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봄 Jun 08. 2021

놀랄 일은 많다

오늘도 잘 쓰겠습니다.

나는 작년 6월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마흔 아홉에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2000년도 1월에 공무원으로 발령받았고 20년이 조금 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났다. 


무엇이 변했는지 한번 돌아보고 싶다. 


첫째, 우선 출근이 사라지면서 기상시간이 늦춰졌다. 

퇴직하고 난 초반에는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다.  11시까지 자기도 했다. 

지금은 주기가 오락가락 하긴 하지만 8시 전후로 일어난다. 

눈은 훨씬 전에 떠지고 피로감은 거의 사라졌다. 


둘째, 삼시세끼 내 손으로 음식을 차려 먹는다. 

음식솜씨가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배달음식은 잘 먹지 않고 직접 해서 먹는다. 유투브가 있어 다행이다.

단 음식이나 주전부리도 많이 줄였다. 

요즘은 체중 조절을 하느라 현미밥과 단백질 쉐이크와 달걀, 두부, 삶은 콩을 먹고 있다. 

한달만에 3킬로가 줄었다. 


셋째, 운동을 한다. 

한 종류를 계속 하지는 못하지만 하루에 한 가지는 꼭 하고 있다. 

처음엔 유투브로 요가를 했다. 뻐근한 몸을 풀려고 아침에 20분~40분 정도. 

그러다 게으름이 시작되고 며칠씩 빠지고 하다가 새로운 채널로 갈아탄다. 

요즘은 40대 주부(그러나 멋진 근육질 몸매 소유자)가 운영하는 에어로빅을 하기도하고

또다른 요가채널을 보며 저녁요가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저녁(요즘은 해가 7시 반이 넘어서도 떠있다)을 먹고 40분 정도 걷는다.


셋째, 에세이쓰기 수업을 석달간 참여했다. 

퇴직을 하면서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치솟았었다. 

마치 그 일을 해야하는데 이제까지 엉뚱한 곳에 내 에너지를 쓰고 있었던 것처럼 강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퇴직과 동시에 그 열기는 사라졌다. 

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게을러지고 싶었고 당분간은 그래도 된다고 자신을 두둔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향상 가만히 있거나 세월을 그냥 보내는 것은 낭비란 생각이 계속 들었다. 

처음엔 블로그에서 보게 된, 유명 작가가 운영하는 온라인 독서수업에 참여해보았다. 

주로 자기계발서라는게 걸리긴 했지만 일정 시간에 무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예상대로 현실을 개조(?)하면 성공하는 삶을 살수 있다는 책들은 나를 움직이는 힘이 없었다. 

줌으로 나누는 얘기들도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 인스타에서 에세이 쓰기 모임 공지를 보았다.

5주간 쓰고 문우들과 합평을 나눈다고 했다. 혼자 쓸 자신이 없었던 나는 바로 신청을 했다. 

5주의 모임은 2번 더 연장되었고 6개월간 꾸준히 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끌어주시는 분의 힘이 컸다. 

편집자 출신이면서 서점을 운영 중이신 강사님은 칭찬도 지적도 정확하게 해주셨다. 

내 넘치는 감정은 순간순간 글에서 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함께한 문우님들 또한 글쓰기에 진심이신 분들이었던 터라 서로의 글이 좋은 자극이 되었다. 

쓰고 말하고 읽고 하는 사이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수시로 삐딱하게 보는 나에게 그 지점은 굉장히 소중했다. 


넷째, 독립출판물 <숙제하듯 살 다 가>를 썼다. 

부산비랩이란 곳에서 '내책마련'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책을 만든다는 홍보글을 보고 신청했다. 

내가 게으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선택한 일이었다. 총 10회의 강의를 줌으로 진행했다. 

'글'에만 촛점을 맞춘 나에게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해준 경험이었다. 

책에는 글 뿐 아니라 표지와 내지 디자인, 종이와 글씨체 선택, 인디자인, 교정교열 등 여러 단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과정을 거치다보니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 두께와 다양한 디자인!

