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건 그의 집 앞에서의 기다림.
그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지 1달 반이 지났다.
보낸 후부터 주야장천 우편함을 열어보았으나 감감무소식.
그는 착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라 분명 뭐라도 답변을 했을 사람인데, 왜 편지가 안 올까.
개도 못줄 자존심은 이미 다 사라져 버린 지 오래.
상처되는 말 많이 하는 우리 박 이사님의 모진 말도 그냥저냥 들리고, 매번 어렵다고 징징대던 회사 업무도 그냥 그렇게 느껴질 듯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 몰래몰래 훔쳐보고 있었던 그의 블로그나 인스타에서도 어느덧 그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일상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없이도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몹시도 좌절했지만, 그래도 생활이 안정되면 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것이라는 뜬금없는 설렘에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을 무렵, 나는 또다시 그와의 접촉을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그는 최근 이직을 했기에 회사 정보도 모르고, 따라서 회사로는 찾아갈 수 없으니, 집에 가서 무작정 기다리는 건 어떨까. 아, 갑자기 내가 20살 때 우리 집 앞에서 새벽까지 나를 기다리던 한 남자애의 바보 같은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집 앞에서 기다리는 건 그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자그마치 1주일 넘게 어떤 말을 쓸지 고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계획을 살포시 말했다.
다들 맘이 떠난 남자인데 뭣하러 그런 고생을 하느냐는 사람부터, 그래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그래야 미련이 없다까지 죄다 부정적인 말만 쏟아냈다.
끄덕끄덕.
사실 그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도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각자 경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었다.
문자에 대한 답변이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오는 경우, 그리고 문자에 대해 아예 답이 없는 경우, 그리고 읽고 씹히는 경우 등등의 경우를 나는 다 생각해놓았지만, 그의 거절에 대한 대비는 도무지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보라 언니도 거절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고, 나는 수십 번 메모장에 문자 내용을 수정하고 다시 써보는 작업을 반복했고, 아래와 같이 혼자 컨펌했다.
큐 안녕? 연휴 잘 보내고 있어? 요즘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연락했어.
진짜 아무 내용 없고, 단지 안부인사뿐인 이 문자라면 괜찮겠다 싶어서, 날이 쨍쨍하게 더운 한낮에,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억지로 신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그마치 1시간을 고민하다가 심장이 터지기 직전에 바로 전송을 눌러버렸다.
전송됨.
계속 전송됨.
계속 전송됨.
하지만 읽음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는 슬픈 문자.
내 눈에 뭐가 씌인 건지는 몰라도, 저녁 9시 넘어서 읽음으로 변해있었는데, 또 어느새 전송됨으로 바뀌어져 있던 건 뭐지?
문자 보낸 지 24시간이 지난 지금도 전송됨.
내 문자를 읽고 그냥 씹었거나, 지워버린 것이겠지.
그의 집에 찾아가는 것만이 남은 것인가.
나는 다시 눈물을 삼키며, 나의 35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었던 그 시간들로 되돌아 가고 싶었지만, 니체의 영원한 회귀 이론처럼 그 시절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그에게 상처를 너무 많이 줬고, 너무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해왔고, 그의 자존심을 많이 깎아내렸다.
하지만 그의 집은 이번 주 금요일 밤에 가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