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溫따뜻할 온 度법도 도)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 또는 그것을 나타내는 수치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같은 온도에 있는 사람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즐겁다. 한마음 한뜻으로 주고받는 대화, 티키타카가 되는 순간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어지는 대화.
휴대전화가 손난로처럼 뜨거워져 스피커 모드로 전환할 때면, 그 대화의 온도는 도대체 몇 도였을까?
같은 회사, 다른 온도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G회사) 동기였다. 신입을 햇병아리라 한다면, 우리는 인턴 시절부터 함께했으니 병아리가 태어나기 전, 계란이었던 시절부터 함께한 셈이다. 회사에 대해 하얀 도화지뿐이었던 시절부터 인턴, 주임, 대리를 거치며 비슷한 색으로 그림을 그려갔다. 회사 복도에서, 퇴근길 차 안에서, 주말 카페에서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회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는 퇴사한 지 3년째가 되었고, 그 사이 남편은 승진해 대리에서 과장이 되었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우리가 경험한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에 우리는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을 정도로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었다. 이젠 조금씩 오류가 생긴다. 남편이 척하면 촉? 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알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아졌고, 이름만 대면 알던 관리자들은 이젠 퇴직하고 없다.
차갑게 식어버린 나, 여전히 뜨거운 남편
요즘 에세이 수업을 듣고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느지막한 저녁시간에 수업이 시작된다. 이번 주의 수업 주제는 <일>이었다. 과제를 받자마자, 퇴사했던 회사에 대해 마음껏 쓸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회사를 다닐 때 회사의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갑질사건이 일어날 때면 내 일인 것처럼 열을 내기 바빴다.
과제 분량인 2,000자를 향해 첫 타자를 치려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시작만 하면 줄줄 써내려 갈 것 같았는데, 써지지 않았다. 분명 쓸 게 많은 회사였는데, 이제는 ‘써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퇴사를 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였을까. 무(無) 감정이 된 나는 회사와 완전히 이별했다.
책임감으로 2,000자를 겨우 채워 제출했다. 하얘진 머릿속을 붙잡고,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있던 찌꺼기 감정까지 털어냈다. 수업시간, ‘일’에 대한 글로 합평을 진행했다.
라디오 작가의 방송국 이야기,
초등학교 선생님의 이야기,
광고기획자의 외국계 대행사 이야기,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지망생의 이야기까지.
글벗들의 글을 읽으며, 회사가 미화되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가 완전 최악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체계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었는데, 그나마 공공기관이라 형식적인 체계라도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땐 회사라는 사각형에 갇혀 좁아진 시야로만 세상을 봤던 걸까? 사각형을 벗어나니, 보이는 세상이 달랐다. 이 깨달음이 남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밤 열한 시, 온라인 수업이 끝나자마자 남편을 찾았다.
“오빠, 오늘 글감의 주제가 일이었거든. 다른 분들의 직업 에세이를 보니까, 내가 가졌던 회사에 대한 불만은 그 수위가 너무 낮았던 거였어.”
-“그래? 나도 다른 사람들이 쓴 글 보고 싶어.”
글을 천천히 읽더니,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 “G회사는 여기 쓰여 있는 회사랑 비교가 안되지. 업무, 구조적으로 다양성이 없으니까. G회사에서 이런 불만이 나오려면 몇 십 년은 흘러야 될 것 같은데?”
사각형을 벗어나니 보였던 세상은 남편에게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내 말은 효과 없는 약이었다. 회사에 대해 나는 이미 차갑게 식었는데, 남편은 여전히 뜨거웠다. 뜨거운 감정을 예전처럼 같이 나누지 못해 마음이 쓰이는 밤이었다.
온도는 섭씨와 화씨라는 단위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의 온도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G회사에 대한 감정의 온도를 수치화하면, 나는 0도쯤 되었고, 남편은 끓기 직전인, 99도쯤 되는 것 같다. 대화할 때 느껴지는 미묘한 차이로 온도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이 회사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담담하게 "그랬었지. 여전하네."라고 말하고, 남편은 "진짜 화나"라고 말한다.
쓰이지 못하는 마음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에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망각은 신이 주는 선물이야.”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을 갖고 사는 게 아니라, 일어난 일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잊는 것. 망각은 어쩌면 괴로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는 퇴사라는 물리적 거리로 망각이라는 선물을 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있는 남편은 받을 수 없는 선물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매일 저녁 퇴근을 하는 곳이니까. 우리가 같이 회사를 다녔을 때처럼 회사에 대한 남편의 온도를 조절해 줄 수 없다. 남편의 온도를 강제로 낮출 수도 없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남편에겐 망각이라는 선물도 건넬 수 없다. 이도 저도 쓰이지 못하는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초코우유 2박스 주문하기
습관처럼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는 남편이 냉장고에서 초코우유를 발견하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나는 건강주스에 주기적으로 빠지는데, 최근에는 그린스무디에 빠져 6개월 정도 아침으로 먹고 있다. 양배추, 브로콜리, 아보카도, 바나나를 넣고 믹서기에 간 음료이다. 맛은... 절로 건강해지는 맛이다. 출근 전 그린스무디를 따르는 남편의 표정을 보면, 웃음이 난다. 얼굴이 잔뜩 찌그러지는 표정이다. 그린스무디를 생각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초코우유가 있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이거 너무 맛있다.”
-“건강에는 그린스무디가 훨씬 좋아. 알지?”
“알지~ 근데, 이 초코우유에 프로틴도 들어가 있네!, 우리 이거 자주 사 먹자.”
-“그린스무디는 어쩌고?”
“우리 오래 먹어서 이제 좀 쉴 때 됐어.”
망각의 선물이 나에게만 찾아와 속 끓인 마음을 초코우유로라도 전해봐야겠다.
결혼해서 둘이 되면 어떤 문제가 와도 뚝딱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아지는 기분이 든다. 감정의 온도에서는 더 그렇게 느껴진다. 같은 경험을 해도, 같은 속도로 온도가 변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속도로 식기도 하고, 뜨거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초코우유 한잔으로 달래보고, 그러다 마음이 열리면 어제 들려주었던 에세이 이야기로도 풀어보고...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남편에게도 망각이라는 선물이 찾아오지 않을까.
내가 먼저 가져 본 망각의 선물을 언젠간 남편에게 건네주고 싶다. 남편이 받을지 안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에필로그-
같은 경험을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가 다른 걸 보면, 감정에도 온도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감정의 온도를 섭씨로 측정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