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순우리말)
1.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안'가는 것과 '못'가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는 나는 단어에 꽤 집착하는 편이다. 나는 이미 뱉어진 단어도 다시 보자! 주의다. '단어선택'을 잘못하거나 잘 못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썩 유쾌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무례한지, 무심한지, 순수한지, 순진한지... 이 모든 게 혼용되어 난무하는 대화가 피곤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집순이가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선택적' 집순이다. 나는 그동안 타인과의 관계를 '집순이'라는 단어로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저녁자리나 친구들과의 주말약속에서 '집순이'라는 단어는 나를 보호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선택적 집순이, 남편은 집돌이다. '선택적'이란 말이 보여주듯이, 난 남편보다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청첩장을 돌릴 때, 나는 남편을 지인들에게 소개하기 바빴지만, 남편의 지인을 만나는 자리는 손에 꼽았다. 결혼식날 남편의 친구들이 많이 와서 새삼 놀랐다. 이 많은 친구들이 어디서 소식을 듣고 왔을까? 물론, 지금도 남편은 완벽한 집돌이다. 결혼하고, 지인을 만난 게 3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선택적 집순이와 집돌이, 우리 둘만의 세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은...?
고립감?
남편은 개그콘서트를 즐겨보고, 광고 속 패러디, 그리고 가끔 하는 성대모사가 꽤 흡사한 발랄한 사람이다. 나와 함께 있을 때면, 쉼 없이 말을 하는 수다쟁이가 된다. 섬세하고, 내성적인 성향 탓에 내 친구들은 남편이 말 수가 적은 줄 아는데, 나만 아는 이 모습이 가끔 아깝기도 하다.
나와 있을 때만 수다쟁이가 되는 남편은 관계 필요에 대한 기준이 매우 낮다. 결혼 전에도 소수의 느슨한 관계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는 편이었는데, 결혼을 하면서 온전히 해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편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르다. 우리는 끊임없는 대화를 하고 있지만,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립되는 기분이랄까. 서로 연고 없는 지역에서 친구가 되기도, 연인이 되기도, 부부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타인과의 관계를 서로가 온전히 대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바깥세상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외로움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인간의 기원을 살펴보면, 인간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한 종이라서, 완전한 고립은 뇌에게 '위험'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외로움'의 감정은 그런 위험을 알려주는 감정이자, 생존신호다. 그래서 우리는 고립의 깊이에 따라 외로움을 느낀다.
배려와 애정이 깃든 관계
부부의 일상과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 있다는 것은 초록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은 것만큼 행운이다. 결혼한지 한달 쯤 됐을 때, 남편의 지인 부부와 몇 번의 만남을 가진 적 있다.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 이번에 용띠던데, 띠가 좋아."
-"형, 우리 아직 아이 생각 없어요."
"왜? 빨리 낳아야 편하지. 우리랑 같이 육아도 하고"
또 다른 어떤 날,
"이번 주말 뭐 해?"
-"그냥 집에서 쉬려고요."
"주말에 같이 밥 먹을래?, 우리 애 이번에 축구교실 다닌다. 삼촌이 주말에 축구도 알려주고 좋잖아."
-"...^^ 그냥 집에서 쉴게요. 쿠키도 이번에 피곤해하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형. 이게 제가 하고 싶은 거예요."
남편이 집돌이인 것을 몰랐던 지인은 내가 남편을 못 나가게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남편이 약속이 생기는 날에 맞춰 약속을 잡던 나는, 조금 억울한 상황이었다. 우리와의 만남이 필요했던 걸까. 아님, 공동육아의 대상이 필요했던 걸까. 종 잡을 수 없는 대화가 오간 날이었다. 그날 이후,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지 않은 채, 사람대 사람으로 세상에 호기심이 많고, 적당히 깊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 그런 관계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저번 주, 친구 부부와 함께 주말을 보냈다.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만 향하던 시선이, 친구부부 그리고, 요정 같은 아이에게 향하던 날이었다. 우리가 자주 가던 식당에서 카톡으로만 주고받던 일상을 나누게 되었다. 나의 친구로 맺어진 인연이었지만, 남편끼리도 성향이 잘 맞아 재밌는 대화가 끊임없이 오갔다. 둘만 나누던 대화가 넷이 되니, 더욱 다채로워졌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전제된 우리 넷의 사이는 꽤 안전하고 즐거웠다. 이렇게 피로감이 없는 관계가 얼마만이었던지! 그날, 내 마음의 배터리가 몇 프로는 더 채워졌다.
오전에 나가 저녁때쯤 집에 돌아온 집순이, 집돌이는 충전의 시간 없이 다음 스케줄을 잘 해냈다. 사실, 전날 우리는 다퉜다. 친구부부를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툼의 잔감정은 사라졌다. 제대로 충전 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선택적 집순이인 나보다 집돌이인 남편에게 편한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남편의 수다스러운 모습을 나만 알고 있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함께 나눌 사람이 생긴 것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깃든 관계는 어쩌다 이렇게 귀해졌을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귀하다는 말을 느끼게 된다. 선택적 집순이인 나는 온도가 맞지 않는 대화를 오갈 때면 관계가 지겨워 집순이가 되다가도, 온도가 맞는 사람을 만날 때면 너무 즐거워 다음 약속을 잡곤 한다. 남편을 혼자 두고 외출을 할 때면 은근 신경 쓰이기도 했는데 남편과 같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생긴 경험은 두고두고 잘 보관하고 싶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서로에게 완전한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걸 알아가는 현실은 달콤 씁쓸하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편안한 날들이 조금 더 많아진 것에 감사한 하루다. 그리고 그런 편안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에 또 한 번 감사하는 하루다.
에필로그-
요즘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탐구하는 중이에요. 어떤 학설에 따르면 외로움은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감에서 오는 감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애정하는 타인이 많아질수록 외로움이 커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