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2 팔레르모: 유럽에서 가장 큰 나무-가리발디 정원

시칠리아 여행, 32일의 기록

by anna



[la cala 만 풍경]


산 도메니꼬 오라토리오를 나와 칼사kalsa 지구에 있는 시칠리아 주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간다고 갔는데 동쪽으로 갔나 보다. 난데없이 바다가 나온다. 팔레르모가 바닷가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바다가 이렇게 가까울 줄 몰랐고,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내륙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맘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이고 쉽게 닿을 수 없어 늘 그리움을 품고 사는 대상이다. 생활공간 안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이 영 낯설다. 작은 만에 요트가 가득하다. 찾아보니 옛 팔레르모 항구란다. 지금은 요트용 항구로 보인다. 다시 지도를 보고 방향을 잡았다. 가리발디 정원을 지나서 가는 경로로...



[나른한 오후. 나만 바빴다.]
[가리발디 정원 옆 마리나 광장. 팔레르모에서 큰 광장으로 꼽힌다고.]
[마리나 광장의 분수 fontana del garraffo(1698년)]


공원 옆에 광장이 있다. 마리나 광장piazza marina.


광장 한쪽에 분수가 있다. 팔레르모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분수라고... 맨 아래에 돌고래가 있고, 그 위에 여자를 태운 독수리가 히드라를 짓밟고 있는 모습이다. 돌고래는 바다를, 히드라는 악을, 독수리는 팔레르모를, 여자는 풍요를 상징한다고... 원래는 부치리아 시장 안에 있는 가라포 광장piazza del garraffo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왔단다.

16세기에는 결혼식도 올리고 승리를 축하하는 개선 행사도 하던 곳이었다는데, 나중에는 근처에 있는 두 감옥 탓에 공개처형의 장소가 되기도 했단다. 오늘 가려는 종교재판 박물관이 그 두 감옥 중 하나다. 이곳에서 화형, 교수형, 그리고 거열 등이 공개적으로 행해졌단다. 설명에 해당하는 형벌을 칭하는 우리말 용어가 있을까 찾아보니 거열이란다. 적절한 단어가 없어 번역이 곤란한 경우가 수없이 많은데, 그 끔찍한 형벌만큼은 딱 들어맞는 우리말 용어가 있다니... 아무런 교류가 없던 시대인데... 그러니까 그 끔찍한 형벌 방식이 웬만하면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universal 한 아이디어였다는 것이다. 씁쓸하다. 어떤 방식의 형벌인지는 말하기 싫다. 지금은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에 골동품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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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발디 정원Giardino Garibaldi.


이 정원은 1863년 giovanni battista filippo basile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고, 내부에 분수와 이탈리아 통일risorgimento에 기여한 인물들의 흉상, 가리발디 기념물 등이 있다고 한다. 시칠리아의 근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가리발디의 상륙과 이탈리아 반도로 편입)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인가 보다. 공원은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주요 목적지의 길목에 있어 오가며 저절로 지나가게 된다. 샌드위치 사들고 가서 점심 먹기 딱 좋은 위치인데, 몇 번을 지나치면서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화살, 토끼, 새 등으로 장식된 무쇠 창살 울타리]
[가리발디 정원의 유럽에서 가장 컸다는 나무. 가지로부터 줄줄이 늘어진 것은 공중 뿌리이거나 공중 뿌리가 줄기로 변한 것이라고 함.]


유럽에서 가장 큰 나무


가리발디 정원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다. 나무줄기가 문에 치는 발을 내려놓은 모습으로 늘어져 있다. 무화과나무의 일종이라는데, 어디에서는 ficus magnoloides라 하고 어디서는 ficus macrophylla이라 해서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학명이 아닌 일반적인 이름은 morton bay fig란다. 최근 가지치기를 했는데, 가지치기 전까지는 이 나무가 유럽에서 가장 큰 나무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크다는 기준이 뭔지… 줄기의 둘레가 기준이라면 이 나무는 측정 불가다, 줄기가 하도 많아서. 아무튼 이 나무는 시칠리아 여기저기에 엄청 많고 거대하게 자란다. 이만큼 커 보이는 나무가 흔치는 않아도 없지는 않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나무의 생장방식이 매우 특이하다. 씨를 다른 식물에 내려서 그 식물에게 영양분을 얻어서 자라고, 결국 그 나무를 죽게 한단다. 뻐꾸기가 떠오른다. 식물이 수동적이기만 하다는 생각도 오해다. 가지에 넝쿨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 뿌리라고 한다. 가지에서 나온 공중 뿌리가 땅에 닿으면 줄기로 변한다고. 그러니 나무줄기가 여러 가닥이고 주변으로 땅따먹기 하듯 계속 퍼질 수밖에. 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자란다는 말도 처음 들어보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이 운신할 공간을 확장해 가는 나무가 또 있을까 싶다. strangler fig, 즉 교살자 무화과라는 별명이 있단다. 다른 나무의 양분을 뺏어 먹어서 그 나무가 죽는 건데, 줄기가 주렁주렁 늘어졌다 보니 줄기에 졸려 질식하듯 죽는 걸로 보이나 보다.


[노르만 궁전 왕실정원에 있는 소나무와 ficus의 연리지 (인터넷 사진)]

P.S. 씨가 다른 나무에서 싹을 틔워 자란다는 증거가 노르만 궁전의 왕실 정원에 있다. 소나무에 씨를 내렸는데, 다행히 소나무가 죽지 않고 연리지 형태를 하고 있다.


정원을 볼 때는 ficus가 소나무 옆에서 자라네 하며 지나쳤는데, 안내 팸플릿을 보니 그 나무가 정원의 자랑이었다. 입장료 2유로가 아까울 정도로 볼 것이 없어 왕실 정원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했던 터라, 얼마나 자랑할 것이 없으면 저게 자랑일까, 참 자랑할 것도 없다며 은근 비웃었었다.^^ 오죽하면 사진 한 장을 안 찍고 지나쳤을까... 그런데 나무의 습성을 알고 나니 매우 흥미로운 자랑거리가 맞았다. 사진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며 사진 한 장 찍어둘 걸 후회했다. 돼지는 진주 목걸이가 비싼 걸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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