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 다시, 봄의 문장들 6
" 보리밭의 봄 "
새 봄이 살랑살랑 봄바람을 앞세우고는
보리밭 골로 봄나들이를 찾아왔다.
지난겨울 눈을 이불 삼아 뒤집어 쓰고는
추위에 꽁꽁 얼어있던
보리싹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봄바람을 반겨 맞이한다.
다들 봄바람을 싫어하는데
보리만은 봄바람이 싫지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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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글을 읽으면,
봄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알게 된다.
봄바람은 따뜻한 손님처럼 오지만,
동시에 성급하고 무례한 방문객 같기도 하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들어와,
겨울의 먼지를 흔들어 깨우고,
사람의 마음까지 들쑤신다.
그런데 보리밭을 떠올리면,
그 바람이 꼭 나쁘기만 하진 않다.
눈이불을 덮고 얼어붙었던 보리가,
그래도 살아남아 초록을 퍼뜨리는 장면.
그 초록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번져 간다.
누군가는 봄바람을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바람이 가져오는
‘변화'가 두려운 게 아닐까.
겨울이 끝났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이제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
아버지는 보리를 통해 말한다.
봄은 미움과 설렘이 같이 오는 계절이고,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은 결국 봄을 맞이한다고.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내 마음에도 보리 같은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싫어하면서도
결국,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