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깔깔마녀 Mar 24. 2021

문구는 옳다

정윤희 작가의 책 <문구는 옳다> 책소개

품격 있는 문구의 세계를 탐험하다.          


   책을 보며 학창 시절 나의 필기 습관이 떠올랐다. ‘까만 것이 글자고 하얀 것이 종이’라지만, 키워드만큼은 특별한 색을 입히거나 컬러풀한 펜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마치 설계도처럼 일목요연해져 내용을 파악하기도 쉽다. 물론 지금은 손으로 쓰는 글씨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일이 더 많다. 대신 다이어리를 꾸미는 일에 열심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나의 일상을 보면, 아트북을 만드는 기분이 든다. 물론 이를 도와주는 다양한 문구용품 덕분이다.    

문구를 선별하는 데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너무 하얀 종이는 눈이 부시니 적당히 밝은 색을 택해야 하고, 펜과 종이가 서로 어울려야 하므로 신중하게 선별해야 한다. ‘솜씨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말과 달리 적절한 도구의 선택은 조금이나마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다.       


   학교 앞 문방구를 이용하다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제법 이름난 팬시점(사무 용품과 아트 상품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을 찾게 되었고, 성인이 된 지금도 종종 대형서점의 문구코너를 들리곤 한다. 또, 박물관 미술관의 아트샵은 기본이요 여행지의 유서 깊고 명망 있는 문구점에 들려, 세련된 디자인 용품을 구입․소장하는 취미는 여전하다. 날이 갈수록 디자인과 기능이 진화하는 학용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얼마 전 나보다 훨씬 문구에 대해 일가견 있는 ‘문구 전문가’를 만났다. 자칭 “프로문구러”라는 정윤희 작가의 책을 보는 순간, 문구에 대한 방대한 정보와 수집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정한 문구 수집가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본인 스스로 문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고 생각한다면-가령, 모 커피 전문점의 플래너를 구하기 위해 서슴없이 지갑을 열고,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에 열과 성을 다하는 이들이라면-책 제목만으로도 솔깃할 것 같다. 



「문구는 옳다」 프로 문구러의 아날로그 수집 라이프 ✍

정윤희 지음/ 오후의 서재     

'문구들은 신기하게도 그냥 두면 무생물에 지나지 않다가도
사람의 손을 타는 순간 숨겨진 본능과 재능을 펼쳐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그러니 손과 문구는 톱니바퀴처럼 물려야 제 맛인 것이다.'
- 서문 중에서-          

  


  포토그래퍼이자 여행 작가인 저자가 직접 수집하고 사용해온 문구가 무려 30가지나 등장한다. 목차만 봐도 문구 편력과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만년필, 포스트잇, 플래너처럼 익숙한 제품도 있지만, 사용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독특한 물건들도 한가득 펼쳐진다. 리미티드 에디션(특별 제작 혹은 시즌별 한정판) 같은 희소성 높은 제품들을 보면 지름신이 강림할지도 모른다. 시대를 초월해 명성을 이어온 「파커 만년필」부터, 몽톡 해진 끝을 날렵하고 매끈하게 바꿔준 추억의 「보스턴 연필깎이」를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문구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남달랐다. 문구의 기능과 특징만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았고, 오랫동안 함께 한 사물과의 각별한 애정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한마디로, 저자와 친분 있는 ‘나름대로 사연을 간직한 문구들’을 만났으니, 문구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참, 문구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면 이야말로 오산이다.

플래너계의 대명사, 명품이란 수식어를 당당하게 내세우는「몰스킨」, 독서광이라면 관심 갖고 볼만한 다재다능 책갈피 「플렉스 마크」, 구매하더라도 본연의 의무를 잊고 끝끝내 소장하게 만들 정도로 예쁜, 스페인의 유서 깊은 문구 브랜드「밀란 지우개」, 문구 전문가의 눈에는 필수품인「지우개 클리너」, 네스프레소의 알루미늄 커피 캡슐을 재사용한 친환경 문구「까렌다쉬의 시그니처 849 볼펜」그 외에도 명망 있는 작가들의 칭찬이 자자한「블랙윙팔로미노 블랙윙 연필」 같은 타임리스 문구까지 꽤 상세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은, 작가가 운영하는 문구점에 들러 진열된 다양한 상품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무궁무진한 문구의 세계에 초대받은 셈이다. 클래식부터 최신의 것까지, 전 세계의 문구를 한자리에서 만났으니, 문구 박람회 혹은 문구 전시회를 관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구 고르는 일을 통해 기분전환을 하거나, 섬세한 종이의 감촉을 구별하고 포장지 패턴 하나에도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가치 있는 “문구의 가치와 품격”을 제대로 발견할 것이다.      



*책에서 언급한 문구에는 굵은 글자와 괄호 「」로 표기함.


작가의 이전글 그때도 지금도 삶이 팍팍하긴 마찬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