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2 팔레르모: Antica Focacceria

시칠리아 여행, 32일의 기록

by anna



[산 프란체스코 교회와 광장]


[안티카 포카체리아 산 프란체스코와 정어리 말이, 가지말이, 카포나따]



미르토 궁을 나오니 6시가 넘었다. 7시에 문을 닫고 가이드 투어만 가능한 종교재판 박물관을 보는 것은 불가능. 목록 만들 때 뭐랬더라? 시간 되는대로 보겠다고? 내 이럴 줄 알았다, 도장 깨기 하듯 덤빌 줄... 오늘의 야심 찬 목표는 반 밖에 달성하지 못했지만 첫날 점심도 못 먹고 다녔으면 최선을 다 했다.


시간 관계상 더 갈 데도 없으니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자 하며 터덜거리고 걷는데, 입구의 아치볼트archivolt가 인상적인 교회가 있다. 지도를 보니 산 프란체스코 교회basilica san francesco d'assisi다.



[산 프란체스코 교회 끼아라몬떼 스타일 아치볼트]


P.S. 13세기 초 수도원과 함께 지어진 교회. 페데리코 2세가 교황청의 파문을 당하자 교황 편을 드는 이 교회를 파괴했으나, 곧 다시 건설해 줌. 15세기와 16세기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1943년 공습으로 파괴됐으나 원래 모습으로 복원. 절제된 정면에 장미창과 고딕 스타일 입구가 있음. 아치볼트 위의 지그재그 톱날 무늬는 시칠리아 끼아라몬떼chiaramonte양식의 특징이라고 한다. 내부에 giacomo serpotta와 antonello gagini 등의 주목할 만한 작품이 많음. cappella mastrantonio는 시칠리아 최초 르네상스 스타일 작품이라고 하고, francesco laurana가 조각을 했다고 함. 주 제단 뒤에 16세기 성가대석과 17세기 그림들이 있음. 또한 중세의 모습이 남아있고, 로마 시대 비석과 석관, 바로크 스타일 장식 등 볼 것이 많음. 중세부터 근대까지 시칠리아 역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한 교회라고 함. 진짜 수없이 많은 교회를 갔었는데, 이 교회와는 이상하게 인연이 안 닿지 않았다. 보고 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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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회 앞에 있는 식당이 왠지 눈에 익다. antica focacceria san francesco. 포카체리아는 포카챠focaccia 만드는 곳이란 뜻이다. 포카챠는 피자와 빵의 중간 정도 되는 납작한 빵인데 요즘은 한국 트렌디한 빵집에서도 많이 판다. 이름이 그렇다고 포카챠만 파는 곳은 아니다. 1층은 tavola calda(따뜻한 식탁의 뜻; 미리 조리된 음식을 파는 곳)이고 2층은 정식 레스토랑인 듯. BBC에서 만든 sicily unpacked라는 동영상에 나왔었다. 론리 플래닛에도 맛집으로 소개된 식당인데, BBC 동영상에 나온 이유는 맛집이라서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장 상인이나 노점상에게 조폭들이 자릿세를 뜯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본 것 같은데, 시칠리아에서는 아직도 공공연히 그런 일이 벌어진단다. 보호를 핑계로 뜯어내는 삥을 삐쪼pizzo라고 부른다고... 이 식당 주인이 삐쪼를 뜯는 마피아와 마피아와 결탁한 경찰을 신고했고, 그 일로 마피아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해 지금도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비밀리에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동영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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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이든 아니든 그런 스토리가 있는 식당을 지나칠 수는 없다. 음식의 맛을 미각으로만 느끼는 건 아닌 것. 그의 용기 있는 선택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무엇이든 맛있다며 먹을 수 있지 했다. 마피아의 보복이 어떤 식인지 들어 본 적이 있다면 그의 선택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입구에 pizzo를 거부한다는 addiopizzo 로고가 다른 스티커들과 함께 붙어 있다. 아직 저녁 시간이 아니라 저녁을 먹을 수는 없지만 1층 tavola calda 음식은 먹을 수가 있단다. 나는 웬만하면 먹는 일에 다 계획이 있어 메뉴를 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날은 시칠리아에서의 첫 끼니라 음식과 메뉴판을 번갈아 보며 고민하고 서있었다. 여러 가지를 맛보고 싶은 내 고민이 읽혔는지 아저씨가 친절하게 세 가지를 시킬 수 있는 메뉴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정어리 말이sarde a beccafico, 가지 말이involtini di melanzane와 시칠리아식 라따뚜이인 카포나타caponata.


음식을 받아서 테이블에 앉아 난생처음 먹어보는 정어리 말이를 한 입 먹었다. 빵가루로 만든 속을 정어리로 말아 구운 것이다. 맛있다. 맛있네 하며 두 입째 먹는데 첫 입만큼 맛있는 건 아니어도 먹을 만하다. 세 입째, 더는 못 먹겠다. 조금 전에 뭐든 맛있다며 먹을 수 있다 하지 않았나? 맛 센서는 확실히 의지로 조절되는 건 아니었다. ㅎㅎ 맛있다며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비위가 상해 못 먹었던 적이 예전에도 종종 있었다. 빵가루로 만든 물컹한 속이 비릿한 생선과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섬사람들이라서 비린 맛을 견디는 정도가 높을 수도... 밀가루 살짝 묻혀 프라이팬에 구웠으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싶다. 가지 말이와 카포나타는 순 식물성이니 먹을 만하다. 그런데 소금 간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밖에서 뭔가를 먹으며 소금 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처음이 아닐까? 팍팍 소금을 뿌려 먹었다.


P.S. 여기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보통 이탈리아 음식은 내 입맛에 짠 것이 보통인데, 시칠리아 음식은 이곳만큼 싱겁지는 않았어도 대체로 입맛에 맞았다. 소금 이야기를 하면 트라파니에서 만난 알레시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트라파니 소금이 염도도 높고 미네랄이 많아 조금만 넣어도 맛이 잘 나서, 성인병 예방 효과가 있다고 엄청 자랑했었는데, 그래서 안 짠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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