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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an 02. 2016

오타와 사는 남자 - 첫 번째 이야기

2011년 8월 23일 출국과 입국 (1/2)

글 쓰는 이(Jay)는 한 때 육군 대위로 복무하며 나름 괜찮은 봉급을 받고, 지금의 아내(Anna)와 결혼 후 풍요롭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착실히 대학원에도 진학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꿈꾸고 있었다.

아내(Anna) 또한 결혼 후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우리 두 사람이 느끼기에 넉넉한 삶을 누렸는데, 어느 날 코엑스에 열린 이민유학 박람회(2010년 3월 28일)에 다녀온 후 우리의 인생 계획이 바뀌게 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나들이 삼아 박람회에 다녀온 날, Jay와 Anna는 캐나다 유학에 관심이 있어 ㅇㅇㅇ업체와 상담을 했고  이후 눈에 콩깍지가 쓰인 듯 유학 외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유는 업체 관계자의 달변에 희망을 가지게 된 영향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쉬운 유학 수속과 "나도 영어 한 번 배워볼까?"하는 마음이 한몫했다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Jay가 가진 경력으로 캐나다 연방정부 전문인력 이민(Skilled worker)이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에 마치 나 같은 젊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이민 프로그램인 듯 착각을 하게 되었다.

※ 캐나다 이민 정책은 수시로 변하여 자세한 사항은 www.cic.gc.ca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현재는

    Express Entry의 한 부류로 분류되어 있는 전문인력 이민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부족 직업군

    (National Occupational Classification) O, A, B 중에 경력이 있어야 가능한데 Jay의 경력이

    Restaurant management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했다.

    Jay는 육군에서 장교로 근무하며 급식업무에 관한 경력이 있었다. 


결국 몇 년이 지난 후 이민은  실현되었지만, 실낱같은 전문인력 이민에 대한 희망과 함께 시작된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지옥 같아질 줄을 꿈에도 몰랐다.


캐나다 이민청 홈페이지


당시 나이 서른을 앞두고 있었지만 우리는 한없이 젊다고 생각했기에 유학을 먼저 해보자는 계획으로 Jay가 전역하는 시점에 맞춰 유학을 준비한다 했지만, 사실 그 순간부터 정말 잘 놀러 다니고 아무 생각 없이 캐나다에 간다는 계획 아래 철저히 자기 위안을 삼아 캐나다에 가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고 그냥 아무 생각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무 정보도, 대책도 없었다.  


2011년이 되고 우리는 캐나다 입국을 위해 비자 업체(이름은 기억이 안남)와 계약 후 방대한 서류요청 및 입금, 신체검사 등을 거친 후 레터(입국허가)를 받게 되었다.

※ 사실  이때부터 고생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Jay는 학생비자, Anna는 동반비자를 신청했는데, Jay의  

   군 생활 중 이라크 파병으로 인한 위험국가 체류 기록 때문에 비자 발급이 보류되어 거의 4개월 이상

   (정상으로 학생비자는 8주 이내 발급) 소요되었다.

   이민 신청에서도 역시 발목을 잡는 계기가 되었었는데, 캐나다 정부로부터 위험국가 방문 이유와 타당한

   증명 서류를 요청받아 제출해야만 했다.  Jay는 국제 연합군으로 소속되어 캐나다 군과 마찬가지로 평화

   유지 활동을 위해  파병되었다는 설명을 장문의 편지로 작성했으며, 파병 당시 주 정부로부터 받은 감사장을

   함께 제출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리고 Jay의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 사실로 인해 비자발급이 거절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속앓이를 했던

   사실은 이제는 여담으로 남겨두고 싶다.


출국하기 두 달 전부터 캐나다에 가면 더 이상 놀 수 없을 것 같은 착각에 그동안 가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두 군데나 바쁘게 다녀오고 가족들에게 인사도 다니고 갖고 있던 물건도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출국이 가까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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