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즘 가득한 책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_백영옥 에세이

by 깔깔마녀

생각보다 길다. 길어지고 있다.

장마가 끝날 거라고 하지만 다시 태풍이 북상하고, 이곳저곳에서 물난리 소식이 그치질 않고...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말을 위안으로 삼아보았지만, 그건 끝이 있는 소설에서나 받아들여지는 걸까? 그럼에도 시간은 잘도 간다. 달력을 보니 이번 주말이 말복! 즐겁지 않아도 즐거워도, 언제나 한결같이 시간은 흘러가는구나. 세상일에 덤덤해진 것은 아닌 데 무신경해지려고 애쓰는 몸의 작용이 지나쳤던 탓일까. 아무래도 에너지를 소진한 기분이다.


적응인지 무덤덤인지 여하튼 그런 날들이 연속되던 중, 오랜만에 기분 좋아지는 책을 만났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선물포장을 여는 설렘을 준 책, 바로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이다. 작가의 전작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었을 때 행복했던 기억이 났고, 고민 없이 선택했다. 책을 읽는 잠깐이지만 묘약을 처방받은 느낌이 들었다.


"내 맘대로 되는 것 하나 없던 날, 다시 빨강머리 앤을 만났다!" (arte 출판사)
"지금 이 세상 누군가에게 행복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언젠가 나에게도 행복이 찾아올 거예요."
"운명은 별들이 정한다고 하지만,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요. 인간은 그래서 아름다운 존재인가 봐요."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참 멋진 일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니까요!"

"길에서 넘어져 고개를 들었을 때 민들레 사이로 네잎클로버를 발견했어요!"


책에는 계속 줄 긋고 기억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읽는 동안 뇌세포와 마음이 이미 위로받았을 테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한편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Ann(e)은 너무 일부분이었다. 앤 시리즈를 읽고 보았지만 앤이 프린스 애드워드 섬으로 오기 전의 삶은 사실 거의 알지 못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여의고, 토마스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앤, 조애너 아주머니 집에 얹혀살며 또래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던 앤의 나이는 불과 6살이었다니! 결국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힘든 생활을 했던 앤은 그 상황에서 눈물만 흘리지 않고 언젠가 행복해질 거란 믿음과 상상을 하며 자신을 다독였으니, 어린 나이의 앤은 정말 대단하단 생각만 들었다. 그저 수다스러운 꿈 많은 낭만주의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앤은 실제로 내공이 단단한 아이였다. 그래서 앤이 하는 말은 괜한 소리 같지 않고, 진심으로 들렸나 보다.




오늘 새벽 드디어 비가 그쳤다. 그 길던 장맛비도 물러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도 나쁜 일의 연속은 절대 아닐 것이다. 햇빛 짱짱한 날은 비 오는 날을 기대하고 폭우가 쏟아질 때는 화창한 날을 그리워하기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위안이 될 무언가를 발견하면 그것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바로 이 책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상상 속 인물임에도 앤의 존재는 나에게 힘이 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유행이다. 이 말보다는 조금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소소하지만 확실한 위안이야말로 움츠려 든 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는 말이라고 믿고 싶다. (작가의 표현 인용+ 나의 감상)




*주인공을 실제 인물로 착각하게 했던책 *

<셜록 홈스>

<햄릿>

<빨강머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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