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 32일의 기록
프레토리아 광장은 벨리니 광장 바로 옆에, 마케다 거리와 접해있다. 이 광장은 중앙에 광장을 다 차지하고 서있는 커다란 분수Fontana Pretoria로 유명하지만, 광장 남쪽에는 팔레르모 시청이 있는 프레토리아 궁palazzo pretoria이 있고, 시청을 마주 보고 왼쪽에는 산 카테리나 교회, 오른쪽에는 산 쥬세뻬 교회가 있는데, 모두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산 카테리나 교회는 완전 감동적이다.
본격적으로 분수를 감상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집(숙소)에 가는 길에 있는 걸 어쩌라고... 동네 산보하는 마음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관광객 본능이 발동한다.
프레토리아 분수가 눈에 들어온 순간. 음... 유명세만큼의 감동이 없다. 기대가 컸나 보다. 조각상이 빽빽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듬성듬성하다. 몇 개의 납작하고 크기가 다른 동심원이 케이크 모양으로 층층이 쌓여있고, 동심원들의 원주를 따라 간간히 헐벗은 조각상이 서있다. 신화 속 피조물, 괴물, 트리톤, 사이렌 등등. 조각은 50여 개라고 한다.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산만해 보인다. 이런 장면을 어떻게 찍는 게 예쁜지 각을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 크다, 광장에 비해... 크기만 봐도 이 분수가 이곳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겠다. 나중에 본 이야기인데, 이 분수를 설치하려고 주변 건물을 철거하기까지 했단다. ㅋㅋㅋ 왜 이 분수에 그렇게 꽂혔던 걸까?
이 분수는 16세기 피렌체에서 돈 많은 귀족의 정원에 들이려고 주문했는데, 그 귀족이 파산해 유지할 여력이 없자 팔레르모에서 냉큼 사 왔단다. 그런데 분수의 헐벗은 장식이 독실한 시칠리아 사람들의 정서에 맞지 않아서 수치의 광장piazza della vergogna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단다. 우리 할머니께서도 말세라고 혀를 끌끌 차셨을 거다.^^ 부패한 팔레르모 정부의 상징이라고 조롱당하기도 했단다.
조각들은 정확히 말하면 동심원의 원주와 방사선이 만나는 지점에 열과 오를 맞춘 듯 서있다. 하이 르네상스 매너리스트 스타일이란다. 왠지 매력이 없는 이유가 전체적 디자인과 장식의 배치가 너무 기하학적이라서 그런가 싶다. 직각 좋아하고 대칭 좋아하는데 또 너무 그런 건 싫은가 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리석 분수를 에워싼 검은 철제 울타리가 보기 싫다. 분수의 아름다움을 심하게 방해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너무 커서 광장에 숨 쉴 틈이 없는데 시커먼 울타리가 더욱 움직임을 제한하니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얀 대리석 분수가 시커먼 울타리 없이 광장과 이어지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조각 사이를 돌아다니며 즐기며 감상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 속 분수는 광장에 비좁게 끼어있는 답답합을 극복했고 자유롭게 서성이는 사람들 덕분에 매너리즘을 극복했고, 그리고 드디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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