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 32일의 기록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콰트로 칸티'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발음하면 영 말의 맛이 살지 않는다.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하는 느낌. 누가 짜장면 대신 자장면이 먹고 싶을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혹은 세상이 내게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지 발음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제 식으로 발음하더라만, 그 밖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소리를 원음과 가장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글인 한글을 쓰는 사람으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님에도 영어식 발음으로 이탈리아어 고유명사를 옮기려니 영 마음이 불편하다. 원래 발음 대로 쓰면 규칙을 어기는 꼴이니 그것도 마음이 불편하고... 그래서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적당히 하는데, 그러다 보니 표기가 중구난방... 콰트로 칸티는 꽈뜨로 깐띠라 하는 걸로... ^^
프레토리아 광장을 나오니 바로 꽈뜨로 깐띠가 보인다. 이곳도 사진으로 너무 많이 봤다. 팔레르모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와보는 랜드마크이다 보니... 미리 사진으로 엄청 보고 상상력으로 윤색한 곳에 막상 오면 상상과 현실의 충돌이 벌어지는 것 같다. 현실이 상상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지 싶다. 시간이 지나 충돌로 인한 충격이 진정돼야 진짜 감상이 생기는 것 같다.
canto가 corner에 해당하는 단어이고, canti는 canto의 복수형. 그러니까 꽈뜨로 깐띠는 네 개의 모서리들이란 뜻이다. 팔레르모를 동서와 남북으로 가르는 두 길이 교차해서 생긴 모서리. 동서로 난 길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via vittorio emanuele다. 페니키아의 토대 위에 놓인 길이란다. 카사로cassaro라는 별명이 있는데 성으로 가는 길way to castle이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길이 성당과 노르만 궁전으로 이어진다. 남북으로 난 길은 마께다 거리via maqueda다. 팔레르모 중앙역에서 마씨모 극장까지 이어져 있다. 이 두 길이 만나 생긴 네 모서리가 꽈뜨로 깐띠인 것이다.
교차하는 부분이 원형 광장이 되도록 지은 건물이 네 모서리에 있다. 드론으로 위에서 내려 찍은 사진으로 보면 완벽한 원이 보인다. 이 광장을 빌레나 광장piazza villena라고 부르기도 하고, 태양이 조명 역할을 하는 극장이란 뜻으로 태양의 극장teatro del sole이라고도 한단다. 둥근 벽면에 서있는 조각상들이 무대인사를 하는 배우처럼 보이기도 한다.
네 귀퉁이의 건물 벽은 모두 3단 구조로 장식되어 있다. 1층에는 강을 상징하는 분수와 계절의 신을 여성으로 의인화한 조각들이 있고, 2층에는 건물이 지어지던 당시(1609-1620) 스페인 총독들, 3층에는 팔레르모의 수호 성녀들이 있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 세 개의 문장이 있는데, 왕실, 상원, 총독의 문장이라고 한다.
남서쪽 모서리가 봄이고 성녀는 Cristina di Bolsena, 북서쪽이 여름과 Santa Ninfa, 북동쪽은 가을과 Oliva di Palermo, 남동쪽은 겨울과 Sant'Agata. 지도상으로 봐서 3 사분면이 봄이고, 시계방향으로 여름, 가을, 겨울이 된다. 팔레르모 수호 성녀라면 단연 로잘리아인데 그녀가 없는 게 의아한데, 그녀가 성녀로 지정(1624)되기 전에 완성된 건물이란다. 성녀 아래에 있는 분수는 시칠리아의 4 강을 뜻한단다. 2층 스페인 총독들은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알리고 싶지도 않다. 안내서에 이곳은 광장으로 기능하기보다는 반란자들의 머리를 기둥에 매달아 두던 곳이었다는 설명이 있었는데, 2층에 있는 저 놈들의 짓이었겠지 싶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4계절을 배치한 건 그렇다 하겠는데 왜 봄을 3 사분면으로 했을까가 궁금했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하루 중 태양이 가장 먼저 비치는 쪽이 그곳이라는 걸. 시칠리아가 북반구에 있으니 태양은 동쪽에서 남쪽으로 큰 원을 그리듯 서쪽으로 이동하고, 그러면 조명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차례로 비추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태양의 극장이 괜한 별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길에 의해 도시가 크게 네 조각으로 나뉜다. 각 구역은 각각 이름이 있다. 봄 쪽은 알베르게리아albergheria, 여름 쪽은 카포capo, 가을 쪽은 로지아loggia 또는 카스텔라마레castellammare, 겨울 쪽은 칼사kalsa 지구라고 불린다. 여행하며 구역 이름을 알아야 했던 적은 없지만 팔레르모에 관한 글에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좀 된다.
P.S. 해질 무렵 이곳을 지날 때면 항상 봄 건물 앞에서 경찰들이 경찰차를 세워놓고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무슨 사정으로 매일 나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존재로 한결 더 마음이 놓였다. 봄 모서리에 있는 건물은 산 쥬세뻬 교회Chiesa di San Giuseppe dei Padri Teatini다. 이 교회 정면 오른쪽에 꽈뜨로 깐띠와 같은 3단 구조 장식이 있다. 그 면을 다섯 번째 모서리quinto canto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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