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理다스릴 이 解풀해)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3.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 출처: 표준국어 대사전
살면서 본인 스스로 가장 많이 한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나는 왜?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호기심천국이었다. 엄마는 내가 왜?, 왜 그런 거야?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키우기 힘들기도 했다고 한다. 꼬마 아이가 세상이 얼마나 궁금했던지!. 부모님의 답변은 어렸을 때도 속 시원하게 해결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왜 ? 로 시작되었지만, 끝은 대부분 그건 원래 그런 거야~, 왜가 어딨어! 이렇게 끝나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정말 집요하게 스스로 왜인지를 이해하고 해결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물이나 현상 등은 검색하고 공부하고, 관련 서적을 읽으며 해결을 했었는데..! 인간관계는 정말 나에게 있어 난제였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고, 애석하게, 나는 그들을 미워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었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해해보려고 했다.
단순한 수긍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이 진정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직한 곳은 꽤나 경직된 곳이었다. 수직적인 조직 분위기에 사장님 등의 방문이 있을 때면, 여자직원에게 치마를 입고, 꽃을 전달하라고 지시하기도 하고, 전국에 사무실이 있는 조직이었는데, 군단위의 사무실에는 여자 화장실이 없던 곳도 있었다. (벌써, 9년 전이긴 하다.) 회사 다닐 때는, 이해가 안 되지만, ~상황이니까. ~누군가의 가장일 테니.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당장 일이 바쁘니까,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었으니, 시간이 흘러가듯 그렇게 지나갔다.
나의 언어: 왜, 남편의 언어: 그렇구나
나의 '왜'는 연애와 결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과 자주 다니던 카페가 있었다. 동네의 작은 로스터리 카페로 사장님 혼자서 운영을 하시는 곳이었다. 그곳에 처음 갔을 때, 커피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과일, 베리, 허브의 맛이 나는 커피가 있다니 ! ,
"오빠, 커피에서 왜 이런 맛이 나지??"
- "글쎄.. 근데, 커피 맛있다. !_!"
"기계도 좋아 보인다. 어디 제품이지?, 왜 사장님은 저 기계를 구매하셨을까?,"
(그새 검색을 해보고) "아! 오빠, 이런 게 스페셜티 커피라는 거래. 신기하지?"
- "그러게~ 커피 진짜 맛있긴 하다.(홀-짝), 근데 쿠키는 그런 게 왜 궁금해, 진짜 신기하고 재밌다."
"ㅇ_ㅇ?"(속마음은 어느 부분이 신기했을까. 고민을 했다.)
-
"오빠, 혼자 살 때 세탁은 어떻게 했어?
- "나? 그냥 다 넣고 돌렸는데! ^_^"
"왜? 왜 그렇게 했어??"
- "흠.. 이유를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난 자주 해!"
"그럼 속옷, 수건, 기타를 구분해서 세탁하자!"
- "그~래!"
-
"오빠, 오늘 친구가 50일도 안된 아기가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계속 말하더라, 근데 50일도 안된 아기가 어떻게 말을 해? 친구는 왜 그러는 걸까?"
- "그냥 답답하고 힘드니까 쿠키랑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거겠지"
"응?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잖아. 왜 그럴까? 아기가 어디 불편한 건 아닐까?"
- "그건 그냥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그때, 그렇구나-만 하고 넘어가면 돼"
"그럼 되는 거야?, 문제가 있으니까 뭔가 해결을 해줘야 할 같아. "
- "해결방안을 구할 때 해주면 되지, 지금은 감정을 나누는 것이 더 필요할 수도 있어"
우리의 언어는 한쪽으로 수렴할 수 없는 걸까?
갈등상황을 다룰 때면, 우리는 자주 부딪히곤 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는 문제에 집중한다. 갈등의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나에게 해결은 문제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직접적이고 단호한 경향이 있다. 남편은 대립 자체를 싫어하고, 감정을 먼저 다룬다. 문제해결이라는 것이 남편은 애초에 관계에 집중돼있다.
나에게 남편의 방법은 회피로 보였고, 남편에게 나의 방법은 갈등조장으로 보였다.
하루는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쿠키가 말하는 문제가, 진짜 문제가 맞아?, 그건 네 생각에서의 문제이지, 인간관계에서 그걸 어떻게 정해?"
"???" 그때 내 속마음은 이랬다. 문제가 있고, 눈에 보이는 원인과 결과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눈에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다고?!! 근데, 그건 아직 발생하지 않은 거잖아.. 그걸 고려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맞나...
우리의 다른 언어는 같은 의미였다.
남편이 말한 것은 꽤 충격이었다. 한 해, 한 해... 관계에 대해 생각이 들 때면, 저 말이 자주 떠올랐다.
그렇게 지나고 보니까, 내 눈에 보이는 문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 관계에서의 문제가 훨씬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그걸 내가 다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애초에 말이 안 된 것이었지는도 모른다.
왜 와 그렇구나. 는 단어만 보면,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의미와 문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단어 모두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피어난 존중이 아닐까 싶다. 국어사전의 이해라는 단어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는거 말고도,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뜻도 있다. 나는 이해를 전자로 해석하고, 남편은 후자로 해석한 것이다.
왜 만 있어서는, 눈에 보이는 문제는 해결할지라도, 관계를 지키는 힘은 잃을 수도 있다.
그렇구나 만 있어서는,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관계를 지켜내는 힘이 생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당장 오늘은 정답이 있을지라도, 내일이 되면, 오답이 돼있을 수도 있다. 나의 세계에서 남편의 언어는 생소한 외계어같이 느껴졌어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세계가 확장이 되는 느낌이 든다. 남편의 섬세한 감정표현이 언제쯤 외계어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이 또한, 나의 호기심이 된다. 나의 왜?-는 끝나지 않을 테지만, 남편의 그렇구나-를 경험하며, 조금씩 우리의 세계가 그려진다.
에필로그-
타인과 대화를 하다보면, 가끔 얼굴이 붉어질 때가 있죠? 아마, 그 대화에서 우리는 같은 의미를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