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2 팔레르모: 마께다 거리와 베르디 광장을 지나며

시칠리아 여행, 32일의 기록

by 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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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JPG [마께다 거리]



마께다 거리via maqueda


이 거리는 팔레르모 중앙역에서부터 꽈뜨로 깐띠를 지나 마씨모 극장까지 이어지는 긴 길이다. 특히 꽈뜨로 깐띠부터 마시모 극장 사이 구간은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거리가 아닐까 싶다. 유럽 도시 거리의 표준적 분위기라고나 할까...


저녁 시간을 보내려 나온 사람들이 거리에 그득하다. 도로까지 점령했다. 길가에는 온갖 물건과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다. 적어도 관광객에게 필요한 것은 다 있어 보인다. 눈길이 가는 식당도 많다. 팔레르모에 머무는 동안 이 거리에서만 끼니를 해결한다 해도 맛집이 동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물 담배를 피우는 카페가 눈에 띈다. 아랍 문화가 이어져 온 것일까? 물 담배라고 들어만 봤지 뭔지는 전혀 모른다. 담배 같은 거야 뭐야? 위생적일 것 같지 않다. 왜 하는지 하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궁금할 것 같다. 교회도 있는데 다른 곳에 눈이 팔려 관심 밖이다.


저녁에는 차의 통행을 제한하나 보다. 주변 가게들이 테이블을 도로에 내놓아 길이 긴 카페가 됐다. 그래도 간간이 차도 다니고, 자전거 탄 사람들도 많아 도로가 온전히 보행자의 차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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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imo.JPG [마씨모 극장 앞 베르디 광장]



베르디 광장


마께다 거리 끝에 마씨모 극장이 있고 그 앞에 제법 큰 광장이 있다. 베르디 광장이다. 시칠리아가 자랑하는 극장 앞 광장에 베르디의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 통일을 자축하고 자랑하는 의미로 지었다 하니,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상징이자 오페라 거장의 이름을 빌어올 만했다.


광장이라고는 하는데 광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손바닥만 하다 싶을 때가 많은데, 이 광장은 꽤 넓다. 광장이란 단어조차 낯설던 학창 시절, 지금은 공원으로 바뀐, 군사정권의 야망과 포부가 담긴 광대한 여의도 광장으로 뻔질나게 불려 나갔었다. 땡볕에 몇 시간을 서있다 독재자가 지나가는 찰나의 몇 분 동안 그를 향해 태극기를 흔들라고... 야만의 시절이었다. 아무튼 생전 처음 접한 광장이 비행기도 뜨고 내릴 수 있는 크기였다 보니 광장이라면 무릇 그만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았나 보다.^^ 그래도 팔레르모 광장들은 다른 곳에서 광장이라 부르는 것들에 비하면 널찍널찍하다. 이 땅을 끊이지 않고 지배한 외세의 허세가 담겨있지 않을까...


오늘 아침 지나치며 아껴두었던 마씨모 극장의 정면이 눈에 들어온다. 익히 알고 있었듯 그리스 신전 모양이다. 정면을 마주 보고 서면 신전 정면과 신전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압도한다.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거대한 청동 사자 두 마리도 양 옆에 세워두었다. 극장의 실루엣이 얼핏 거대한 짐승의 웅크린 뒤태 같다.


이 광장의 주인공은 단연 마씨모 극장이지만 광장 한편에 가로수를 배경으로 서 있는 키오스크 두 개도 시선을 끈다. 이탈리아에서는 리버티 스타일이라고 한다는 아르누보 스타일이다. 폴리테아마 광장 구석에도 리버티 스타일 키오스크가 하나 있었는데 영 푸대접받는 느낌이었다.


표를 예매하러 매표소로 갔더니 문을 닫았다. 오히려 잘 됐다. 왠지 내키지 않았었다. 사실 항상 예매를 싫어한다.^^ 우리나라 아닌 곳에서, 보고 싶었던 공연을 예매하지 않아서 못 봤던 기억이 없다. 언제나 나를 위한 자리 하나는 있었다. 이곳 오페라도 그렇지 않을까? 나중에 하자고...



0827.73.jpg [베르디 광장 리버티 스타일 키오스크]



어둠이 내려서 그런지 경찰이 많이 눈에 띈다. 꽈뜨로 깐띠와 이 광장 근처에 있는 경찰은 특히 더 별다른 용무가 없어 보인다. 경찰을 짭새라 부르며 공포의 대상이자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던 세대 출신이라 경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워낙 치안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았던 곳이다 보니 그들의 존재가 든든하다. 위험해서라기보다 분위기 잡는 엄포성 출동이지 싶다.


가끔 날 간이 부은 것으로 취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내게도 위험을 잘 감지하는 민감한 센서가 있다. 그 센서 덕에 온 세상을 대충 뭉뚱그려 싸잡아서 위험 딱지를 붙이지 않을 수 있는 것뿐.^^ 오늘 숙소를 나서자마자 치안을 염려할 곳이 아님을 직감했고 아직은 위협을 느낀 적도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의심을 완전히 거둘 수 없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리고 그건 어느 여행지에서나 마찬가지일 거다.


베르디 광장에서 3분쯤 걸으면 숙소가 있다. 숙소를 예약하고 구글 지도 스트리트 뷰로 골목 분위기를 확인하는 의미 없는 짓을 해봤었다. 삭막해 보였었고, 그래서 걱정을 좀 했었다. 그런데 와서 직접 보니 위치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매우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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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숙소에 들어서니 객실 반대쪽 방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난다. 아저씨들이 소주 한잔할 때 나는 왁자지껄 함이다. 뭘까??? 씻으러 나가야 하는데, 오가며 저들과 부딪힐까 신경이 쓰인다. 분리된 화장실, 생각보다 불편하다. 안전하고 깨끗하기만 하면 더 바랄 것 없었는데 어느새 기대가 높아졌다.^^


우왕좌왕 정신 하나도 없이 하루가 갔다. 하루 종일 제대로 못 마셨던 물 마시고, 씻고 빨래하고 핸드폰과 usb에 사진 백업하고, 내일 갈 곳 공부하고, 일기 쓰고... 어디에서도 휴식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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