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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 Jan 24. 2022

거울을 보다가

퇴사하고 뭐하세요?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즐겨본다. 재미있는 것은 출연자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곧잘 나오는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상을 찍은 장면을 낯설고 신기하게 본다는 것이다. 눈뜨자마자 배달 앱으로 아침 먹거리를 한참 고르는 개그맨이 있는가 하면, 운동장비가 잘 갖춰진 방에서 기구 하나만 잠시 하고 나와 버리는 배우도 있었고, 무대에서 열정적인 매너를 가진 가수 출연자는 한나절 내내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 스르르 잠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들은 화면 속의 자신에게 “내가 저렇다고? 저 행동을 왜 하고 있지?”라며 본인의 모습을 새삼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카메라를 통해 남들에게 보여 지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조차 평소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는 인식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십여 년 전, 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할 때였다. 동별로 새해 결심을 동영상으로 만들라는 계획서가 내려왔다. 급히 시나리오를 적어 직원과 주민에게 역할을 맡기고 나름의 연출을 했더랬다. 마지막에 각자의 소망을 적은 종이를 들고 일렬로 서서 찍어야 해서 나도 같이 서게 되었는데, 나중에 동영상 편집을 하다가 그 장면에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나의 경직된 얼굴을 제 삼자의 시선으로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 모습으로 하루하루 업무에 임했구나 싶어 안타깝기까지 했다.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없다. 뒷모습과 옆모습은 물론이고 거울이 없으면 앞모습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 타인의 외형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논할 수 있어도 그 순간의 본인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대신 눈앞의 상대가 짓는 표정, 말투, 몸동작 등으로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잘 살피지 못하거나 아집이 세거나 하면 놓칠 수도 있고 편한 대로 해석해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나 역시 현재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풀이 되다보니, 긴장하고 경직된 표정이 일상의 얼굴로 굳어졌던 것 같다. 동영상 속 내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거울을 자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책상 위에 탁상 거울을 두고 보면서 주민 전화를 받을 때 입 꼬리를 올려보기도 하고 전산 시스템에 한참 입력을 하다가도 중간 중간 쳐다보게 되었다. 마주치는 내 얼굴을 보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표정이 불통의 얼굴로 오해받지 않도록 부드럽게 풀어보려고 했다. 거울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얼굴은 대책이라도 세울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도 순간순간 챙겨보아야 한다는 것은 훨씬 더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하루는 평소 즐겨 찾는 블로그 이웃 글에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나를 받아들입니다.”라고 세 번 말해보라는 문장을 읽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 ‘한번 해볼까?’ 싶어 가볍게 시작했다.


“나는 나를 받아들입니다.” -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나를 받아들입니다.” - (어, 당연한데 왜 울컥하지, 이거 왜이래.)

두 번 문장을 반복하고 잠시 주춤하다

“나는 나를 받아들입니다.”

마지막 문장을 마치면서는 가슴이 시큰하더니 눈물이 콱 쏟아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눈 화장 다시 해야 하는데. 시간 빠듯한데.’ 하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다.

오래 묵은 감정은 기회를 틈타 솟구쳐 올랐고 바쁜 출근 시간에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라질 줄 몰랐다. 나는 가만히 받아들여야 했다. 늘 타인의 인정을 바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스스로의 인정에 더 목말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 마음은 미래의 완성된 내가 아니라 결핍 덩어리라 할지라도 지금의 나를 더는 외면하지 않아야 상처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 속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 마음들이 존재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품고 나왔던 것도 있을 것이고(영화 소울에서 자신만의 번개를 만나야 지구로 올 수 있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번개가 재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여러 결핍이 조합된 고유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환경과 마주치며 만들어진 것들도 있을 것이다.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고 지친다는 기분이 들 때, 겁내지 말고 그 마음들과 마주해보아야겠다. 고유한 결핍을 받아들이는 순간만이 나와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실컷 운 다음에는 새 마음으로 씩씩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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