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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Jan 20. 2023

아름다운 밤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읽고

백야, 하얀 밤.

북유럽에서 백야를 경험한 적이 있다. 'The night is still young! '

하지만 나는 잠을 잤을 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해가 지지 않는 밝은 밤이라니, 상상만 해도 설레지 않는가!

여기, 책 속 주인공(남자)은 환한 밤길을 거닐다, 우연히 운하 위 난간에 기대서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한다. 

아직 어떤 대상을 깊이 사랑해 본 적 없는 이 남자는,  미지의 여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먼발치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중, 드디어 말을 붙일 기회가 주어지니, 어설프게나마 진심 어린 마음을 표하게 된다. 

처음 보는 낯선 이의 고백...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을 궁금하게 했던 그녀의 이름은 나스첸카. 1년 전 미래를 약속했던 남자가 돌아왔음에도, 아직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매우 초조하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하염없이 애인을 기다리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다.   

사실, 그녀가 처음 보는 이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에는, 한 가지 단서를 붙인 탓이다. 

그(주인공)에게 당부하길 " ~전 모든 것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있어요. 저를 사랑해선 안 돼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사랑은 절대 안 돼요. 친구는 언제든지 좋아요."  


주인공은 나스첸카의 애인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은 걸까? 아니면, 그저 좋아하는 대상 옆에 있기만 해도 된다는, 순수한 사랑에서 시작된 행동일까. 

그렇게 며칠 밤을 보낸 두 사람, 나스첸카도 점점 주인공에게 마음이 열리는 듯하다. 그녀 자신의 사랑은 몽상에 불과한 것 같다며, 주인공에게 " 내일이라도 당장 자신의 집으로 이사 오라"는 말까지 한다.

이제, 정말, 두 사람은 미래를 새롭게 시작하는 걸까?


그렇게 며칠밤을 보낸 후 어느 날 아침, 주인공은 자신 앞으로 온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발신인은 나스첸카.

내용은 다짜고짜 용서로 시작, " ~~~ 당신에 대한 제 마음은 추호도 변함없어요.~~ 지금도 사랑하고~~~ 동시에 두 분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만약 당신이 그였다면!~~~"

그녀는 다음 주에 결혼하며, 결혼식이 끝난 뒤 "남편과 함께"  찾아가겠다는 말을 남긴다.





<백야>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제목처럼, 밝고 환한 밤 아래 두 젊은 남녀가 사랑에 대해- 대상은 달랐을지라도- 표현하는 장면을 그려보니, 벌써부터 잔뜩 기대하게 된다. 

물론,  결말은 <운수 좋은 날> 이 떠올랐지만. 


나스첸카의 행동을 어장관리, 희망고문이라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다.  나스첸카는 확실히 이기적이고 나쁜 면도 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내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물론 현실에서의 나스첸카 같은 여자는 상종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나스첸카의 행동이 무례한 건지, 주인공이 처음부터 너무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는지 따져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건 바로, 이 한 문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문학 작품이 현실을 대변할 때, 공감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사고방식, 감정 등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시대를 반영하는 분위기나 트렌드는 있을지라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데... 하는 그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나저나, 주인공은 용기 있는 사람은 분명하다.  몽상가라서 그럴까. 아무리 몽상가라도 나는 그럴 용기는 없다. 주인공 남자는 용기를 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나타난 행동임이 분명하다.  

감정표현이 서툰 남자의 모습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실은 그는 혼자 오랫동안 사랑을 꿈꿔온 사람이다. 다만 기회가 없었고, 경험이 전무후무했기에 어색한 표현이 당연하다고 본다. 

만약, 실제 상황이었다면... 경계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뭐지, 저 남자...'

결말과 달리, 책을 덮은 뒤에도 여전히 환한 밤의 설렘을 간직하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계산하려들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행동한 주인공을 보면, 우리의 이성은 늘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들지만, 가끔은 감성이 이를 앞질러 갈 때가 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럼에도'라는 단서가 왜 붙겠는가... 

 


**너무 위대한 작품에 대한 감상은 자칫하면 해석의 오류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마음 가는 대로 써 봅니다. **


*제목이 같은, 명작*

영화- 미하일바리시니코프 주연의 <백야> 

사랑과는 무관하지만 백야 하면 떠오르는 영화 <인썸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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