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깔깔마녀 Jan 25. 2023

'오늘'은 다시 찾아온다.

솔 벨로_ <오늘을 잡아라>


토미 윌헬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40대 중년의 남자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고, 이혼한 아내로부터 양육비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배우의 길을 걷기 위해, 이름도 계명했지만, 이 또한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이런 토미에게,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정신과 의사  템킨 박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 과거는 아무 소용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의지할 곳 없던 토미에게, 박사는 유일한 말벗이다. 그의  충고대로 주식 거래에 투자하지만, 결국 박사는 토미의 돈을 갖고 홀연히 사라진다.


토미가 믿을 곳은 단 한 곳, 바로 그의 아버지. 의사인 그는 노후를 호텔에서 보내며 다른 사람들의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다. 토미의 다급한 상황을 알지만, 자식과 금전 문제로 엮이고 싶은 생각이 추오도 없다.  그저 템킨 박사를 조심하라는 충고만 남긴다.


이제, 토미는 템킨 박사를 찾아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호텔을 샅샅이 뒤졌지만 온데간데없다. 거리로 나온 토미는 장례행렬 속에서 템킨과 닮은 이를 발견,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경찰의 저지로 길바닥에 나동그라지고, 인파에 휩쓸려 어디론가 흘러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교회 안이다.

바깥의 소음은 사라지고,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는 이곳에서, 토미는 낯선 이의 장례식을 목도하게 되고, 그만 폭포같은 눈물을 쏟아낸다.  





소설은 토미가 하루 동안 겪은 일을 담고 있다.

토미 윌헬름은 빈털터리에 갈 곳도 없는 신세다. 처음부터 토미의 인생이 이렇게 시작되진 않았겠지.

아버지의 뜻대로 의사의 길을 걸었다면, 아버지가 원하는 여성과 결혼했다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이름을 계명하며 배우의 길을 걷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더 나은 오늘을 볼 수 있었을까.


우리 인생에 "만약에 ~"라는 되돌이표는 없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으니 절대로 수정/ 변경하지 못한다.

미래는 불안하고, 기약할 수 없다.

현재, 지금 이 순간만이 내가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오늘에만 집중하는 것, 카르페 디엠, 시즈 더 데이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 삶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지만, 한편으론 후회와 불안으로 점철되는 것 같다.

비록 토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토미의 아버지가 냉정하게 보이지만, 실은 그도 이해가 된다. 자식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노후를 대비하지 못하고, 비참한 노년을 보내는 부모들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토미의 아버지는 자식과 거리 두기를 너무 철저히 하는 것 같다. 궁지에 몰린 사람을 모른 척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부모라면 다르지 않을까.

실수와 무책임한 행동으로 가득했던 그의 선택을 모두 긍정할 순 없으나, 토미의 처지를 아는 지금은, 옳고 그름의 판단은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척 단호하다.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토미가 못마땅한 그도, 남들 앞에서는 자식 자랑을 끊임없이 늘어놓으며 허세를 부린다.  정작 토미의 어려운 사정은 나 몰라라 하면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토미는 '소외된' 인물이다.

결국 토미가 마음껏 감정을 쏟아낸 곳은 다름 아닌 타인의 장례식장. 그가 오열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인생 전반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단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의지할 대상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부족한 그를 이끌어주는 멘토가 있었다면, 그의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일어서는 힘이 되어줄 지렛대 같은 존재가 아버지였다면...




토미가 배우로서 성공했다면, 말은 달라졌을 것 같다.

그의 인생이 재조명되었을 것이다. 결과에 따라, 같은 행동도 달리 해석되고 비치기도 하니까.

나는 토미가 의지박약이나 실패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토미가,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이름을 바꾼 데는, 본인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를 하지 않고 배우의 길을 걷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 일 수 있다.

잘 풀렸다면, 토미를 칭송하고 추앙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시피, 토미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무척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나쁜 사람은 템킨이다.  토미처럼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감언이설로  사기나 치는 파렴치한 인물.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신뢰하고 따른다.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이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슬프게 우는 토미를 보며 덩달아 울컥해졌다. Now and Here, Seise the day가 단순히 오늘 하루 잘 살면 된다로 끝나더라도, 그 하루는 때때로 치열하고 긴박하게 흘러간다. 물론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설인데,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보면, 혹시라도 전염될까 봐 미리 선을 긋는 것 같다. 또, 타인의 불행과 실패를 보면, 너무 쉽게 한 사람의 인생을 단정 짓는 경향이 있다. 동정하고 어쭙잖은 위로를 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나는 저 사람보다 괜찮은 인생이야 라며,  위로의 대상으로도 삼는다. '어쩌면 이런 심리는,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일지도...'

나는 토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잃어버린 오늘 하루로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 오늘은, 또 다른 오늘이 되어 찾아온다. "라고. 이 또한 오지랖이 되겠지만. 하루빨리 토미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 다르덴 감독의 <내일을 위한 시간>

켄 로치의 작품이 연상된다.

그 외에 <백 엔의 사랑> <편의점 인간> 등










작가의 이전글 아름다운 밤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