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
”가을의 노래“
벼는 청포를 벗어버리고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사과는 새색시 볼 인양 수줍게 붉게 물들고,
대추도 빨갛게 익어 양반들 목젖을 녹인다.
허수아비도 산들바람을 타고는 "
“후ㅡ여 후ㅡ여!" 두 팔 벌려 새들을 쫓느라
분주하고,
한여름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던 나뭇잎들도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산을 불태우고,
섬돌 밑에 귀뚜라미도 가을이 왔노라고
애간장을 녹일 듯
처량하게 울어댄다.
소쩍새 울음소리와 천둥을 먹고 자란 국화는
그윽한 향기를 토해내며 가을을 찬미하고,
아무도 봐주는 이 없는 외진 길섶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코스모스는
산들바람에 하늘거리고,
가지가 찢어지도록 아람이 번 알밤은
정들었던 집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느라 뚝뚝 눈물을 흘린다.
제비들이 떠난 텅 빈 하늘에는
북녘의 소식을 한 아름 안고 오는 기러기들이 줄지어 날아든다.
아버지의 글을 읽으며,
가을이라는 계절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익어가는 생명들의 마지막 몸짓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벼는 청포를 벗고 황금으로 물들고,
사과는 수줍게 붉어가고,
대추는 양반들 목젖을 녹인다 —
이 모든 변화가
끝을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조용히 일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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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가 바람을 타고 새를 쫓고,
귀뚜라미가 애달프게 울고,
국화가 향기를 토해내고,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까지.
아버지께서는
그저 눈에 보이는 자연을 적으신 것이 아니라,
이 가을 한복판에서, 생명들이 마지막까지 빛나려는 순간을 포착하신 것 같았다.
삶은 떠남이고, 이별이고,
그 과정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다하고 가는 것임을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알려주셨다.
가을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그래서 더욱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