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윤희에게
윤희에게 쥰의 편지가 도착한다. 마사코 고모가 부친 편지를 딸 새봄이 받는다. 그 편지로 윤희와 새봄은 눈과 달, 밤과 고요가 있는 오타루의 겨울로 여행을 떠난다. 사랑했던 두 사람은 20년도 넘는 세월을 지나 재회한다. 영화는 새 직장을 찾기 직전의 윤희를 보여주고 “나도 니 꿈을 꿔”라는 추신을 나래이션으로 끝이 난다.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했던 두 사람은 오랜 세월 다른 삶을 살아왔다. 윤희는 정신병원을 다니고 대학을 포기 당하고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이혼을 하고 식당에서 일을 한다. 쥰과의 이별 후를 ‘자신을 벌주는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쥰은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와 일본으로 건너와 고모와 함께 살며 수의사로 일한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것을 숨긴 채로. 서로 만나지 못하지만 그리움은 오타루의 눈처럼 치우면 내리고 치우면 또 내려 무력할 정도로 오래, 가득히 쌓인다.
윤희의 꿈을 꿀 때마다 적었던 편지를 쥰은 한 번도 보내지 못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다시 적는 편지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내가 부끄럽지 않다’라고 한다. 그리고 윤희가 자신의 동경의 대상이었고, 윤희를 만남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일상은 반복되고 습관은 힘이 센 것이어서 매일을 매일 맞이하면서도 다르게 보지 않고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므로‘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는 아주 오래도록 기다리다가 불쑥 다가온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바보같은 걸까. 나는 아직도 미숙한 사람인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라고 말할 수 있게된 쥰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기대에 부응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추진력과 동시에 압박감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기쁨은 잠시고 불안은 오래였다. 자신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눈만 높아졌다. 애초에 그 욕망이 내 것인지 고민했어야 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나와 불편한 시간들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가 왔을 때, 애쓰고 있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잘해왔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 이제 다른 시간이 흐를 수 있었다.
쥰의 편지를 받은 윤희는 흔들린다. 직장에도 빠지고 여기서 내가 뭐하는 걸까 하는 황망한 표정이 화면 가득하다. 휴가를 내겠다는 윤희에게 영양사는 왜 그렇게 책임감이 없냐며 갔다오면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던지고 나오는 윤희. 뒤돌아 나오는 그녀의 표정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고 새봄과 함께 오타루로 여행을 떠난다.
윤희 역시 쥰을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를 알아보고 충만했던 그 시절의 행복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단절되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 ‘그래, 우리는 잘못한게 없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가까이 가면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새봄에게 얘기한다.
돌아본 시절이 아름답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윤희와 쥰이 충만한 시절을 보낸 이후에 다시 보지 못하는 세월을 지내야했던 것처럼,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가고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직장을 선택했다. 벌주는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다 가는 길로 가고 있다는 안도와 나 자신에 대한 고려가 빠진 안주하는 삶이 이어졌다. 우리는 언제 되돌아보게 될까. 계속 가던 길에서 멈추게 될까. 윤희가 책임감으로 이어가던 곳에서 ‘책임감이 왜이리 없어요’라는 말을 듣게 된 순간처럼 현실에서 답이 없어질 때일까. 긴 세월후 ‘너는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어’라고 자신을 흔드는 부름을 들을 때? 두 상황이 다 발생할 때 일지도 모르겠다.
정작 편지를 보낸 사람은 쥰이 아니었고 편지를 받은 사람도 윤희가 아니었다. 그 둘에게는 마사코 고모와 딸 새봄이 있었다. 쥰의 방을 치우던 마사코 고모는 부치치 못한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곧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될 새봄은 쥰의 편지를 받고 윤희에게 오타루 여행을 제안한다. 남자친구를 데리고 마사코 고모를 만나고 쥰에게 저녁식사 제안을 하는 것도 새봄이다. 조용하지만 유심하게 바라봐주는 대상은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힘을 준다. 정해진 시간과 룰에 따르는 일상에서 마음이 지칠 때,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추슬러야 할 때, 땅 밑으로 꺼지거나 먼지로 사라져도 아쉽지 않다고 생각될 때도 있겠지만, 어색한 포옹을 먼저 제안하는 마사코 고모처럼, 짐이 되기 싫다고 말하게 된 성장하는 새봄처럼, 조금씩 힘을 내어 나를 붙들어주는 관계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런 대상들은 다 천사가 아닐까.
윤희와 쥰의 재회는 조용했다. 바라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진 정도. 포옹도 없이 눈이 그친 배경. 그저 ‘오랜만이네’ '그렇네’라는 말을 나누며 같이 걷는다. 그 시절과 그 시절 이후의 삶에 대한 얘기로 채워졌을 그들의 재회는 아마도 보름달처럼 충만했을 것이다. 부정하지 않은 과거와 정면으로 바라본 내 모습에서 기운이 나는 건 왜일까. 그게 내 자신이 때문이 아닐까. 경쟁하는 삶 속에서 나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봐줄 때 새로운 출발선을 알게 될 테니까. 윤희도 여행에서 돌아와 이사를 한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묶어두기만 했던 오빠와 남편에게 조용하지만 가뿐하게 안녕을 고한다. ‘내가 알아서 할게. 나 새봄이랑 같이 여기 떠나. 잘 살아 오빠’ ‘축하해 당신, 정말 잘됐다. 행복해. 꼭.’ 나는 그 모습이 좋다. 깊은 자기 연민이나 놓지 못하는 미련에서 벗어난 모습이 좋다. 이 때 윤희의 모습은 초반의 황망한 모습과 대비되어 빛이 난다. 햇살좋은 까페에서 이력서를 쓰고 새로운 직장 앞에서 기분좋게 긴장하는 모습. 벌주는 삶에서 새출발 하는 윤희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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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재회 후 보름달이 뜬다. 그 달을 보며 쥰은 원래는 마사코 고모의 대사였던 ‘눈이 언제 그치려나’를 되뇌인다. 고모는 눈이 하염없이 올 때마다 자연 앞에서 막막한 심정에 주문처럼 그 말을 했다. 한 번의 재회가 삶의 완성이 아니듯, 새 출발 하는 순간이 있으면 또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안심해도 된다. 쥰이 그랬던 것처럼 편지를 띄워볼 수 있으니까. 그때는 멈춰서 돌아볼 때라는 뜻이니까. 빈 마음에 채워야 될 무언가를 발견할 때이니까. 나 역시 그 순간이 오면 망설임 없이 종이를 펼치고 매번 조용히 편지를 시작해 볼 것이다. “윤희에게, 그리고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