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責꾸짖을 책 任맡길 임)
1.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2.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신혼부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경제적 부담으로 손꼽힌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주택 보유 여부가 출산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주택 가격이 1% 상승할 때마다 출산율은 0.002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주거비에 대해 신혼부부가 느끼는 부담은 해가 넘어갈수록 짙어진다. 각자, 또 따로, 우리는 경제적 부담에 대한 고민을 한다.
소꿉놀이란 말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작은 그릇을 가지고 살림살이를 흉내 내며 노는 것을 말한다. 결혼을 처음 하게 되면 우리는 소꿉놀이부터 시작한다. 혼자 있을 때 해보지 않았던 살림을 시작하고, 혼자가 아닌 둘에 대한 책임감을 실감하곤 한다. 살림부터 경제 운영까지 한 가정을 꾸리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재밌는 일이 많다.
우리는 결혼을 하면서부터 주식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혼자였을 때는 월급의 일부를 가지고 소소하게 하기 시작했다면, 신혼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각자의 포트폴리오를 꾸려 같이, 또 따로 운영하고 있다.
곳간 채우기, 곳간 비우기
남편은 '곳간'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월급의 일부를 예금과 적금을 활용하여 현금을 뭉텅이로 모아두는 남편만의 곳간 저축 방법을 의미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곳간이 어느 정도 채워져야 안심을 느끼던 남편이었다. 나는 곳간이 따로 없었다. 그때그때 여윳돈을 주식에 투자했고, 곳간이 없어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신혼 초반에 남편이 해외주식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연애 때 부동산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남편이기에 당연히 주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ETF, 배당과 같은 단어가 생경하다는 듯이 묻기에 조금 놀랐다. 그 시기에 남편에게 해외주식이라는 또 다른 챕터가 확장되었다.
하나에 몰두하면 파고드는 성질이 있는 남편은 주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경제 유튜브, 기사, 책을 읽으며 본인만의 투자관을 조금씩 쌓고 있었다. 남편이 주식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주식이라는 새로운 대화 주제가 추가되었다. 퇴근하고 오면, 남편은 미국주식에 대한 이슈를 나에게 공유했고, 나 또한 그날 알게 된 주식 인사이트를 남편에게 전달하며 같은 고민을 나눴다.
미국주식은 시차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밤 열한 시 반에 시작된다. 미국장을 처음 경험했을 때 남편은 밤잠도 꽤 설쳤다. 반면 나는 숙면을 했다.
"오빠, 어제 새벽에 잤어?"
-"주식하다가, 좀 늦게 잤어."
"장기 투자 하는 거 아니었어?"
-"아, 그런 것도 있고, 아닌 종목도 있어!"
도자기를 취미로 하는 세심한 남편의 투자 성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적극적인 투자자의 모습이었다. 투자 기간도 주로 일, 월 단위이다. 장기 투자 성향을 가진 나와 상반된 투자 스타일에 반전 매력을 갖고 있었다. 주식을 하면서부터 잔잔했던 남편의 기분은 때때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어머님과 카페를 갈 때면, 종종 남편이 성격이 급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섬세하고 차분함이 디폴트라고 생각했던 남편의 모습에서 상상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주식을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면, 어머님의 말씀이 자주 떠오른다.
남편이 곳간을 채우는 방법으로 돈을 모았다면, 나는 곳간을 비우는 방법으로 돈을 썼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돈을 모으는 방법보다 돈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먼저 배우게 되었던 게 영향을 미치게 된 걸까? 아버지는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주식, 금과 같은 다양한 자산의 중요성을 알려주셨고, 소액으로라도 자산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하셨다. 자수성가하신 아버지의 경제관념은 나에게 좋은 롤모델이었다.
여윳돈이 생기면, 여러 주식 종목을 매수하느라 곳간은 비워졌다. 비워진 곳간으로 산 주식은 꽤 오랫동안 보유하고 있다. 가족들이 우스갯소리로 파는 법을 모르냐고 할 정도로 팔지 않았다. 나와 다른 남편의 투자 성향은 서로를 알아가는 새로운 방법이 되기도 했다. 아마 남편이 주식을 하지 않았다면, 공통 관심사가 하나 줄었을 것이고, 성격이 급한 남편의 새로운 모습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경험은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알아가기에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투자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 있습니다.'
주식에 대한 자료를 볼 때면, 자주 마주하는 문구다. 주식은 변동성이 큰 자산이다 보니, 무엇보다 개인의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수많은 정보를 통해, 나에게 적용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골라내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다.
