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 32일의 기록
걷다 보니 교회 담벼락에 눈에 띄는 장식이 있다. 기념비 같기는 한데 모양이 예사롭지 않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교회는 la gancia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Chiesa di Santa Maria degli Angeli. 나중에 찾아보니 시칠리아 근대사의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였다.
교회 담벼락 장식은 이탈리아 통일운동과 관련된 간챠의 봉기La Rivolta della Gancia라는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물이었다.
시칠리아가 이탈리아와 통일되기 직전인 1860년 4월,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통치에 저항하고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동조하는 세력이 봉기를 모의했다. 이 교회에 지하묘지에 무기를 들고 숨어있다가 교회의 새벽 종소리를 신호탄으로 봉기를 일으키는 걸로.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근처에 있던 군대에 모의가 발각되며 무참히 진압당했고, 교회 지하묘지에 숨어있던 사람들 중 20여 명은 죽고 10여 명은 감옥으로 끌려갔다. 이때 운 좋게 죽음을 피한 두 명이 동료들의 시신 더미 밑에 5일간 숨어있다가 배가 고파서 바깥과 통하는 구멍을 팠고, 구멍 주변에 있던 여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자들은 싸우는 척 소란을 피워 부르봉 군대의 주의를 돌렸고, 수레꾼이 그 두 사람을 짚 더미에 숨겨 탈출시켰다.
이야기가 탈출 대목에서 황급히 마무리가 돼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그 구멍의 용도는 무엇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구멍의 크기로 볼 때 탈출구는 아니었을 것 같다. ^^ 아무튼 구멍 옆에 구원의 구멍buca della salvezza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봉기가 성공적이지는 않았어도, 가리발디가 천명의 원정대를 이끌고 시칠리아로 오는 계기가 되었던, 또는 그의 원정을 가속화한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으로 시칠리아의 여론을 파악한 가리발디는 다음 달인 1860년 5월 붉은 셔츠단이란 별명의 천인대를 이끌고 시칠리아로 와서 부르봉 왕가를 몰아냈고, 이를 계기로 시칠리아는 (국민투표라는 과정을 거쳐) 현 이탈리아의 전신인 사르데냐 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의 일부가 됐다고...
P.S.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교회Chiesa di Santa Maria degli Angeli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1485년에 세워서 Santa Maria degli Angeli께 봉헌한 교회. 천사들의 성모마리아라는 뜻의 Santa Maria degli Angeli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퍼진 성모마리아의 칭호라고. la gancia라는 별명은 교회에 딸린 병원에서 환자를 들어 올릴 때 사용하던 갈고리il gancio에서 유래했다고. 교회의 정면은 스페인-고딕 스타일. aisle은 없고 nave 옆에 16개의 예배당이 있음. 유색 대리석 바닥, 나무 조각 천정, 바로크 시대에 추가된 Giacomo Serpotta의 스투코 장식, 안토넬로 다 메시나 가문의 작품들, 16세기 오르간,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성인들을 그린 패널들이 있다고. 소박한 담벼락으로 위장된 보물창고 같은 곳이라는데, 심지어 세르뽀따의 장식도 있었다는데... 몰라서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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