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깔깔마녀 Aug 20. 2021

소이 밀크? 소이소스!

사진 한 장, 추억 가득

교토 여행 2017.7.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컴퓨터 파일을 정리하다, 우연히 옛날 사진을 발견했다.(위)


  2017. 7월 교토 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토역에 도착, 목이 너무 말라 편의점을 찾는 데, 눈앞에 작은 가판이 들어왔다. 

실은 지난번 교토 방문(2016년) 당시 숙소 근처에서 본 가게인데, 시간 관계상 들리지 못했던 곳이다. 마침 팝업 매장-정확히 말하면 매대라고 해야겠지.-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가갔다.

참고로, 이곳은 콩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홈페이지를 대강 찾아보긴 했지만 어떤 종류의 상품이 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근거 없는 확신이 발동했는지, 당당하게 하나를 선택, '이거 두유입니까'라고 물었고, 직원은 '두유가 맞다'며 건네준다. 

  계산 후 곧바로 뚜껑을 열고 마시려는 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전방을 주시, 몹시 당황스러워하는 직원의 표정을 감지했다. 일본 사람들 *특유의 제스처와 함께 "노"를 외치며 달려온다.  

아, 뭔가 잘못되었구나.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고 되물었다.

그때서야, 이건 두유가 아니라 간장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소이소스. 간장, 소 데스까.

어느 지점에서 오해가 빚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건의 진위를 따져볼 수도 없다. 두 사람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을 뿐이다. 

  소이 밀크와 소이소스, 콩을 베이스로 한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일지라도, 결과물은 확연히 다르니,

하마터면 여행 첫날부터 까나리액젓 아니, 간장을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실 뻔했다.

다행히 "소이소스"는 한 방울도 쏟지 않았고 무사히 함께 귀국했다.  

그날 얻은 교훈은? 현지 언어를 배워야 한다. 아니, 항상 내 귀를 의심(확인)하라. 



  

  나는 일본어 문맹이다. 독학 일어(일본어 1O1)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자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했고, 복습을 미루니 늘 새롭다. 일본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도 종종 보고, 일본은 자주 다녔다. 물론 언어를 몰라도 여행하는 데는 전혀 문제없다. 일을 할 때도 서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으니 일어 공부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어쭙잖게 일본어로 대화를 시작했다가 더욱 난감한 상황에 빠지곤 했다. 

"스미마셍~" 까지는 언제나 무난하게 통과. 다가올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그들은 나를 일본 사람으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긴 문장을 쉬지 않고 마구 쏟아내니,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까막눈인 초보가 고급 회화반에 잘못 들어오면 이런 기분일까. 대화의 시작(인사말)은 현지인의 언어로 하자'를 원칙으로 삼았는데, 이럴 줄이야.

 결국 '저는 일본어를 못합니다.'라고, 암기한 문장을 기계처럼 반복하거나, 그것도 귀찮을 땐 간단하게 목례 또는 미소만 남긴 채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사실 내 쪽에서 먼저 묻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당시엔 영어로 물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 영어가 항상 통하는 것도 아니지. 영어도 나의 언어는 아니었지. 

그런데 생김새만 봐도 두유(음료)처럼 생기지 않았나? 내가 답을 정하고 봐서 그런지, 크기며 직사각형의 모양까지 딱 두유로 보였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큰소리로 마구 손을 휘젓던 직원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여행을 하며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다.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돌아보며 미소 짓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의 극히 일부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머릿속에만 보관해 둔 이야기인데 이제야 풀어 보았다. 케케묵은 스토리는 더 많지만, 재구성하기엔 희미해져 버렸다. 매일 추억을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니 잊고 살았다. 

 문득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여행기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정리해야 한다고. 감상이 흐트러지지 않을 때, 감동이 생생할 때 가장 확실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내 감성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버렸을까.

나는 기내식 먹으며, 영화 보고 퍼즐 풀기에 바빴지?

다행히 여행의 흔적은 남아있다. 기억은 쇠퇴하더라도 사진이 말해준다.  

여행기를 펴내지 못한 나는 이렇게  생각해야겠다.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으니, 내 여행기는 미완성 아니 현재 진행형이라고.

책으로 펴낸 여행담 하나 없으면 어때. 여행의 주인공인 "내가 기억"하는 데~. 



*만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던, 놀랐을 때의 과장된 몸짓과 억양을 상상했다. -실제로 현지에서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만화니까~.


교토의 사계를 보고 왔습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이렇게 4차례. 교토와 관련된 책은 가이드 북부터 에세이 등 닥치는 대로 독파했으니,  내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질 정도였습니다. 글 하나 써보려고.

'디자인 호텔' (가칭: home away from home)에 대한 글을 작성하였는데, 시일이 촉박해 너무 급하게 마무리. 결국 만져볼 순 없었습니다.  아파트 평면도 같지 않은, 좀 더 세련된 특별한 숙소를 알리고 싶었는데, 남은 영수증과 사진이 전부.  그리고  몇 년 뒤 이런 책을 만났습니다.  내 꿈이, 다른 누군가의 손에서 이뤄졌네요...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 * 반니 출판사




작가의 이전글 영화 <더 북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