어찌되었든 그 과정을 다 거치고 4월에 내 책이 완성되었다. 

예상에 미치치 못한 두께(100페이지)와 

단순한 디자인(보라색 표지에 디자인은 크고 하얀 쉼표!)이지만

인쇄를 거쳐 내 손에 잡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프로그램의 일부로 서점에서 생애 최초 북토크도 하고

내 책을 구입하신(내가 쓴 책이 팔렸다는 놀라운 사실) 분들께 싸인도 하고(놀랍다)

지금은 독립출판물 전문 판매 사이트(인디펍)와 

독립서점 몇군데(계속 입고메일도 쓰고 있는 중)에 입고를 하고 있다.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했는데 글도 쓰고 책도 만들고 영업도 하고 있다.(입고메일이 거절되거나 무응답 상태인 것을 보는 것도 경험이라면 경험)


다섯째, 드로잉과 소설쓰기를 배우고 있다. 

책만들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분들과 드로잉을 시작했다. 

대단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 아니고 두시간 동안 '그리고 있다'는 것이 좋다. 

부끄러워서(못할까봐) 시작 못한 일 중에 그림 그리기도 있었다. 

수업받으시는 다른 분들의 그림을 보면서 나와 다르면서 좋은 점을 알아보는게 좋다. 

비교하지만(당연히!) 그래서 못한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한다는 것이 좋다. 

내가 아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게 최고로 좋다. 

(그런게 이제껏 하나도 없었다니!)


소설쓰기는 어렵다. 수업이 시작된지 일주차. 어찌되었든 어떤 세계를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인물과 배경과 스토리를 꾸린다는 것(요즘은 이런걸 기획이나 브랜딩이란 개념으로 많이들 얘기하는 것 같다) 자체가 버겁다. 그래서 아직 한 문단도 못쓰고 있다. 과제 제출은 일요일까지였건만. 이미 마감을 놓쳤다. 그러나 좋게 생각하자. 나는 쓰게 될 것이다. 작은 이야기든 지루한 이야기든 뻔한 이야기든. 


돌아보니 1년간 무언가를 하긴 했다. 

지금은 몸과 마음이 편하다.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마음이 무거운 것은 왜일까

하루에 한번 이상은 내가 나에게  물어온다.

'너 이대로 살아도 괜찮겠어?'


아마도 아직 '내 길'을 찾지 못했다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내 어떤 면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유투브 동영상을 기웃거리다가 어느 한 문장이 내 귀에 들어온다.

"fun하게 살아. 희희낙락하며 살아봐"


채널 주인장이 다른 누군가에게 한 말이었지만 내 마음이 찌릿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내 책의 제목처럼 '숙제하듯' 살아왔다. 

나름 성실하고 칭찬도 받아봤고 벗어나지 않고 안전하게.

빠져있는게 있다면 "내가 좋아서"이다. 

내가 좋아서 한 적은 없다. 그저 칭찬 받으려고 인정받으려고 잘해내는 것 보여주려고였다. 

당시에는 의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무언가를 해내며 살아왔으니까. 

내가 인정하는 내가 되는 일은 내가 좋아서 이것저것 해보는게 아닐까.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해본만큼 기뻐할 수도 있고. 


책임감이 아니라 내가 안심하고 즐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런 선택을 하며 또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 

오십의 나이에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면

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까 코웃음의 대상이 될까 살짝 걱정도 된다. 


너무 가까운 시선으로 걱정만 눈에 들어온다면

서너개월 쯤 뒤로 시간을 감아보기 해본다면 어떨까. 

여름이 시작되는 현재가 아니라 가을이 시작되는 무렵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면?

그때는 또 그때의 고민이 생긴다하더라도

1년 사이 책낸자가 된 나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달라진 나를 만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거라 미리 확언해본다. 


그때는 fun하고 희희낙락하는 나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안경과 빙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