같아 생략한다. 


한 가지 더,

내가 읽은 책은 프리츠 아이헨베르크의 목판화 삽화가 나온다.

인물들의 표정이 캐리커쳐처럼 과장되긴 했지만, 이야말로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소장가치가 분명한 책, <죄와 벌> 

힙한 번역(<-역자의 말을 인용. 고전이 주는 위압감이 들지 않게, 오늘날 상황에 어울리는 번역을 시도) 덕분에 문장을 흡입하듯 읽을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은 어렵다. 하지만 번역가 덕분에  막힘없이 읽었기에, 자발적으로 망설임 없이 추천하게 되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마지막은 책에서 확인~.

*프리츠 아이헨베르크(Fritz Eihenberg)

*펜트하우스 2의 한 회만 봤는 데, 너무 불편했다. 그런데 계속 궁금해지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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