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對대할 대 話말씀 화)
1.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신입사원 시절, 내 자리는 문을 열고 복도를 따라 걸어오다 보면 모니터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였다. 오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자리가 아니라, 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내 모니터를 가장 보기 쉬운 자리. 그러다 보니, 급여나 행정을 담당하던 옆 부서 부장님은 내 자리를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우리 부서 부장님을 만나러 올 때도, 내 자리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와 내 안부를 조금씩 참견하고 지나가시곤 했다.
부장님의 참견은 반갑기도 했지만, 때론 지겹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막내자리는 또 다른 막내가 오고 나서야 바뀌었다. 3년쯤 지나고야, 자리배치도로 내 자리 네 자리를 이야기하는 것 보고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자리배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부장실과 붙어있는 팀장님의 팀이 되면 사무분장에 적혀있는 일 말고도 매일 한 가지씩 처리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 혹을 떼면 하나의 혹이 더 붙는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회식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과 가까이 있을수록 마시게 되는 술잔이 더 늘어나있다.
자리배치는 조직 내 직급과 나아가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양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간이 해독할 수 있는 술잔의 양까지 영향을 미친다. 자리배치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심리, 행동, 성과까지 바꾸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설계도구다. 회사 말고, 집에서도 자리배치는 은밀하게 우리의 분위기를 바꾼다.
거실 전체를 데드스페이스로 쓸 순 없어
수험공부를 하던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우리 집의 거실은 밥 먹는 공간을 제외하곤 딱히 제 역할이 없었다.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돌아오던 남편과, 같은 시간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해 저녁을 먹고 잠을 잘 때가 돼서야 방으로 돌아오던 나의 패턴에 거실은 그저 지나다니는 통로일 뿐이었다. 수험생활의 끝과 이사시점에 맞춰 가전가구를 바꾸자라는 생각으로 우린, 거실을 그저 통로로 3년째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의 수험생활이 끝이 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죽은 거실공간 살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오빠, 거실을 우리가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자."
-"지금도 충분하지 않아?"
"아냐 아냐, 거실은 집에서 가장 넓은 곳인데, 저녁 잠깐 먹고, 빨래 건조대 놓는 곳으로밖에 못쓰고 있잖아."
-"흠.. 어떻게 하고 싶은데?"
"우선, 방에 있던 책상을 밖으로 빼자. 그리고 거실에 있던 티브이를 방으로 옮겨놓는 거지."
-"설마, 모니터암이랑 모니터, 노트북까지 전부 옮기려는 건 아니지?"
"맞는데?ㅋㅋㅋ"
-"꼭 옮겨야 되는 거지....? 위치 잘 안 나올 것 같은데."
"안 해봤잖아. 오빠 잘 생각해 봐. 거실에 우리가 쉽게 앉을 수 있는 책상이나 의자가 있어야 우리가 거실에서 책을 읽던 작업을 하던 효율이 훨씬 좋아질 거야!"
남편은 퇴근하고 오거나 주말에 여유가 있으면 디지털 드로잉을 하곤 한다. 항상 마음은 '그림 그려야지.'로 가득 차있지만, 애석하게도 아이패드 배터리는 늘 3%여서 아이패드 충전한다고 충전선 꺼내고, 충전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남편의 어깨가 좀 늘어졌있다. 그 사이에 재밌는 유튜브가 나오면 그날 드로잉은 끝이 나버린다. 아이패드는 100% 완충되었지만... 이것만큼은 남편이 게으르다고 할 수 없다. 책상이 방에 있기 때문에 작업효율이 안나는 것이다. 자리배치 탓이 백번 맞다.
난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드는 데 하루를 보낸다. 무한하게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오로지 나의 의지로 모든 일과를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에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자리배치가 필요하다. 집 안에서는 10걸음과 20걸음의 차이는 1km와 다름없다.
올해 초에 나의 오래된 숙제였던 가구배치를 끝냈다. 방에 있던 책상과 책장을 거실로 옮겼다. 거실에 있던 티브이를 방으로 옮겨 남편이 원했던 영화 보는 방으로 바꿔뒀다. 가구 재배치에 많은 힘이 들어갈 것 같다던 남편의 걱정과 달리, 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거실의 서재화. 내가 바라던 모습대로 집안의 풍경을 바꾸니, 집에 좀 더 애정이 생긴 기분이랄까. 자리배치를 귀찮아하던 남편이 소심한 복수를 한다.
