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뭐하세요?
십년도 더 넘은 드라마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저렇게 담담하게 내 소개를 하고 싶어서다.
퇴직 후 출퇴근을 빼고 뭐가 달라졌나 생각해 보면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가 그랬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 독립서점의 미술사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 부터였다. 강사님은 수업 전에 참석한 사람 모두 간단히 소개를 하자고 하셨다. ‘강의를 들으러 왔을 뿐인데, 왜?’ 하는 마음도 잠시, 처음으로 지목된(앞자리였다) 나는 사는 지역과 이름을 말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속이나 직함이 빠진 소개는 짧고 허전했다. 질문이 이어졌고 공무원으로 이십년 근무하다 퇴직한지 삼 개월 되었음을 실토(?)하게 되었다.
이런 식의 소개가 새로운 모임마다 반복되었다. 직장인이었다면 가뿐했을 소개 시간이 매번 부담이 되었다. 일은 없어졌는데 말은 길어졌다. 거기에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덧붙일 때면 왠지 모르게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부서와 직급이 없는 나를 무엇으로 소개해야할지 망설이는 시간은 나의 현재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맨얼굴로 드러난 나의 정체성은 이름만으로 충분하지 않았고 그것은 불편하면서도 아픈 지점이었다. 조직에서 느꼈던 기계적인 유능감은 이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첫 독립출판물을 만들면서 “다시 봄”이라는 필명을 가지게 되었다. 퇴직 전후로 두서없이 적은 글들을 책의 형태로 만들었던 이유는 뭐라도 하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남겨도 됐을 글들이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바뀌었을 때 조금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어쨌든 편집도 디자인도 컬러와 글씨체 선택도 모두 스스로 했으니 성취감도 있었다. 독립출판물 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각자의 책을 만든 참여자들은 서로를 작가님이라 불렀다. 작가란 말은 영 어색했지만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마음은 좀 더 생겨났다.
세상에 이름을 얻은 사람들은 많고도 다양하다. 유명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스타, 기업인, 예술가, 유튜버 등등.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인지도, 명성, 돈, 권력처럼 우리시대에 욕망하는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름을 얻기까지 들였던 노력과 시간은 보이지 않고 현재 위치만 눈부시다보니 쉽게 비교하고 좌절하고 미워하고 열망한다. 하지만 종종 유명세로 악플을 받거나 과거 일이 들춰지거나 하면 이름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름 자체는 내 것이지만 불러주는 것은 상대방의 몫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불러주기 전의 꽃으로 살아가고 있다. 온라인 수업으로 이런 저런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나는 그 꽃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글감을 찾기 위해 일상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르지만 자신의 언어를 만나고자 숨 고르는 사람들.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하루 일과를 일찍 시작하거나 늦게 마치는 사람들. 주어진 울타리 안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깊어지려고, 넓어지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름은 갈수록 또렷해졌다. 첫 소개가 어색했던 나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멀리 있는 이의 글이 울림이 있고 힘이 될 때, 그래서 내 일상이 조금 바뀌게 되었을 때, 그는 유명인보다 내 삶에 가까운 사람이 된다. 그가 잘 살고 있어 주어서 나도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를,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자기소개가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름은 고정된 명사가 아니고 하루하루의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이름 세 글자로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유명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실제 나는 여기 두고 욕망만 드러낸 것이었다.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하루를 잘 살고 주위를 잘 보고 마음을 살피고 대화를 나누다 내가 만난 장면을 소중히 옮겨보면 되지 않을까.
“가을의 나이에 또 한 번의 봄을 꿈꾸기도 하고 지나온 나를 다시 보기도 하는 사람, 제 이름은 다시 봄입니다. 다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