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치료의 추억

이야기 1

단발머리 까만 교복을 입은 나의 어릴적 꿈은

시골학교 선생님이었다. 아이들과 들로 산으로 뛰고 달리는 ..


그런 꿈이 있었더랬다. 그꿈이 산산히 부서진 것은

고 2.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게 되면서 대학진학이란

부정적인 현실은 나의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했었다.


고3 되었을 때는 삼시세끼 밥하는 걱정을 해야 했고 가사일을 전담해야 하는

일상의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진학에 대한 조언


서울서 대학을 다니는 둘째 오라버니는

공부를 포기한 나에게 ..그래도 대학은 가야 된다고 했다.

막판 뒤집기 아니 막판에 입시라는 것을 보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꿈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문화인류학


새로운 학문에 대한 열정은 다르게 보는 눈을 뜨게 만들었다.

옛 것을 알아가고 현장에서의 관찰과 조사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간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러 졸업을 했다. 딱히 그 시절에는

졸업과 동시에 결혼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캠퍼스의 낭만과 열정을 뒤로 하고 난 또 다시 밥 짓는 밥순이가 되었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병환과 아버지와의 작별.


아이보다 더 아픈 나!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석달만에 결혼을 했다. 2년 만에

아들을 낳고 그 아이가 돌이 되었을 즈음

일반적이지 않다. 평범하지 않다. 늦된다. 마침내 이상한(?) 아이로 ..


나의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 그 아이로 인해 다시 시작하게 된 공부는

치료사를 거쳐, 사회복지, 마침내 특수교육에 이르게 하였다.


내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하나씩 배운 치료분야는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응용하고 확장하여 다르고 적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 바탕으로

요리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고

장애아동에게 그리고 그 부모에게 힘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2007년 ~ 2018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야산에서

묵묵히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뽑아 길을 만들기를 몇년.

그렇게 장애아동과 부모님과의 요리치료의 역사가 되었다.


양 어깨에 석회가 생겨 팔이 올라 가지 않을 만큼 원고를 쓰고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양 손 가득찬 가방과

베낭을 등에 달고 불러 주는 곳이라면 전국을 돌아 다녀도

힘든 줄 모르고 즐거웠다. 그러나

50 중반을 훌쩍 넘어 버린 지금은, ...

아이들이 할머니라고 말해도 상처 받지 않는다.


이렇게 단단해 진 마음과는 달리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내가 요리치료를 해 온 시간, 2007~ 2018 이라고 적을 때이다.


아 ~~ 그래도 내가 이 일을 참 잘 했구나!


강산이 변할 만큼 쉬지 않고 꾸준히 해 온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구나 욕심나는 일이 되었다.


단발머리 여고생이 시골학교 선생님이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서툰 언어로 몸짓으로 요리치료를 기다리는

그들을 만나러 가는 일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2018.05.12. 한국요리치료연구소 권명숙 글




신나고 신기하고 신선한 요리활동으로

장애특성과 발달수준 그리고생활연령에 맞는

방법을 알고 방향을 제시하고 방식을 만들어 가는

요리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로 요리치료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대상자와 함께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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