남편과 주식 이야기를 하던 초반에는 남편이 한 이야기에 대해 팩트 체크를 열심히 했다. 계속 묻는 내 모습에 남편은 자기 말을 잘 안 들어준다며 서운해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남편이 말하면, 팩트 체크하는 빈도가 줄었다. 게을러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결정한 투자 종목은 지금 50% 이상 손실을 내고 있다. 투자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말을 백 번 공감하면서도, 나는 요즘 가끔 남편을 흘겨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남편은 입을 앙 다문 채 웃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남편이 불쑥 물었다.
"쿠키야, 나 이제 가만히 있을게"
-"응? 갑자기 왜?"
"아니, 그냥... 내가 추천한 종목이기도 하고."
-"오빠가 추천했지만, 내가 사기로 한 거잖아. 그때 우리 둘 다 괜찮다고 했고."
"그렇긴 한데..."
-"오빠, 그때 왜 그 종목 추천했어?"
"응, 그 회사 기술력도 좋고, 성장 가능성도 있어 보였어."
-"맞아. 나도 따로 찾아봤어. 그래서 나도 동의했던 거고. 우리 둘 다 그때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잖아."
매달 한 번, 우리만의 투자 리포트
우리는 나름, 공식적으로 매달 한 번씩 투자 성과를 공유한다. 적고 있는 가계부에 손익, 손실을 기록하며 오답 노트를 공부하듯이 투자했던 것을 복기하기도 한다. 단기 매매를 하는 남편의 손익 등락은 기록하고 보면 우리만의 추억이 되기도 한다.
"오빠, 우리 벌써 투자 리포트 공유할 때야."
-"벌써? 나 이번 달은 안 하고 싶은데."
"왜? 손실 났어?"
-"아니, 그냥... 매번 비슷한 거 같아서."
"그럼 이번 달은 형식 바꿔볼까? 숫자 말고 우리가 배운 거 중심으로."
-"오, 그거 좋은데? 그럼 이번 달 배운 거는... '조급하게 팔지 말기'?"
"ㅋㅋㅋ 오빠 그거 매달 쓰는 거 같은데?"
-"진짜야? 그럼 나 진짜 안 배운 거네!"
요즘 우리가 보유한 주식 종목의 날씨는 매우 흐림이다. 곧 천둥번개가 칠 것 같기도 하다. 난생처음 보는 마이너스 수익률에 우리는 예전보다 경제 뉴스를 더 자주 본다. 단기 매매를 하던 남편도 타의적으로 장기투자자가 되었다. 별수 없이 가계부를 좀 더 꼼꼼히 쓰며 날씨가 좋아지길 기대해 봐야겠다.
그래도 매달 기록하는 투자 리포트를 거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지나가다 보면 마이너스 수익률도 재밌는 에피소드가 되겠지. 나중에 이 기록들을 보면서 "우리 그때 이랬었네" 하고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구의 책임인지보다, 왜 그랬는지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많다. 주식도 그렇고, 살림도 그렇고, 결혼생활 전반이 그렇다. 그럴 때 "누구 책임이야?"라고 묻기 시작하면, 대화는 금방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내가 언제 그러라고 했어", "네가 그때 내 말 들었어야지", 이런 말들이 오가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건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주식을 하면서 배운 건, 책임을 따지는 것보다 이유를 묻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왜 그 종목을 샀어?"보다는 "그때 어떤 생각으로 그 종목을 선택했어?"라고 물으면, 남편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도 "아, 그때 그랬지" 하고 기억이 난다. 우리 둘 다 그 순간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어쩌면 책임이라는 건, 누군가를 탓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이해하는 과정인 것 같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누구도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지 않으니까. 서로에게 필요한 건 비난이 아니라 "그때 우리는 왜 그랬을까?"를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다.
비록 주식창에는 -50%가 떠있지만, 주식은 하길 잘한 것 같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서로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무엇보다 우리의 경제를 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실수가 반복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는 패턴을 바꿔야 할 때다. 하지만 처음 겪는 일,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서는 좀 더 너그러워도 괜찮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에필로그-
손실이 나면 솔직히 속상하죠. 남편한테 "그때 오빠가 괜찮다고 했잖아"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순간 남편도 똑같이 "쿠키도 동의했잖아"라고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대화는 제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하겠죠.
우리가 주식을 함께 하면서 배우게 된 건, 책임이라는 게 누굴 탓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함께 선택했고, 함께 결과를 받아들이고, 함께 다음을 준비하는 것. 그게 부부가 함께 책임진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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