"쿠키야. 집이 완전 사무실 같다~"
-"사무실 아니고, 서재야. 진짜로 작업하는 데 훨씬 좋을 것 같거든~~"
마주 보고 앉은 저녁식사
거실을 서재처럼 바꾸고, 거실 티브이를 방에 넣어두니, 저녁 먹을 땐 우리 둘의 대화가 티브이소리가 된다. 그동안 거실 티브이 앞에 놓여있던 우리의 간이 식탁은 테이블 보를 뒤집어쓰고, 나의 수납장이 되었다.
간이식탁에서 옆으로 나란히 앉은 채 티브이를 보며 저녁시간을 가졌던 우리의 모습이 바뀌었다. 이젠 마주 앉은 식탁에 서로를 보며 저녁시간을 함께한다.
아침엔 출근준비로, 점심엔 회사와 집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간이식탁에 옆으로 나란히 앉았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시간이 없었다.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주말이 되어도, 마주 앉는 자리가 없는 우리는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보면 대화했다.
자리배치를 바꾸고 오랜만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니, 새로운 풍경에 신이 났다.
"오빠, 진짜 오랜만에 마주 보고 먹는다."
-"그렇네. 자리배치 바꾸니까 새롭고 좋은데?"
"그렇지? 아 그러고 보니, 오빤 연애 때도 앞자리가 아니라 꼭 옆자리에 앉았잖아."
-"웅ㅋㅋ 난 옆자리가 좋아."
"왜? 옆자리 앉으면 눈을 보고 대화할 수 없잖아.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옆이라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ㅋㅋㅋ몰라, 난 옆자리가 더 좋아."
연애할 때도 난 마주 보고 앉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은 나란히 앉는 것을 좋아했다. 마주 보는 자세는 눈 맞춤을 가능하게 하고, 상대의 표정과 미세한 감정 신호를 더 잘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인지 상대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반면, 나란히 앉는 자세는 좀 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로 '같은 편'이라는 심리적 연대감을 주고, 친밀감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다.
편안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남편은 나란히 앉는 것을 좋아하고, 서로에게 집중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걸 선호하는 나는 마주 보고 앉는 것을 좋아한다. 깊은 대화가 가능해지는 마주 보고 앉기와 물리적 친밀감이 강해지는 나란히 앉기. 상대와의 식사시간을 자리배치로 미묘하게 바꿔볼 수 있다.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꽤 효과가 좋을 듯하다.
대화, 마주 보는 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다 보니, 우리의 대화의 결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전에는 티브이를 보면서, 화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면, 마주 보고 앉으니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한 말이 나왔다. 오늘 있었던 일, 요즘 드는 생각,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누어보고 싶었던 고민거리들.
남편은 감정을 말로 꺼내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를 디테일하게 풀어놓는다. 남편 이야기는 대부분 회사이야기지만, 나는 주연과 조연의 미세한 관계까지 캐치할 만큼 남편이 이야기하는 회사드라마에 몰입해서 듣는다. 디테일한 남편과 달리, 난 어쩐지 좀 짧다. 감정은 빼고, 주로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체로 '별일 없었어.'와 '별 일 있었어.'로 끝이 난다. 그런데 마주 앉아서 밥을 먹다 보면, 남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덕분에(?) 나의 하루는 별 일이던 아니던, 어쨌든 단편드라마 분량이 된다.
대화의 단어를 풀어보면, 마주할 대에 집중하게 된다.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의 말이 서로에게 닿기 시작한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다. 바쁘다는 이유, 피곤하다는 이유, 그저 내가 이게 편하다는 이유로. 그렇기에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의식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군더더기 없이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거라고 믿었다. 내 논리를 촘촘하게 다듬으면 상대가 당연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남편과 부딪히면서 알게 됐다. 말을 잘하는 것과 대화를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말은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화는 혼자서는 절대 잘할 수 없다.
말만 한다고 대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다가도 문득 멈춰서 말의 방향을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내 말이 상대를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나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인지. 마주 보고 앉는다는 건 그 방향을 틀어주는 작은 행위 인지도 모른다. 시선이 먼저 상대를 향하면, 말도 조금씩 따라간다.
그래도 말의 방향이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으면,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가구 하나를 옮겼을 뿐인데 우리의 저녁 밀도가 달라진 것처럼, 생각보다 사소한 것들이 우리의 시간을 켜켜이 바꾸어 가니까.
에필로그_
웅변대회에 나가 상을 타왔던 꼬마 쿠키는 말 잘한다는 칭찬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저는 그 칭찬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잘한다고 칭찬받았던 방법이 대화를 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을 잘하는 것과 대화를 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더라고요. 말을 잘해도 대화를 못할 수 있고, 말이 서툴러도 대화는 잘할 수 있어요. 그 차이를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저는 결혼하고 나서야, 남편을 통해 깨닫게 됐어요. 남편은 대화를 잘하더라고요.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서든 원하는 것을 저보다 먼저 얻어내곤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