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의 시작

시칠리아 여행, 32일의 기록

by anna



아침. 눈을 떴다.


늘 하듯 침대에 누운 채 페파 피그 스페인어 버전을 보며 잠을 깨우는 데 난데없이 오른쪽 귀에서 굴착기 소리가 난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다. 크기는 작아도 소리와 리듬이 굴착기 소리와 매우 비슷하다. 눈이 침침하면 눈을 비비게 된다, 혹시 나아질까 싶어. 같은 심정으로 귀 주변을 문질러 보지만, 역시 소용없다. 이명과는 완전 다른 종류의 소리다. 귓가의 미세한 소리가 잘 들리는 것으로 보아 청력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난생처음이니 왜 그러는지 전혀 짚이는 것이 없었다. 그저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길 때가 됐지, 영원한 건강이 네게만 주어질 리가 없잖아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내 시간도 끝이 멀지 않음을 알려주는 신호 같았다. 미적거리지 말고 용기를 내어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요즘 계속 시칠리아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한 달 일정으로 항공권을 질렀다. 결제 문자가 왔다.


그러자 생일 선물이야, 한 번 갈 때도 됐어, 배낭여행을 즐길 시간이 얼마나 남았겠어 등등 아침 자각이 몰고 온 절박함에 솟구쳤던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구실을 찾고 변명이 늘어졌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일까? 분에 넘치는 짓은 아닐까? 마음이 급격히 불편해졌다. 그러다 한편 인생의 오춘기를 지나며 뭔들 마음이 편하랴, 매 순간을 온전히 살지 않으면 아예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기억하자 싶었다.


You can’t live at all unless you can live it fully, now.
- Alan Watts


서울-팔레르모 왕복(로마 경유). alitalia.com

P.S. 인천에서 로마를 경유해 카타니아나 팔레르모로 들어가는 항공편은 모두 밤늦게 도착했다. 밤 도착을 피하려니 두세 번 경유하고 삼사십 시간 걸리는 경로 밖에 없었다. 앓느니 죽지 싶어 로마 경유 팔레르모행을 택했다. 팔레르모의 경우 늦게까지 운행하는 공항버스가 있고, 회자되는 명성(?)에 비하면 너무 안전한 곳이라, 일행이 있다면 버스를 이용할 것 같다. 그런데 자정 무렵, 누가 봐도 막 도착한 티가 나는 여자 혼자 낯선 도시를 헤매는 건 시칠리아를 시험에 들게 하는 과한 모험이다 싶었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pick-up service를 이용했다. 택시보다는 경제적이어서... 택시로는 공항에서 팔레르모 시내까지 4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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