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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러 Jul 04. 2020

국제커플, 결혼식을 취소했습니다

코로나가 갈라놓은 국경

살다 보면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들은 굉장히 많다.

나는 내 인생에서 생각도 못했던 국제결혼이라는 걸 하게 되었고, 일본인 남편이 생겼다.

양국에서의 혼인 신고, 배우자 비자 신청 등 몇 달에 걸쳐 서류를 준비하고 작성하여 신청했고,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법적으로 인정받은 부부가 되었다.


그다음으로 우리 부부가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결혼식. 바로 세리머니였다.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았지만, 가족, 친지 비롯한 지인들에게 인정받고 축하받는 자리는 아직이었다.

늘 신세만 져온 우리 둘이었기에 감사를 전하는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두 사람의 친인척, 지인들을 고려해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합의했다.


일본에서 식을 먼저 올리자는 얘기였기에 올해 5월로 식장을 잡고,

한국에서는 추석 연휴를 고려해 올해 10월로 식을 잡았다.


우선 일본 결혼식.

나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일본은 한국과는 다르게 '꼭 초대하고 싶은'손님만 초대해서, 세리머니와 피로연을 반나절에 걸쳐 진행한다.

그리고 피로연은 소규모 행사와 다를 게 없이 부부가 생각해야 할 이벤트, 코너가 많았다.

둘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영상은 물론, 입장하는 거에 맞춘 오프닝 영상, 또 퇴장하고 나서의 엔딩 영상 까지..

청첩장은 밥 사주면서 돌리는 게 아니라 우편으로 한 명 한 명씩 회신용 엽서를 곁들여서 보내야 했다.

남편과 우편 발송 준비를 수작업으로 준비하고 발송까지 끝마쳤다.



이렇게 차차 가닥이 잡혀가는 동안 4월에 긴급사태 선언이 나왔고 결혼식은 코앞에서 연기되었다.


일본 결혼식은 연기했지만 그래도 당시 한국 결혼식에 대해서는 아직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10월이면 아직 반년이 남았는데, 설마.. 하면서.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불안함이 늘 공존했던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핸드폰으로 입국 제한, 코로나 소식만 쫓아다니며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단서를 찾기에 바빴다.


결국, 결국.. 한국 결혼식은 취소하기로 남편과 합의를 보았는데,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한국-일본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

일본인인 남편은 현재 한국에 입국할 수가 없다.

입국 제한이 풀리더라도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는 한 입국 후 2주간 자가격리 기간이 필요하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한국으로 입국은 가능하나, 반대로 일본 입국이 불가능하다.

만약 입국이 가능하더라도, 마찬가지로 2주간 자가격리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서로가 양국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 가더라도 한국에서 2주+ 일본에서 2주= 1달간 우리 부부는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또한 일본에서 한국으로 초대하는 손님들은 현재 한국으로 입국을 못하기에 애초에 초대할 수가 없다.



2. 결혼 준비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점

1번과 연관되는 이유로,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었기에 한국에서 아무 준비도 못했다.

지난 연말 한국에 갔을 때 식장 예약을 한 게 전부고 그 뒤로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다.

흔히들 말하는 스드메, 드레스 투어, 스냅 촬영 등.

초대장 제작은 물론, 초대장이 나오더라도 지인들을 만나러 한국에 갈 수조차 없다.



3.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

1번과 2번이 모두 해결된다 하더라도 역시 3번이 너무 크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정 시간 이상 많은 손님들을 붙잡고 있는 건 너무 위험요소가 많다.

우리 부부는 축하받고 싶다는 생각에 초대를 하겠지만, 정작 와주는 손님들에게 일말의 불안감이라도 존재한다면.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감사함을 보답하고자 초대한 자리인데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그런 생각으로 결혼식에 오게 한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취소 수수료 문제도 겹쳤기에 한국에서 예정한 결혼식은 이러한 이유로 결국 취소했지만, 일본 결혼식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 코로나는 긴급사태 선언 해지 후 다시 증가 추세다. 어제는 도쿄 감염자 수만 200명이 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 결국에는 지금 코로나와 대면하고 있는 이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일상생활은 힘들 것이다.


안타깝고 허탈하면서도. 몇 달간 머리를 끙끙 싸매며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받던 문제였기에, 이렇게 놓아주니 한편으로는 해방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잘한 걸까?',  '일생일대 한 번뿐인 결혼식을 이렇게 놓아줘도 되는걸까?' 하며, 취소하고 난 뒤인 지금 이순간에도 아쉬움이 남고 내 선택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국제결혼 부부들, 뿐만 아니라 한국 국내에서도 많은 신혼부부들이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하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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