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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Aug 22. 2021

들어줄 대상만 있다면, 고민은 고민이 아닐지도

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읽고


친구나 동료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돌아서 급 후회하거나 오히려 공허했던 경험, 누구나 한두 번쯤 있을 것 같다. 관계가 영원할 줄 알았고, 관계의 깊이도 계속 일정하게 유지될 거라 믿고 터놓았는데, 괜히 약한 모습만 보인 것 같아 찝찝할 때도 있다. 게다가 스트레스나 힘든 상황을 유독 동일한 특정인(절친 혹은 신뢰가 가는 사람은 드물기에)에게만 터놓다 보니, 상대방이 오해할 수도 있다. 고민은 그 사람 인생의 아주 한 부분, 빙산의 일각일 뿐인데도 말이다. 

결국 '에잇, 괜히 말했어.' '애초에 서로가 이해할 수 없어.'라고 혼자 결론 내리고 끙끙 앓기도 한다. 이럴 때, 마음을 보이고도 후회하지 않을 대상이 있다면, 기꺼이 찾아볼 의향이 생기지 않을까.


제목: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저자: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출판:미메시스

발매:2021.08.05.

*옷차림도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다"라는 원칙하에 튀지 않고 평범한 차림새로 출동한다.


저자는 온라인 상에서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이야기는 책과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몰이 중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제목만 들었을 때는, 백수생활백서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적극적인 해결이 아닌,  최소한의 개입을 원칙-여기에도 거리 두기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으로 삼고 임무 수행에 필요한 왕복 교통비만 받고 출동한다. 

그의 하루를 살펴보면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과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DM을 통해 의뢰인의 고민을 검토/ 승낙한 후 시간과 약속 장소를 정한다.( 주로 역이나 큰 건물 앞에서 만난다.) 왕복 차비를 받는 게 전부지만, 의뢰인의 요청 사항 중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가령 카페에서 커피를 같이 마셔달라는 등, 이는 당연히 의뢰인이 부담한다. 간혹 감사의 표시로 기프트 카드나 현금을 주면, 이 또한 성의의 표시로 받기도 했다. 


책에는 그간 <아무것도>(이하)씨가 행했던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여자 친구의 장점을 자랑하려니 뭣해서 <아무것도> 님이 들어주며 가끔 맞장구 쳐주면 좋겠어요." 의뢰인은 여자다.

"또 한 명의 제가 되어주세요. 너무 바빠서 먹고 싶은 푸딩을 못 먹고 있으니, <아무것도>님이 ~~ 에 가서, 대신 먹어주세요." 

"회식 울렁증이 있는 데, 상사에게 말하지 못해 힘듭니다. 그런데 먼저 <아무것도> 님에게 터놓았더니, 오히려 상사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소설을 쓰는데, 혼자 쓰다 보면 자꾸 딴짓을 해서 작업하는 동안 누가 감시해 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님이 작업하는 동안 제 앞에 앉아 있어 주세요."


각양각색의 사연을 읽으니,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속사정을 알게 되고 고민의 스펙트럼이 이렇게나 넓다는 사실을 통해 왠지 모를 인간미가 느껴진다. 결국 고민 없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고민의 영역이 서로 판이하게 달라서인지 좀 특이해 보일 때도 많았지만, 고민하는 행동 자체에 공감하게 되었다. 


의뢰인들도 <아무것도>씨가 직접 해결해 줄 수 없음은 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씨에게 그들의 속내를 터놓고 나면 , 스스로 해결할 용기가 생기는 것은 분명했다. 즉, <아무것도>씨의 행동은 그의 말대로 촉매 역할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무턱대고 봉사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가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생계를 유지하는 비법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고민을 들어줄 대상을 찾았음이 더 의미가 크다. 

결과도 긍정적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의뢰인들의 감사 메시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검색의 시대라, 대부분 찾아서 스스로 해결하는 게 편한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AI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씨도 만능은 아니지만, 분명 그의 존재 자체로 힘이 되었다고 하니, 새삼스럽게 사람의 온기가 무척 그리워진다.  

이 같은 새로운 소통방식이 일회성에 그치거나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아무것도>씨와 같은 존재가 하나쯤 있기를 바라며, 아니 분명 있다고 믿는다, 의뢰인들이 더 이상 같은 고민을 반복하지 않기를 먼발치에서 응원하게 되었다.





남이 개입해서 개선되는 경우보다 악화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해결해준다고 나선다는 건 곧 상황을 어지럽히겠다는 뜻이 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이 들어주기만 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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